"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최문섭 기자]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하 이상북)으로 향하는 계단에 들어섰을 때는 가을이 '가을가을' 시작되던 지난 3일 오후였다. 이상북의 주인장 윤성근 작가는, 남들이 부러워하던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서 2007년에 헌책방을 오픈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지만 17년째 쉬지않고 책방문을 열고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지금도 헌책방하면 책장 뿐 아니라 통로까지 책으로 가득찬 풍경이 떠오르지만, 윤 작가의 안목이 살아있는 이상북은 유니크한 느낌으로 가득찬 이색적인 헌책방이다.
2007년에 서울에서 헌책방을 오픈해서 17년째 유지하고 있다는 건, 전국적으로 동네책방 붐이 일어나기 전부터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왔다는 말이다.
이상북을 오픈한 건 2007년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책을 가까이 했던 책방 주인인장은 15권의 단행본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헌책을 사고 팔면서 틈틈이 글을 써온 윤성근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 헌책방 이상북 입구 주인장의 안목이 느껴지는 책방 내부 |
ⓒ 최문섭 |
"2007년 당시엔 '독립서점'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흔하게 쓰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책방과 문화공간을 결합한 사업 모델 자체가 거의 없었죠. 2000년대 초 일본 도쿄에 여행 갔을 때 도심 골목에 작은 책방이 들어선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습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갖추고 있는 책들은 가게마다 개성이 넘쳐서 대형 서점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요,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얼른 이런 모델을 실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들떴습니다. 지금은 전국에 수백 개의 작은 서점이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긴 하지만 저마다의 특징을 잘 살려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 2023년 12월에 출간한 '헌책방 기담 수집가 : 두 번째 상자' 까지 15권의 책을 쓰셨습니다. 쓰신 책 중에서 특별하게 마음이 가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 이상북 윤성근 작가 이번 정부 들어 도서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어 아쉽다고 말하는 윤성근 작가 |
ⓒ 최문섭 |
"성북동 빌라 반지하에 살고 있던 한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책을 팔겠다면서 트럭을 가져오라길래 갔는데, 넓지 않은 반지하였고 거기엔 책이 별로 없더군요. 실은 다른 장소에 책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데리고 차로 10여 분 정도 떨어져 있는 신축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그러니까, 책을 워낙 좋아해서 본인은 빌라 반지하에 살면서 책한테는 넓고 쾌적한 신축 아파트를 내주었던 것이죠. 거기서 1톤 트럭으로 한가득 책을 가져왔던 게 특별한 기억입니다."
- 독서인구는 줄어들고 출판시장은 언제나 불황이지만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은 유료 방문객 15만 명을 동원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선은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인터넷 세대의 적극적인 소비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보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출판사들은 책과 함께 굿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간혹 도를 넘어서서 책 자체가 굿즈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드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정도를 지나치게 넘어서면 좋지 않겠죠."
▲ 헌책방 이상북 내부 엄선된 헌책들이 만들어내는 유니크한 분위기 |
ⓒ 최문섭 |
"'책 읽는 방법에 관한 책'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책은 워낙 많으니 조금은 싱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AI 시대니까요. 무슨 책이든 제목만 알려주면 컴퓨터가 줄거리나 주제는 물론 흔치 않은 내용까지도 답변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컴퓨터가 알 수 있는 수준의 독서를 넘어서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독서를 해야 합니다."
- 헌책방을 오픈 할 때 가졌던 기대와 계획이 실제 운영하시는 동안 얼마나 실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오픈 전에는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 이상북 내부 헌책으로 가득찬 일반적인 헌책방과는 다른 느낌이다 |
ⓒ 최문섭 |
"어릴 때 강원도 태백에 살았습니다. 거기서 봤던 석탄 캐는 갱도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입구에서부터 캄캄했고 어린이들은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못하게 했거든요. 그래서 상상만 했습니다. 그 안에 멋진 꽃밭이나 별천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때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토끼굴 이야기가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책방 이름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 지었습니다. "
- 서울 책방학교에서 작은 책방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경험에서 나온 귀중한 지식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주인장님의 도움으로 책방을 오픈하신 분이 있다면 한 분만 소개해주세요.
▲ 이상북 작가의 싸인 책방 스탬프와 인장, 캐리커처가 어우러진 윤성근 작가의 시그니처 |
ⓒ 최문섭 |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분이 어떤 집에서 책이 좀 나왔는데 이걸 저더러 매입하지 않겠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찾아가서 살펴보니 그저 그런 책들 사이에 꽤 값이 나가는 절판된 시집 몇 권이 껴 있었습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비싼 책들이 껴 있다는 걸 숨기고 이 책을 싸게 매입할까, 아니면 사실대로 비싼 시집 이야기를 하고 값을 더 주고 매입할까.
생각 끝에 제 양심이 이끄는 대로 했습니다. 비싼 책 몇 권이 껴 있으니 값을 좀 더 쳐 드리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은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면서 대량으로 책을 거래하는 분이었습니다. 실은 책 거래가 본업이고 이삿짐센터를 부업처럼 하고 있었죠. 남의 집에 공식적으로 들어가서 책장을 살필 수 있는 직업 중에 이삿짐센터 만한 게 없잖아요?
▲ 작업중인 윤성근 작가 자신의 공간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윤성근 작가 |
ⓒ 최문섭 |
"지금 이렇게 도시마다 골목마다 개성 넘치는 서점들이 많이 생겨난 것은 서점 운영자들 때문이 아니라 그 서점을 있게 만든 독자들의 관심과 응원 때문이겠지요. 출판사, 편집자, 작가, 번역가, 서점들 - 책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은 이름 모를 수많은 독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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