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에 낄낄대는 사이 '괴물'은 자라난다
[이하나 기자]
5월 중순, 경기도 한 고등학교의 체육대회에서 두 명의 남학생이 여성혐오 문구가 담긴 피켓을 만들어 사진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곧 온라인에 유포되었고 X(구 트위터)에서 여성혐오와 여성대상성범죄를 주로 알리는 계정에 포착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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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육대회에서 촬영된 피켓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발견된 여성혐오 문구를 담은 피켓 |
| ⓒ X(구 트위터) |
이후 해당 지역 시도교육청 등에 이 시건 관련 집단민원이 접수되면서 사건이 확대되었다. 해당 지역 시의회 홈페이지에는 '해당학교의 여성차별적 '계집신조' 사건의 가해자를 징계하고 피해학생을 보호하라'는 류의 게시글이 폭주했다. 온라인에서는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은 남학생들의 신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신상 공개 이후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고 지난 21일 <문화일보>는 "경기 안양 만안경찰서는 지난 20일 안양시 소재 한 고교 학생들의 신상을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이들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해당 고등학교는 22일 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게시하고 '성차별적 인식이 드러난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하며 선도 처분 여부는 생활교육위원회를 통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성인지 감수성, 양성평등, 인권 존중 등을 주제로 한 교육도 정기적으로 실시하겠다'며 사과를 전했다.
한편 안양여성연대는 최근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해 학교 내 혐오와 차별 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며 긴급성명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안양여성연대의 성명서가 공개되기 전 안양여성연대 외 지역 일부 인사들이 사실이 왜곡되어 있으며, 학교 사과 발표를 인정하고 학교 보호가 우선이라 주장하여 긴급 성명 발표를 보류했다. 안양여성연대는 주말을 넘겨 성명서를 다시 발표하며 학교의 사과와 대처방안을 환영하고 이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는 개별학생의 문제가 아닌 지역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밝히며, 국가, 교육청, 지역사회 모두가 성찰과 변화의 지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제육볶아달라고 하면 패드립인가요?
네이버지식인에는 '학교에서 남자애들이 계집계집 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려달라'거나 '반에서 남자애들이 제육볶아온나 제육얘기하면서 지들끼리 웃는데 무슨 뜻인가요?'라는 질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남자선배가 계집이라고 부릅니다', '친구한테 계집같다는 건 뭔가요?', '엄마한테 제육볶아달라고 하는 게 패륜인가요?'라는 질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질문은 심지어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쥬니버 Q&A에서도 발견된다.
계집신조와 함께 떠도는 '제육이나 볶아온나'는 한 게임유튜버가 자신의 미래 배우자상을 이야기하며 새벽에 자다가도 깨우면 일어나서 제육볶음을 해주는 여자를 지칭한데서 비롯되었다. 최근 SNS에는 '제육이나 볶아, 돈까스나 튀겨'라는 가사를 붙인 댄스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다. 계집신조와 비슷한 맥락으로 아무 때나 남성들이 좋아하는 메뉴인 '제육볶음'과 '돈가스'를 해내는 것이 여성의 할 일이라는 뜻이다.
5월 서울의 모 대학교에서 축제 주점 부스에서 제육볶음에 '제육 볶아온 나'라는 메뉴명을 썼다. 이 학교에서는 '직원 미모 보장'이라는 문구까지 사용했다. '제육 볶아온 나'가 의심스러운 상황에 일부 여성 아이돌의 이름을 언급하며 '□□□, △△△, ○○○ 보유중'이라 적은 것이 논란을 부추겼다.
고등학교에서 촉발된 여성혐오 문구의 피켓은 공개된 장소에서 여성혐오를 드러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네이버지식인의 질문 사례에서도 보듯이 학교 내에서 여성을 혐오하고 성차별을 조장하는 문화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만연해있다. 혐오와 차별은 일부 개인의 일탈이거나 그 의도를 모르고 전시하는 것이 아니며, 학교 공동체에만 국한된 것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학교 내부나 관계자수준에서 원만히 해결하라며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꺼리는 것은 대다수 비청소년들이다. 경계가 없는 혐오와 차별문화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련의 사건을 두고 최근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 청년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혐오표현이 허용이 되는 분위기는 특수하게 조성된다"라며 "혐오문화는 널리 퍼져 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절대 허락되지 않는 공동체도 분명히 존재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게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혐오표현은 끝도 없이 이어지지만 분명히 자정하려는 노력도 있다"라며 "이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 자체가 그가 속한 공동체와 그 발언을 한 사람의 수준을 보여준다"라고 일갈했다.
고등학교 체육대회에서의 계집신조, 중학교에서의 제육볶음 급식챌린지, 초등학교 학생들이 쥬니버에 묻는 '제육볶아달라는 게 패드립인가요?'라는 처참한 질문들은 혐오와 차별의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이 말들을 저들끼리 낄낄대고 은폐하며 즐기는 사이에 무럭무럭 더러운 말들을 먹고 자란 괴물이 세상에 튀어나왔다. 우리가 5월 27일 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목도한 끔찍한 여성 신체에 관한 폭력 묘사 발언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광범위하게 퍼진 혐오와 차별의 농축된 압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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