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이용해 정상에 선 '위대한 정치가'
한 점의 그림은 종종 어떤 웅변보다도 설득력이 있다.역사에 남은 많은 통치자들이 예술로써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나폴레옹 역시 예술을 이용해 스스로를 위대한 황제이자 프랑스를 구할 메시아 그리고 천재적 군사 전략가로 브랜딩하는 데 성공했다.
나폴레옹은 1769년 코르시카섬의 이탈리아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6살에 프랑스 육군 포병연대 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프랑스는 대혁명의 격동기였는데, 나폴레옹은 안으로는 프랑스를 군주국으로 되돌리려는 왕당파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밖으로는 반프랑스 혁명을 내세운 유럽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 프랑스의 영웅으로써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위 그림을 그린 화가 다비드는 열렬한 프랑스 혁명 지지자였고 그의 마음속에는 애국심, 영웅주의 등과 같은 가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예술이 대중에게 직접적이고 강력한 혁명적 열정과 애국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프랑스 민족의 영웅으로 숭배했고,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에게 혁명 정신을 북돋우려고 했다.
그림 속 나폴레옹은 확신에 찬 강렬한 눈빛으로 관람자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어 지금 넘어야 할 산을 가리킨다. 실제 날씨는 맑았지만 다비드는 더 극적인 장면으로 만들기 위해 흐리고 폭풍우가 치는 날씨로 표현했다.캔버스 하단에는 보나파르트, 한니발, 카롤루스 마그누스(샤를마뉴 대제)라고 쓰인 바위가 있다. 한니발과 샤를마뉴 대제 같은 영웅적 인물과 자신을 같은 급으로 설정한 것이다.
다비드의 그림은 나폴레옹 전성기에 그려진 것으로 장엄한 서사와 영웅적 비주얼을 제시한다. 반면 나폴레옹이 몰락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그려진 폴 들라로슈의 그림에는 초인이 아닌 인간 나폴레옹의 현실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당시 나폴레옹은 들라로슈의 그림에서처럼 작달막한 노새를 타고 실용적인 두꺼운 털옷과 회색 모직 코트를 입있다.
어둡고 칙칙한 색상, 백마가 아닌 갈색의 노새, 눈으로 덮인 척박한 배경의 작품은 다비드의 영웅적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나폴레옹이 즐겨 쓴 이각모가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나폴레옹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까?
아래 그림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 자파 포위전을 그린 것이다. 당시 자파에서 프랑스군에 퍼진 페스트로 많은 병사가 죽었는데, 나폴레옹이 자파를 방문해 페스트 환자를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장면이다. 나폴레옹을 병든 부하들을 돌보는 용감한 덕장으로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그 무렵 영국, 오스트리아가 프랑스 공격을 재개하자 나폴레옹은 동방 원정을 포기하고 몰래 이집트를 탈출해 프랑스로 돌아갔다. 이후 군수품 보급마저 끊긴 병사들은 현지인의 습격과 전염병 속에 방치되었다. 후에 책임 추궁당할 것을 염려한 나폴레옹은 이러한 그림을 그리게 하였고, 고국으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이 성공했다고 거짓 선전했다. 사람들은 그가 군대의 절반과 함대 전체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믿었다.
* 이 글은 도서 <사유하는 미술관>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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