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처음이야"... 토종견 보러 몽골까지 간 사연
10년 차 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기자말>
[최민혁 기자]
'살아가면서 대부분 희미해져 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릴 적 꿈이다' 라는 영화 대사를 본 적 있다. 반려견 훈련사가 되기 전 나는 어릴적부터 개에 푹 빠져있었다. 초등학생 때, 이미 개에 대한 책은 40여 권이 넘었는데 그 중 유독 강렬한 인상을 줬던 이야기가 있다. 광활한 몽골 대지에서 사는, 전설의 몽골 토종견 '방카르' 이야기였다.
▲ 몽골 토종견 방카르의 눈. 방카르의 눈은 유독 검붉은데, 몽골인들은 눈이 검붉은 개가 성품이 침착하면서 강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
ⓒ 최민혁 |
필요 이상의 행동은 분명 행동교정을 해야 하지만, 사실 개가 집을 지키고 낯선 이를 경계하는 것은 어느 시대엔 당연했을 것이다. 그게 오히려 인류에 도움이 됐기에 그렇게 발달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개와 인간의 초기 생활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란 생각이 스쳤다. 특히 나의 반려견 교육 철학은 '개를 올바르게 이해해야한다'였기에, 옛날옛적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방카르를 볼 꿈을 다시 꺼냈다.
이번 편에선 몽골에 방카르를 만나러 다녀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경험은 내가 반려견 훈련사로서, 아직 소수 남아있는 개와 인간의 초기 모습을 보고 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 몽골에서 방카르와 함께 함께 동행한 사진작가 친구 토모가 찍어준 방카르와 나 |
ⓒ Tomohiro nakamichi |
전 세계에는 인간과 개의 초기 모습을 간직한 자연 견종들이 소수 존재한다. 하지만, 시대가 급격히 현대화되고 도시화되면서 이 개들과 문화들은 급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아마 다음 세대에선 책에서나 보게될 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더욱 방카르를 직접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SNS을 통해 알게 된, 일본에서 반려견 훈련사를 하다가 사진작가가 된 친구 '토모'가 있었다(Tomohiro).
이 친구 또한 이런 얘기에 흥미로워했고, 같이 그 개들을 보러가자는 얘기가 오갔다. 뜻을 같이 하는 이가 생기니 망설임 없이 바로 몽골행이 추진됐다. 하지만 막상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실제 진짜 목동들과 생활하며 원시 모습대로 사는 방카르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겨우 겨우 수소문 끝에 우리는 '방카르 프로젝트' 라고 하는 소수의 전통 방카르와 목동의 생활 방식을 관찰하고 보존하는 단체를 알게 됐고, 그곳의 공식 사진가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우리에게 말했다.
"원시 상태 방카르를 보겠다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오는 사람은 이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묘한 사명감까지 얻은 채, 몽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흐르는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몽골인과 방카르
몽골에서 방카르 프로젝트 포토그래퍼이자 가이드인 '볼드'를 만나 현지 목동과 방카르를 만나러 떠났다. 편도로만 1000km, 즉 봐도 봐도 끝을 알 수 없는 잔디와 사막이 섞인 대지를 방카르를 만나기 위해 달렸다.
▲ 목동이 보여준 몽골 토종견 방카르의 이빨. 이빨을 보자 왜 수천년전부터 몽골의 맹수와 맞섰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
ⓒ 최민혁 |
그러자 목동이 개들에게 차분하고 단호한 몸짓을 보였다. 마치 개들에게 "손님이야 괜찮으니까 그만해" 라고 하는 듯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반려견 교육을 할 때, 보호자가 리드하여 보호자의 몸짓과 태도로 개를 안심시키는 교육을 자주 한다.
이들은 나처럼 따로 배운 적이 없을 텐데도, 그 방법과 유사한 모습으로 본능적으로 개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반갑고도 신기했다.
개들은 잔뜩 날세웠던 경계를 누그러뜨렸다. 현지 목동 가족은 아빠, 엄마, 딸로 구성돼 있었다. 그들 또한 외국 손님이 처음이라 그런지 긴장하고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점점 목동 가족들은 우리에게 경계를 풀고 웃어주었다.
▲ 물을 마시는 방카르 무사히 아이와 400마리의 가축의 물을 먹는 것을 확인하고 그들은 물을 마셨다. 이것은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라, 개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는듯한 모습이었다. |
ⓒ 최민혁 |
이 목동 가족들이 키우는 양과 염소는 총 400여마리. 10살 여자 아이 '미셀'과 방카르 2마리 '바봐지'와 '풋사그'가 양, 염소 물을 주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셀의 부모님은 방카르들을 믿고 아이들과 개만 보냈다. 한국이라면 전문가들이 '산책 제한'을 권유했을 날씨임에도, 방카르들은 묵묵히 아이와 양, 염소를 살피며 길을 걷는다.
일반적인 개에 대한 상식으로는 이해 되지 않는 모습. 하지만 그게 몽골 자연에 적응한 자연 견종 방카르의 모습이었다. 혹시나 싶어 내가 챙겨간 물을 손에 그릇처럼 만들어서 물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방카르 두 마리 모두 왜인지 마시지 않았다. 이후 편도 4km를 걸어 물이 잔잔하게 있는 습지에 도착했다. 양과 염소들이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방카르들이 다 관찰하고 나더니, 이제야 자기가 맡은 일이 다 끝났다는 듯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기 할 일을 다 마쳐야 비로소 물도 마시겠다는 의지였던 것이다. 똑똑하고 믿음직스러운 이 개들을 보니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 밀려왔다.
일상에 돌아와 맹수들이 움직이는 밤이되면, 개들의 짖는 소리는 더 강해지고 달라졌다. 목동의 말로는 근처에 늑대도 있고 눈표범도 산다고 했다. 그 날 밤, 우리 텐트와 멀지 않은 곳에 맹수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이상하게 개들이 지켜주는 밤이면 안전함을 느꼈다. 현대의 첨단 보안 시설보다도 든든해 유독 잠이 잘 오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 몽골에서 단체사진 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려견 훈련사로서 절대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추억이었다. |
ⓒ 최민혁 |
현대의 많은 개들이 행동교정이 필요하고, 사람들이 개들과 소통을 어려워하는 것은 인간이 개를 대하는 태도가 변하고, 개들을 개로서 이해하고 다가가지 않아서 생기는 것은 아닐까? 몽골은 단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한국의 개들과 보호자들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몽골 새벽 방카르의 믿음직한 짖음 소리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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