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건국론에…이종찬 "아니다, 그러면 북한과 동격된다"
“대한민국의 시작을 1948년으로 보면 남(南)도 건국, 북(北)도 각각 건국한 게 돼 결국 북한을 동격으로 보게 됩니다.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왜 그런 일을 합니까.”

광복회가 22일 제23대 이종찬 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앞으로 광복회의 모든 공식 문서에 서기 대신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연호의 원년은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1919년으로, 2023년인 올해는 ‘대한민국 105년’이 된다.
이 회장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1919년부터 존재해왔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은 1948년 세워진 이단·이적단체에 불과하다”며 “1919년 대한민국 원년을 강조하는 건 이 같은 역사를 바로 보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도 이 회장은 “광복회는 전 민족이 바라는 국가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어 “바로 그 독립정신으로 대한민국은 원조 받던 국가 중 유일하게 원조하는 국가로 성공했다”며 “이 사실을 우리는 당당하게 자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시작점을 1919년으로 보는 시각은 1948년 8월 15일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절'로 보는 일부 보수 진영의 인식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다음은 이 회장과 일문일답.
Q : 대한민국 원년이 1919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A : “역사적 사실이 그렇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에 수립됐다. 그리고 앞서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나오지 않지만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고,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국민이라는 것을 선언하노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임금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가 됐다는 걸 선언한 후 정부를 세운 것이다.”

Q : 일각에선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A : “북한은 ‘남조선이 1948년 친일파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926년 김일성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했다고 우기면서 자기들의 뿌리를 여기에서 찾으려 한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북한 입장에선 1919년 대한민국이 시작됐다는 사실이 두려워 20년 이상 역사를 끌어올리려 하는 거다. 북한은 없는 것도 만들어서 역사적 정통성을 찾으려 하는데 왜 우리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나. (1948년 건국절 주장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본다.”
Q :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의 시작이 아닌, 건국까지의 과정이자 상징의 의미로 바라보는 데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A : “대한민국 원년이 1919년이라는 건 이승만 대통령도 강조한 사안이다. 1948년 5월 제헌 의회 개회사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은 의장 자격으로서 ‘오늘 이 민국은 기미년(1919년) 수립된 게 부활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연호를 기미년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관보 1호가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발행으로 기록돼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Q : 그렇다면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봐야 하나.
A : “나는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도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전에도 존재해왔다. 1919년 4월 임시정부 의정원이 대한민국이라는 새 국호를 만들었고, 군주제 국가는 그렇게 민주공화정이 됐다.”

Q : 대한민국 원년을 1919년이라고 하면 ‘건국 대통령’으로서 이승만 대통령의 지위는 어떻게 되나.
A : “엄밀히 말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 대통령이라기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정식’정부의 초대 대통령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통성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기미년 대한민국 부활을 공식화했기 때문에 북한이 아닌 우리가 정통성을 갖게 됐다. 초대 대통령으로서 훌륭한 판단이었다.”
한편 이 회장은 그간 정치편향과 횡령 의혹, 폭력 사태 등 내홍을 겪었던 광복회의 재건 의지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싸운 사람들이 광복회를 다시 세우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단결하면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기 내 여러 곳에 분산된 독립운동 사료를 한데 모아 연구할 수 있도록 광복회 학술원을 창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회장은 제11~14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ㆍ민주자유당), 김대중 정부 국가정보원장,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지난달 25일 광복회 총회에서 23대 회장에 당선됐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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