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중립' 지키기... 비겁한 언론이 최악의 비극 낳았다
[오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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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히틀러: 파시즘의 진화> |
| ⓒ 넷플릭스 |
내란 사태 이후에 이 말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주변의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보게 된 다큐멘터리 <히틀러: 파시즘의 진화(Hitler: The Career)>(아래 <히틀러>)는 인상적이다.
<히틀러>는 1977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이고 히틀러 시대의 여러 영상자료를 활용한다. 영화는 히틀러(1889~1945)의 어린 시절과 화가를 꿈꿨던 시절을 잠시 비춰주고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1920년대 중반부터 정권을 잡은 1930년대 중반까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는 많은 연구가 있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이후 체결된 불평등한 베르사유 조약과 그 조약이 독일에게 강제한 가혹한 전쟁 배상이 히틀러의 부상을 가져온 핵심적 배경이다. 1929년부터 본격화된 대공황은 독일의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경제가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는 진실을 <히틀러>는 확인해 준다.
히틀러의 전쟁에 환호한 독일인들
내가 주목하는 건 이런 상황에서 독일 대중이 갖게 되는 집단심리이다. 그런 심리는 100년 전 독일이나 지금 우리 시대나 비슷하다. 특히 혼란한 상황에서 대중이 그들이 선출한 지도자에게 갖게 되는 관계를 주목한다. 감당하기 힘든 전쟁 배상과 경제공황은 독일의 전후 복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 대중은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자들, 특히 1차 대전의 승전국가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다.
<히틀러>에는 그 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나는 오래전부터 2차 세계대전 진행 과정에 일반 독일인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가 궁금했다. 1940년 6월에 히틀러는 프랑스를 침공해서 파리를 점령한다. 그걸 보고 독일인이 열렬한 환영과 환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쌓였던 내부 불만이 외부와의 전쟁과 정복에 대한 환영으로 이어졌다. 히틀러는 그런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파시즘의 길로 빠르게 나아갔다.
나는 <히틀러>에서 대중의 히틀러 지지는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론과 언론과 지식인의 태도는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싶다. 이런 질문은 내란 사태의 격동기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 이곳의 현실에도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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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1년 히틀러가 연설하는 모습. |
| ⓒ 위키미디어 공용 |
당대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하나의 독일, 단결된 독일이 되려고 그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배제했다. 반대하는 자들은 국가의 적으로 가혹하게 탄압했고, 그 결과 수많은 독일 지식인이 망명을 떠났다. 하지만 히틀러의 공허한 약속은 국가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언제나 말보다 힘이 센 건 현실이다.
그렇다면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저들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겪는다!) 그들을 제압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대중을 호도하는 게 필요하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히틀러가 5000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2차대전을 일으키고 히틀러의 자살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 대중이 히틀러와 나치당에 강하게 동조한 데는 이런 이유가 작동한다.
다시 묻는다. 대중은 지금 돌아보면 광기에 가까웠던 히틀러의 선동에 왜 넘어갔는가? 대중이 무지해서? <히틀러>는 히틀러의 대중 연설 장면을 통해 영상의 기술과 효과가 대중 선동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기획된 카메라 워크와 앵글, 교묘하게 편집된 이미지로 지금의 관객에게 알려준다.
히틀러는 스스로를 미디어 앞에서 어떻게 포장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이미지 조작을 통해 히틀러는 더욱 효과적으로 대중 집회에서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고, 자신을 독일을 구원할 지도자로 자리매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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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2년 무장친위대 핀란드 의용대대를 만난 괴벨스 |
| ⓒ 위키미디어 공용 |
좌파 및 자유주의 언론은 히틀러와 나치당의 극우적 이념과 폭력성을 비판했다. 보수 우파 언론 일부는 나치를 위험한 급진파로 경계했으나, 대부분은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대항마로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부 극우 선전지는 나치의 반(反)유대주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주목할 점은 중립적 혹은 기계적 균형을 취했던 언론이다. 이들은 히틀러와 나치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 중립을 취했다. 히틀러의 연설이나 나치당의 정책을 단순히 전달하며, 그 위험성을 충분히 지적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그 결과 대중에게 나치를 정상적인 정치 세력으로 보이게 하는 데 이바지했다. 양비론, 기계적 중립이 언론의 정도라고 믿고 있는 지금 이곳의 일부 언론에서도 보이는 모습이다. 이런 기계적 중립이 낳은 결과는 무엇인가?
나치 정권은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마자 괴벨스가 이끄는 국민계몽선전부를 설립하고, 언론, 영화, 출판물, 라디오 등을 통해 나치의 메시지만 전달하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집권 직후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나치에 반대하는 언론사나 기자들은 체포되거나 강제 폐간되었다.
이런 과정은 지난 12월 3일 계엄령 선포 후 공고된 1차 포고령 3호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내란 수괴가 좋아한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히틀러 시대를 겪은 이후에 나온 독일의 1949년 기본법에서 따온 것이다. 그 취지는 정치적 반대파를 보호하는 것이다. 독일은 히틀러 시대를 겪으면서 정치적 반대자를 계엄령 같은 폭력으로 제거하려 드는 자가 자유민주주의 파괴자라는 걸 깨달았다.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 한국 사회도 그 의미를 뼈아프게 숙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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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은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을 내세우며 자기 역할을 포기하면 안 된다. |
| ⓒ pixabay |
내가 지성의 유무를 판단하는 기준 하나는 사안을 판단할 때 이런 식의 양비론을 내세우는가다. 지성이 있다면 도토리 키도 재야 한다. 50보, 100보가 같다고 얼버무릴 게 아니라 그 차이를 세밀히 따져야 한다. 50보와 100보는 전혀 같지 않다. "구체적 상황의 구체적 분석"(알튀세르)이 지성의 기준이다. 가수의 발언이야 그렇다 치고, 지금 적지 않은 언론이 취하는 태도,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기계적 중립이나 양비론이 어떤 치명적 문제를 가졌는지를 알려주는 경고 하나를 적어둔다.
"언론 대부분이 스스로 혼란에 빠져 균형, 객관성, 중립성, 그리고 결정적으로 진실을 구별하는 데 애먹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낡은 패러다임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 온난화 같은 경우 99.9%의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증거가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극소수 사람들과 똑같이 다뤄지고 있잖아요. 나는 오래전 보스니아에서 이뤄진 인종 청소와 집단 학살을 취재하면서 배운 게 있습니다. 희생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공격하는 사람과 동등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도덕이나 사실의 거짓 등가성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 도무지 입에 담지 못할 범죄와 그 결과의 공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립성이 아니라 진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실을 진부하게 만드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믿습니다." (미치코 가쿠타니,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에 따라 내란 사태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다. 그걸 못한다면 언론의 임무를 포기한 것이다. "도덕이나 사실의 거짓 등가성"에 근거한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을 내세우면서 언론이 자기 역할을 포기하면 <히틀러>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는 침몰한다. <히틀러>는 대중과 위임권력 사이에서 언론이 왜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씁쓸하게 알려준다. 내란 사태는 최대한 빨리 해결되어야 하지만, 나는 언론을 포함한 지식인의 역할도 깊이 따져봐야 한다고 믿는다. 내란 사태가 남겨놓은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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