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나와서는 안될 KBO 최초의 영구결번
영구결번은 단순한 등번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팀의 전설이자, 그 뒤에 담긴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지정되는 특별한 상징이죠. 이 시리즈에서는 한국 프로야구 영구결번의 숨은 이야기와 그 의미를 하나씩 되짚어봅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이자 비운의 유망주 김영신 선수입니다.
프로구단에 입단한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목표가 있습니다. 팀의 우승에 공헌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높은 연봉을 받아 경제적 부를 축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중에서도 영구결번을 얻는 것이 가장 영예롭다고 하는데요. 영구결번이 되면 선수들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번호를 달지 못합니다. 구단과 팬들이 모두 인정하는 레전드라는 의미죠.
그렇다면 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는 누구일까요?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 LG 트윈스 김용수? 한화 이글스 장종훈?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불세출의 스타들이지만 이들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한국프로야구 영구결번은 지금까지 17명인데, 첫 대상자는 비운의 유망주인 OB 베어스의 김영신입니다.
김영신. 아마 낯선 이름일 텐데요. 야구를 꽤 많이 보신 팬들이라도 김영신을 아는 사람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KBO 공식 기록을 살펴본 결과, 통산 경기 출장 기록은 단 25경기. 타율 0.156에 불과합니다. 1985년에 OB 베어스에 입단한 그가 2시즌 동안 쳐낸 안타 개수는 단 5개. 홈런은 없었습니다.
성적으로는 영구결번의 문턱은커녕 1군에서 활약할 수도 없었을 만큼 초라합니다. 김영신이 영구결번이 된 배경에는 ‘추모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어떠한 사유가 있었길래 초라한 성적의 김영신이 영구결번이 될 수 있었을까요.
김영신은 프로야구 초창기 손꼽히는 유망주였습니다. 1984 LA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포수로 출전해 간판 투수 선동열과 호흡을 맞추는 등 유망주로 손꼽혔습니다. 상문고와 동국대를 거쳐 1985년 OB 베어스에 입단한 김영신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포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팀에서 경기를 나갈 수 있는 건 1~2명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OB 베어스는 ‘포수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걸출한 포수들이 많았는데요. 김영신 외에도 아마추어 때부터 걸출한 포수로 기대를 받았던 김경문과 조범현이 주전 경쟁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김경문과 조범현이 주전 경쟁을 하던 사이, 김영신이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의 경기 출전 기록이 2년 동안 25경기에 불과한 이유였죠.
결국 그는 자신의 삶을 비관했습니다.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든 김영신은 한강에 투신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맙니다. 1986년 8월 한강 하류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김영신이 성적 부진을 비관하여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진 자살로 결론지었습니다. 야구계뿐 아니라 사회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OB 베어스는 김영신의 영결식을 치르고 그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그의 등번호 54번을 영구결번 처리했습니다. 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이 탄생한 비화입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자신의 신세와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유망주. 다시는 똑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취지에서 영구결번이 지정된 만큼 야구팬들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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