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 윤 대통령 밑에서 살아남기 [강인규 리포트]
[강인규 기자]
▲ 지난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왜 이 살아 뛰던 자식들이 국가의 외면 속에서 죽어가야 했는가?" 나는 세월호 이후 이 참담한 질문을 다시는 던지지 않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녹화해 둔 악몽처럼 고스란히 되풀이됐다. 반복된 것은 안타까운 죽음만이 아니었다. 또다시 한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현장에 나타나, 딴 세상에서 온 듯 황망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야?"
윤석열 대통령 특유의 거친 말투로 다시 읊은,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의 완벽한 재판이었다. 시민들의 비판이 대통령을 향할 때 으레 나오는 '진노'와 '질타'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냐 이거예요.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 8년 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에 "격노"하며 "해경 해체"를 선언했었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전임자와 완전히 똑같이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세월호 참사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결국 대국민사과를 통해 이렇게 국가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 그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고는 해외순방의 길에 올랐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2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 쯔노이짱바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캄보디아 정상 주최 갈라 만찬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국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 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는 발언으로 얼굴에 먹칠을 한 그가 무엇보다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이 '바이든과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그림이었을 터이다. 바이든의 팔을 감싸 안은 김건희 여사의 모습은 이 '문제없음'에 확인도장을 찍고 싶어 하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사진 왼 편의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드러낸 채 순박하게 웃고 있었다. 취임 후 6개월 동안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좀처럼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던 탓에, 이 환한 표정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생경함이 사라진 뒤 내 마음을 채운 것은 깊은 두려움이었다.
제 나라 시민이 희생됐으니 울고 있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외교 무대는 본래 웃는 자리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캐나다 총리에게 외교 결례에 대해 직접 항의하는 상황에서조차 얼굴에 웃음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라.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국가 정상회의는 웃음, 칭찬, 세련된 유머의 가면 뒤로 살벌한 이해관계가 비수처럼 부딪히는 살벌한 전쟁터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무장해제된 웃음에서 천진함에 가까운 무지를 보았다. 그리고 이 주관적 우려가 객관적 현실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 실언 이후 고집스럽게 진행되는 언론 때리기를 보면서, 정상회의에서 일어날 일 세 가지를 예상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사진이고, 두 번째는 그가 실언에 따른 '부채의식'에서 미일 공동전선에 더 적극적으로 들러리를 서게 되리라는 우려였다. 안 그래도 국제관계에 합리적 균형감을 갖추지 못한 그가 죄책감에서 '호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리라는 염려였는데, 취임 후 6개월을 지켜본 내게,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우려를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가장 염려됐던 부분은 '덮고 숨기기'라는 돌파구였다. 지도자가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통치하는 나라'라는 상식에 의거해 자신의 행동과 정책을 바꿀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시민과의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민주국가의 지도자라면 이 두 축의 어느 지점을 오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비판에 귀를 막은 채 공공연히, 혹은 비밀스럽게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여기서 마지막은 최악의 선택이다.
놀랍게도, 우려했던 정보 통제는 출국 전부터 '전용기 탑승 배제'라는 형태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한술 더 떠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한국 취재단을 배제한 상태에서 진행했다. 자신의 실언도 책임지지 못하는 지도자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회담에서 어떤 약속을 했는지 시민들이 전혀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지만,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가 우려했던 것 이상으로 단순하고, 따라서 위험한 인물이었다.
▲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윤석열 대통령은 무대에 올라 바이든 대통령과 48초 간 만나 얘기를 나눴다. 이후 윤 대통령이 행사장을 나오면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고 발언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포착되며 논란이 일었다. |
ⓒ MBC |
무의식중에 흘린 발언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것은 누구에게든 난처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일상적으로 겪을 만큼 흔한 일이기도 하다. 미국 정가에 "실언이란 말해서는 안 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어차피 정치인들은 당사자가 듣지 않는 자리에서 서로 비난하고 욕설도 하며, 모두가 이 사실을 안다. 바이든 대통령부터 말실수가 잦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는 어떨까? "이 XX들 …쪽팔려"가 전 세계에 보도된 지 15시간여가 지나서야 본인도 아닌 대통령실이 나서서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했다고 해명했다. 욕설의 대상도 미국이 아닌 한국의 국회였다고도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쪽팔려'의 주어가 사라지게 되는데, 여기서 생략된 말은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국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 [대한민국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대통령실 인재들이 밤새 머리를 맞대고 짜낸 '위험관리' 시도가 고작 이 수준이란 말인가. '내가 욕한 건 귀국의 국회가 아니라, 조국 대한민국의 국회예요.' 차라리 '쪽팔려'의 주어가 대통령 자신이라고 했다면 그나마 수긍했을지 모른다. '대한민국'을 '쪽팔려'의 주어로 쓰면서 이것을 생략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대통령실이 이런 무리한 주장으로 대통령 얼굴에 더욱 먹칠을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당연히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해명하리라 여겼다. 발언의 형식은 험악하지만, 내용은 모욕하기보다는 염려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언이 터지기 직전, 윤 대통령은 바이든이 주최한 '세계기금(Global Fund)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했었다. 바이든은 연설을 통해, 이 기금이 지난 20년간 전 세계 수천 만 명을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에서 구했다고 전한 뒤, 국제사회가 20억불을 약속할 때마다 미국이 10억불씩을 추가로 기부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했다. 세계 정상들의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바이든은 이렇게 덧붙였다.
"미국이 할 일이 많다는 말이 되겠지요. 우리는 의회와 협력해 60억 불을 세계기금에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 기부액은 140억불에 달하게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연설을 듣고, 바이든과 잠시 인사를 나눈 뒤 회의장을 떠나는 도중 그 문제의 발언을 했다. "쪽팔려"가 결코 아름다운 말은 아니지만, 발언의 취지를 잘 설명했다면 별 탈 없이 넘길 수 있는 사건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환호 속에서 약속한 금액이 모금돼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게, 미 의회가 잘 협조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드린 말씀'이라고 해명했다면 끝났을 일이고, 더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과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4박 6일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영접 나온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대통령실 주장대로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 욕설한 것이라면, 사과도 바뀐 대상을 향해야 마땅하다. 주호영 국민의 힘 원내대표도 "그 용어가 우리 국회의 야당을 의미한 것이라고 했더라도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정의당이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에는 시기가 따로 있지 않다. 사과하시라"고 요구했을 때,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였다. 이 상식을 뛰어넘는 발언이 이해 가능한 조건은 하나뿐이다. 애초에 보도된 발언 내용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 자체가 누구보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에게 모욕적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두 명이 길을 다니면서 그중 한 명이 행인의 발을 밟거나 길을 막는 등의 일을 벌일 때,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해명하고 사과한다면 어떨까? 이런 행동은 당사자가 판단능력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 본인은 물론, 주위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통령 욕설 논란에 '유감'을 언급하긴 했으나, 그것은 가정에 근거한 '잠재적 유감'이었다. 그는 앞의 발언에 앞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후 두 달 넘게 대통령실과 여당 그 누구도 '사실관계'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기막힌 상황은 이후 이태원 참사 책임규명이 어떻게 흘러갈 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무책임의 카르텔' 중심에 대통령이 앉아 있다.
지난 14일, 국회에서는 독특한 장면이 펼쳐졌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이상민 장관을 향해 "본인의 소속과 직함을 말씀해 달라"고 요구할 때, 물끄러미 바라보며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는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는 직함 자체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웅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정부 '행정안전부 열린장관실' 홈페이지에는 이상민 장관 사진 위에 대문짝만하게 쓰인 글귀가 있다.
"안전한 국민, 일 잘하는 정부. 행정안정부 장관 이상민"
이 표어는 부조리함을 넘어, 조롱으로 까지 들린다. 우리가 '무책임'의 대명사로 기억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세월호 사태 이후 '최종 책임자'로서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재난안전 주무처인 안전행정부 수장이었던 강병규 장관을 취임 두 달 만에 경질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거부한 것은 물론, 순방에서 돌아온 뒤에는 마중 나온 이상민 행정안정부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는 위로까지 건넸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대통령을 뽑은 것일까? 불과 10년도 안 된 비극에서 우리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일까? 온 사회가 집단 기억상실에라도 걸렸던 것일까? 아니면 이준석 전 대표가 고백하듯, 여당과 대통령 측근이 '양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속여 판 까닭에 유권자들이 속아 넘어간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앞으로 4년 반 동안 살아남아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책임한 대통령을 통제하는 것이다. 지난 6개월간 줄곧 '자유'를 외치던 대통령은, 스스로 언론 통제를 시작한 시점부터 슬그머니 '국익'과 '헌법수호'로 구호를 바꿨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큰 국익은 없으며, 헌법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닌 시민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8년 전 전국 거리에서 수없이 외쳤건만, 이 헌법 첫 구절은 생경하게만 들린다. 헌법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우리사회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되돌아간 까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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