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테마섹처럼 한국형 국부펀드 만든다...지주회사 규제도 손질

정부가 한국형 국부펀드를 설립해 인공지능(AI) 대전환 등을 위한 장기 투자를 해나가겠다고 11일 밝혔다.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의 대규모 투자를 가로막아온 지주회사 규제도 손질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업무 보고에 참여해 “내년 상반기 중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을 추진해 국부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증식해 미래 세대로 이전하겠다”고 말했다. 세계적 국부 펀드인 싱가포르의 ‘테마섹’, 호주의 ‘퓨처 펀드’ 등을 벤치마킹해 내년 상반기 한국형 국부펀드를 설립하겠다고 밝히면서다.
현재 한국에서 법적으로 유일한 국부펀드는 한국투자공사(KIC)다. 기재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외환보유액 등 외화 자산 일부를 위탁받아 운용하기 때문에 고위험ㆍ고수익 투자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구 부총리는 한국형 국부펀드의 운용 규모와 방식에 대해 “초기엔 물납 주식 등 작은 재원으로 시작해서 수익률을 높여 규모를 키워보자는 것”이라며 “KIC와 달리 정부가 국내든 해외든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고, 민간 전문가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도 있는 상업적 베이스로 운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1300조원 규모의 국유재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상도 내놨다. 우선 양질의 국유재산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효용성이 낮은 재산은 처분하되 할인 매각은 원칙적으로 금지해 제값을 받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300억원 넘는 국유재산을 매각할 땐 국회 상임위원회 사전보고를 거치도록 하고, 부처별 매각 전문 심사기구를 신설하는 등 관리체계를 개편한다. 공공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자산은 선제적으로 매입하고, 국유재산 복합개발을 통한 공공주택 공급도 확대할 계획이다. AI·신재생에너지 등 전략산업 관련 기업에는 국유재산 사용료 감면도 늘려준다. 구 부총리는 “국유재산이 1300조원이 넘는데 1%만 수익이 나도 13조원”이라며 “적극 관리해 가치를 극대화하고 미래세대에 부를 이전하겠다”고 했다.
대규모 수출ㆍ수주를 지원하는 전략수출금융기금도 신설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원전ㆍ방산ㆍ에너지 등 대규모 해외 수주사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수익이 나면 국가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세금인 국가 재정과 역량을 투입해 대규모 전략 사업을 수주해도 혜택은 소수 기업이 누린다”며 “전략수출기금이 함께 지원해 수익의 일부를 환수하면 국민 생활과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투자 ‘100% 지분 족쇄’도 푼다...지주회사 규제 손질
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주회사 규제도 손질한다.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하는 현행 규정을 ‘50% 이상’만 확보하면 되도록 완화해, 기업의 자금 조달과 투자 유치가 용이해지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는 3단계(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까지만 인정되며, 4단계 지배(증손회사)에는 100% 지분 보유라는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그간 SK하이닉스 등은 반도체처럼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가 반복되는 산업 특성상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신설해 신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주회사와 금산분리(금융·산업자본 분리)에 대한 규제 때문에 자본 확보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고 재계는 호소해왔다. 규제가 완화되면 SK하이닉스 등의 경우 손자회사가 새로운 증손회사를 설립할 때 필요한 최소 자본금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특수목적법인(SPC)을 활용한 투자 유치나 시설 임차 등도 용이해진다. 이를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반도체 업종에 관한 특례 규정을 마련한다. 다만 수도권 집중이 심화하지 않도록 지방투자를 우선하거나 최소한 연계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승인도 받도록 했다.

공정거래법은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업이나 보험업을 하지 않는 국내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과 일반지주회사가 금융업 혹은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금하는 금산분리 원칙을 두고 있다. 정부는 지주회사 규제 완화가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구 부총리는 “금산분리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부분에는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도록 금융적인 측면에서 좀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는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전략 산업이 민간·정책 자금을 설비 확대 등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장기 임대로 초기 투자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보고했다. 첨단 산업 분야 지주회사가 금융리스업을 할 수 있도록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허용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기재부는 기업의 경미한 의무 위반 행위는 과태료로 전환하고 위법행위는 실질적으로 억제할 수 있도록 금전적 책임을 강화하는 등 경제 형벌을 합리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세종=김경희·김연주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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