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클릭] 아가씨 | 동성애 베드신 파격..칸 영화제 화제작

‘아가씨’의 영어 제목은 ‘The Handmaiden’이다. 한국어 제목으로는 모심을 받는 사람, 아가씨가 주인공이지만 영어 제목에서는 모시는 사람, 하녀가 제목인 것이다. 어떤 점에서 이 두 제목은 영화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듯싶다. 영화 ‘아가씨’는 말하자면 하녀인 타마코의 시점과 아가씨의 시점에서 다르게 보이는 하나의 사태, 진실을 조감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아가씨와 하녀 모두를 볼 수 있는 우리의 시선, 즉 사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관객의 시선이 있겠다.
영화 ‘아가씨’는 이미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하나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파격적인 베드신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앞선 화제는 박찬욱 감독의 명성과 그에 따른 신뢰에 응답한다고 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지금껏 두 번 칸 경쟁부문에 초청됐는데, 그때마다 수상했다. 뒤의 부분, 즉 김민희와 김태리의 파격적인 정사 장면은 영화에 대한 선정적 호기심에 힘을 보탰다. 한국 영화에서는 매우 금기시되는 소재지만 칸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국제적 명성이 면죄부가 돼주기에 충분해 보이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가씨’는 그동안 박찬욱 영화에서 보여줬던 기울어진 감성과 뾰족한 이성이 지나치게 솔직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좀 더 쉽게 풀어보자면, 박찬욱 감독이 보여준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과 그 도발적 감성이 어느새 변질됐음을 드러낸다고 할까. 우리가 흔히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욕망의 징후들에는 어떤 점에서 사회적 금기를 앞세운 부도덕과 억압의 힘이 있다. 사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면서 겉으로 그렇지 않은 척 위선을 떠는 것까지 포함해서. 박찬욱은 이렇듯 불편한 위선과 억압적인 질서를 일거에 베어버리는 듯한 노골적인 도발성을 갖고 있었다. 지금껏 그의 영화는 그 노골적 도발성의 힘 위에서 꿋꿋이 버텨왔다.
하지만 어쩐지 ‘아가씨’는 그 노골적 도발성에서 노골과 도발이 따로 노는 듯싶다. 그 노골성과 도발성에서 박찬욱 감독의 작가적 개인성과 예술적 차별성이 빠지고 대중적인 노골성과 뻔한 도발성만 남았다. 그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두 여성의 사랑 부분이다. 원작의 스토리를 수정하면서 바꾼 ‘아가씨’의 반전은 오히려 원작소설인 ‘핑거스미스’가 구현하고자 했던 여성주의적 주제를 거꾸로 해석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또 다른 반전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고자 했다는 박찬욱 감독의 말 역시도 그런 맥락에서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나르시시즘적 자기도취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카타르시스는 창조자의 몫이 아니라 소비자, 즉 관객과 독자가 성취하는 것임을 잊은 것은 아닐까?
답답할 정도로 꽉 짜인 미장센과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에 매진하는 배우들은 여느 박찬욱 영화 못지않게 빼곡하다. 그런데 연기 면에 있어서도 각각 단체보다는 개인 기록에 더 신경을 쓰는 단체전을 보는 느낌이랄까. 어우러진다기보다 제각기 날카로운 소리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경쟁적 연기의 몫이 크다. 어쩐지 서로를 베어내듯 안타까운 공전을 거듭한다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거장이 노장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박찬욱은 매우 이른 시기에 거장으로 성장했지만 이젠 노장으로 어떻게 나이 먹어야 할지 고민할 때가 온 듯싶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61호 (2016.06.08~06.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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