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vs 디지몬, 세기의 대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이런 신발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른 기억이 있을지 모른다. 광고 끝은 꼭 이렇게 마무리 되던, 그 시절 어린이들의 ‘인싸템’ 만화캐릭터 운동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보기가 힘들어졌는데 유튜브 댓글로 “만화캐릭터 신발은 왜 없어졌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어린이 상품 소비시장의 변화와 국내 업계 상황이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TV 공중파 방영 애니메이션이 아동 소비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급격히 줄고, 때마침 아동인구가 급감한 데다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업체들이 수익이 되지 않는 사업을 정리했기 때문.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만화캐릭터 운동화 시장은 ‘아티스’와 ‘월드컵’ 양강 구도였다. 아티스 브랜드를 생산하는 건 ‘프로스펙스’였고, 월드컵 브랜드는 ‘르까프’로 유명한 화승그룹이었다.

당시만 해도 초등학생들에겐 오후 5~6시 시간대 TV에 방영되는 만화들이 유행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는데 업체들은 이런 점에 주목했다.

프로스펙스 관계자
“유치원이나 특히 초등학교 1·2·3학년들이 하교를 하고 집에 왔을 때 지금은 PC게임이나 아니면 학원 같은 놀거리들이 되게 많은데 그 당시에는 TV밖에 없을 때예요. 하교해서 텔레비전을 딱 틀면 나오는 만화 영화의 캐릭터들이 그렇게 (인기가) 강했대요. 애들 사이에서”

인기의 정점을 찍은 건 아티스에서 2000년에 출시한 ‘포켓몬스터’ 운동화였는데,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제품은 200만족을 넘어 300만족 가까이 팔려나갔다. 당시 6~11세 아동 수가 정부 통계 기준 약 415만명. 그러니까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 절반 이상이 이 신발을 신고 다닐 정도였다는 얘기가 된다.

경쟁사인 월드컵은 ‘디지몬 어드벤처’를 같은해 출시했는데, 이 제품 역시 200만족이 넘게 팔려나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당시 대세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불이 붙었는데, 이 때문에 저작권을 가진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가 높아지는 부작용도 있었다.

이렇게 치열했던 경쟁은 200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는데, 2000년대초를 거치면서 아이들의 여가생활이 TV로 만화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스타크래프트 등 PC게임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영향이 컸다고 봤다.

프로스펙스 관계자
“스타크래프트도 거의 2000년대 중반부터 인기가 많았잖아요. 그러면서 놀거리들이 PC방 문화로 바뀐 거죠.”

또다른 이유로는 아이들 인구가 줄면서 시장 규모 자체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기도 했다. 만화캐릭터 신발의 주요 구매층인 6~11세 아동 수는 2002년 426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8년만인 2010년에는 100만명 가까이 줄어든 328만명이 됐다. 본격적인 아동인구 절벽이 시장을 무너뜨린 셈이다.

여기 쐐기를 박은 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이 시기를 즈음해 업체들은 관련사업을 접기 시작했는데, 아티스는 2008년 프로스펙스에서 아티스 브랜드만 떼어낸다. 아티스는 이후에도 만화캐릭터 운동화를 생산하긴 했는데, 최근 제품으로 알려진 로보카폴리의 라이센스는 저작권자인 EBS에 확인해보니까 2014년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종료됐다.

이 업체는 키오스크 제작으로 주 분야를 틀었는데 수차례 이름이 바뀌어 현재는 바이오산업까지 손을 댄 상태다. 현재도 신발 제품을 생산하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비중은 눈에 띄게 줄어든 듯하다. 현재 온라인에서 확인되는 만화캐릭터 신발은 또다른 EBS 애니메이션 ‘출동! 슈퍼윙스’ 제품이 전부다.

경쟁자였던 월드컵도 2008년 화승에서 독립해 나왔는데, 우리가 신발가게에서 자주 보는 이 브랜드다.회사명은 바뀌었지만 현재도 월드컵 이름으로 신발 생산에 전념하고 있는데, 다만 만화캐릭터 아동화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업체에 현재 생산 중인 관련 제품이 있는지를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