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답 없는 일상… 자연에 묻다

맹경환 2024. 10. 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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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데이비드 B. 아구스 지음, 허성심 옮김
현암사, 480쪽, 2만5000원
게티이미지뱅크


종양학과 예방의학 권위자인 저자는 책이 ‘좌절감’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최신 의학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매일 과학과 의학 저널을 읽지만 힘이 빠진다고 한다.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도 ‘교활한’ 암은 교묘하게 생존 방법을 찾아내 회피한다. 그는 “인간이 직면한 무수히 많은 질병의 희생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과학이 이끈 변화보다 더 많은 변화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나야 한다”면서 “보다 효율적인 접근법의 단서가 자연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고 말한다.

그렇게 저자는 자연, 특히 동물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코끼리는 큰 몸집에도 암에 걸리지 않고, 기린은 고혈압을 달고 살지만 절대 심혈관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 또 많은 동물은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감염증에도 걸리지 않는다. 책은 인간의 건강과 함께 사고방식이나 대인관계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른 생명에게 배울 수 있는 교훈을 다루고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개일 것이다. 현재 개의 품종은 최소 150가지나 된다. 최근 150여년 동안 이종 교배가 많이 이뤄졌다. 공통 조상은 회색 늑대다. 늑대가 어떻게 개로 가축화됐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동안 인간이 필요에 의해 자신을 지켜줄 보호자로, 적적함을 달래줄 친구로 이용하려고 늑대를 가축화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DNA 연구 결과, 개의 가축화는 13만년 이전에 진행됐고, 인간은 고작 1만2000년 전에 정착하고 목축을 시작했다. ‘개가 되고 싶은’ 늑대가 먼저 인간에게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늑대에서는 볼 수 없는 늘어진 귀, 동그랗게 말리거나 짧은 꼬리, 천진난만해 보이는 맑은 눈 같은 개의 특징은 인간에게 다정하게 보이려는 진화의 산물이다. 개는 인간보다 수명이 짧고 빠르게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인간 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 질병의 모델로 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한편에서는 반려견으로 키우는 개의 이로움을 보여주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반려견은 주인의 건강 문제를 반영하는 거울로 불린다. 과체중 개의 주인도 과체중일 가능성이 높다.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오래 산다. 노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2대 사망 원인은 외로움과 심혈관 질환이다. 개는 그 위험을 줄여주기도 한다.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반응성이 낮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혈압이 빨리 회복된다는 연구도 나왔다.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지저분하게 몰려다니는 비둘기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비둘기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비둘기는 2000㎞나 떨어진 곳에서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통신이 발달하기 전에는 ‘전서구’로 불리던 비둘기가 군용 통신 수단으로 활용됐다. ‘인간이 합리적이다’는 관념을 깨뜨린 ‘몬티 홀 딜레마’를 접해도 비둘기는 인간과 달리 현명한 선택을 한다. 3개의 문 뒤에 염소 2마리와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 문을 열면 자동차를 받을 수 있다. 자동차를 고를 확률은 3분의 1이고, 염소는 3분의 2다. 퀴즈쇼 사회자는 뒤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자동차를 기대하며 문 하나를 고른다. 사회자가 나머지 두 문 중 하나를 열자 염소가 나온다. 사회자는 처음 선택을 바꿀지 묻는다. 인간은 대부분 처음 선택을 유지한다. 나머지 두 개의 문에서 자동차가 나올 확률은 어차피 50%라고 생각한다. 사회자는 자동차가 어디 있는지 알기 때문에 나머지 2개 중 염소가 있는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다. 선택을 바꾼다면 확률은 3분의 2로 올라간다. 선택을 바꿔야 유리하다. 비둘기에게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비둘기들은 실험 첫날에는 3번 중 1번꼴로 선택을 바꿨지만 실험을 거듭한 한 달 뒤에는 거의 매번 선택을 바꿨다. 비둘기는 주변 상황을 패턴으로 인식하는 직감력을 갖고 있고,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따르며 선택한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 많은 생각으로 산만해지고 경험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저자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직감을 믿으라”고 권한다.

기린이 심장질환이 없고, 코끼리가 암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타고난 유전자 때문이다. 인간은 기린이나 코끼리가 아니다. 방법은 예방밖에 없다. 책에는 실용적인 다양한 예방법이 제시된다. 심혈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금연하고, 똑바로 누워 잠을 청하고, 치아를 깨끗이 관리하고, 자주 움직여 혈압을 관리하라”고 조언한다. 암 예방을 위해서는 “화학물질과 자외선을 포함해 방사선에 위험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불필요한 비타민과 영양제를 피하고, 염증을 억제하라”고 강조한다.

책의 마지막은 들쥐 연구를 통해 본격화됐던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이야기다. 옥시토신은 아기를 낳아 기르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할 때 나오는 뇌 화학물질이다. 옥시토신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강화하도록 돕는 ‘사회적 뇌’의 윤활제 역할도 한다. 타인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주고, 삶의 의욕도 높여준다는 연구도 많다. 일상생활에서 옥시토신의 덕을 보기 위해 저자는 “낯선 사람과도 대화하고, 사람과 동물의 눈을 보고 하루 여덟 번을 목표로 자주 포옹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되도록 자주 밖으로 나가 자연을 느껴야 한다. 책의 핵심은 서두에 인용된 아인슈타인의 말일 듯하다. “자연을 깊이 들여다보아라. 그러면 모든 것이 더 잘 이해될 것이다.”

⊙ 세·줄·평 ★ ★ ★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동물들의 지혜로움과 자연의 신비에 감탄한다
·진리는 자연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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