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에게 시제는 의미가 없다
루이 비통과 전지현의 첫 행보에 함께하게 돼 기쁩니다. 루이 비통이라는 하우스를 생각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여행, 장인 정신 그리고 클래식함이요. 건축적이고 미래적인 요소뿐 아니라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 내는 컬렉션 의상에 항상 매력을 느꼈어요. 특히 오늘 착용한 크루즈 컬렉션은 우아하면서도 진취적인 여성상을 그려낸 것 같아 더욱 마음에 들어요.
지금 한창 촬영 중인 〈북극성〉은 〈작은 아씨들〉에서 합을 맞춘 김희원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재회한 작품이죠. 문주를 통해 어떤 도전을 맞이하고 있나요
외교관 출신인 문주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분쟁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인물이에요. 단단하면서도 친화적이고, 조용하지만 과감한 사람이지요. 캐릭터의 무드가 워낙 다채로워서 도전할 수 있는 요소도 많아요. 몸짓과 말투, 눈빛 하나하나를 새롭게 만들어가며 임하고 있습니다.
상대역인 강동원 배우는 용병 출신인 산호 역할이라고요. 두 사람의 호흡은 어떤지
문주와 산호의 첫 만남을 촬영하고 모니터하는데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러웠어요. 왜 지금에서야 만났나 싶을 정도로 친숙하더군요. 서로 출연작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겁고 편안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서경 작가가 최근 인터뷰에서 “저는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릴 때도 언제나 트레드밀 위에 있었다”는 당신 말을 인용했더군요. 감정 상태와 관계없이 트레드밀에 오르는 건 어떤 마음인가요? 꾸준히 운동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요
저에게 운동은 명상과 같아요. 신체적으로 힘에 부치면 어느 순간 제 호흡에 집중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바로 그때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차분해지죠. 그 느낌을 좋아해요.
현장에서 전지현은 어떤 사람에게 동료애 혹은 존중을 느끼나요
현장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잖아요. 각자가 자기 일에 집중해야 하고요. 그 순간 발생하는 서로 다른 에너지가 어우러지며 현장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특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연스럽게 존경심을 갖게 되죠.
우리가 당신을 봐온 오랜 시간 동안 ‘전지현’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장면이 여럿 있습니다. 스스로 화면 속의 자신을 봤을 때 정말 마음에 들었던 적도 있나요? ‘아, 이 장면이 이렇게 나왔구나. 내 표정이 이랬구나’같이 쾌감을 느낀 순간이요
〈엽기적인 그녀〉에서 교복을 입고 클럽에서 주민등록증을 내미는 장면, 〈암살〉의 안옥윤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장총을 쏘는 장면, ‘17차’ CF에서 길거리를 걷는 장면이 먼저 떠올라요. 저 스스로 보고 ‘좋았다!’기보다 사람들이 그 장면을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고 애정을 갖게 된 장면이죠. 아! 큰 사랑을 받았던 〈도둑들〉에서 펩시(김혜수)의 뒷담화 하는 장면은 당시에는 계속 연습하며 찍었던 장면인데요, 어느 순간 몰입했나 봐요. 나중에 영화를 보니 꽤 ‘찰져서’ 쾌감이 들었습니다(웃음).
“어마어마한 쓰앙년 같아” 말이죠(웃음)! 예니콜도 그렇지만 전지현이 만들어온 발랄하면서도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의 궤가 있죠. 어떻게 그런 역할을 자연스럽고 과감하게 해낼 수 있었나요? 많은 배우가 코믹 연기를 가장 어려운 지점으로 꼽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용기가 필요해요. 그렇게 연기하는 제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보이는 것. 스스로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 말이죠.
그런 면에서 ‘소심하다’는 전지현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묘사 같습니다. 일찌감치 해외 대작에 출연을 결심했고, 수중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액션을 선보였죠. 전지현도 두려운 게 있나요
그럼요. 저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은데 언제라도 일이 끊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죠. 배우라는 직업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준비된 상태로 있으려 해요. 자기관리일 수도 있고요.
지금의 10대가 2000년대 초반의 무드에 열광하듯 좋은 작품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받으며 새롭게 소환되기도 합니다. 배우로서 더 마음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여러 작품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래도 죽으나 사나 ‘천송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속 시원하게 연기했던 캐릭터이기도 하고, 이보다 더 웃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요. 〈별에서 온 그대〉는 촬영하면서도 너무 즐거웠던 작품이에요.
한편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놓치고 싶지 않은 가치가 있다면
건강함. 특히 지속 가능한 몸과 정신의 건강을 늘 생각합니다. 예술적 영감과 즐거운 현장, 안정적 일상, 이 모든 것을 얻으려면 저부터 곧게 서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저를 믿고 함께 일하는 분들을 위한 의무이기도 해요. 제가 건강하게 현장을 지킬 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엽기적인 그녀〉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를 제시했고, 천만 관객을 동원한 〈암살〉은 크레디트 맨 처음에 당신의 이름이 오릅니다. 멜로와 액션, 공포와 휴먼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요. 배우로서 이룬 것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어떤 특정한 영역이나 분야를 일궈낸 것이 자랑스럽다기보다 계속 일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느껴요. 지금까지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일할 수 있다는 것, 배우로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한없이 감사합니다.
여전히 일의 기쁨을 찾는군요. 그렇다면 요즘 일상에서 뿌듯했던 순간,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요즘 매일 도시락을 싸요. 이른 새벽 오늘 하루 먹을 것을 준비하고 운동을 마친 후 촬영장으로 향하는 것이 최근 세수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제 루틴이 됐어요. 감독님이 현장에서 워낙 식사를 잘 안 하셔서 함께 건강식을 챙겨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시작한 일인데, 저도 즐거워요. 새로운 맛을 찾을 때마다 만화 주인공처럼 한껏 뿌듯해하죠. “정말 최고의 들기름과 두부의 조합을 찾아냈어!”라면서요.
그러고 보니 오늘 추천한 가게도 정말 맛집이더라고요. 좋은 음식을 먹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은 전지현에게도 큰 즐거움인지
전 늘 궁금해요. 새로운 모든 것이. 요즘은 어디에서 어떤 것이 유명한지 그리고 사람들이 왜 그걸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요.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을 알게 될 때 아무리 소소한 거라도 배우는 기분이 들거든요. 물론 미식 탐방의 결과 돌아오는 건 다이어트뿐이지만 말입니다(웃음).
픽션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현실을 토대로 하죠.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깊게 고민도 할 테고요. 그게 나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이해 범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까요
물론이죠. 작품 속 인물은 언제나 누군가와 새로운 대화를 나누게 돼 있고, 저 역시 캐릭터의 입을 빌려 다양한 인물 군상을 만나니까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 실제로 연기할 때 깨닫는 것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공개됐을 때 알게 되는 것이 모두 달라요. 그렇게 쌓인 것들이 제가 접촉할 수 있는 세상의 단면을 좀 더 넓혀주는 건 분명하죠.
정비된 산책로만 걷다 보면 종종 잊곤 하는 사실입니다만 〈지리산〉은 산이 얼마나 많은 삶과 죽음을 품고 있는지 보여준 작품이었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 순간이 있다면
엄청나게 대단한 장소보다 서울숲이 떠올라요. 산책으로 종종 찾는데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공원 풍경이 변하는 걸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되죠.
2024년 4분의 3 지점까지 달려온 지금 전지현의 마음에 남은 가장 큰 파편은
지난여름 독일에서 개최된 ‘유로 2024’ 경기를 가족과 관람했는데,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낯선 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개최한 엄청나게 성대한 파티에 초대받지는 않았으나 그 누구보다 파티를 잘 즐기고 온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축구 팬으로서 정말 순수하게 즐겼군요(웃음). 남은 3개월의 풍경은 무엇으로 채워질지
촬영이죠. 촬영을 무사히 마치는 것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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