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 런웨이서 선보인 의상, 곧바로 매장에서 판다



l 새 형식 도입하는 패션쇼
지금 패션업계에는 패션쇼 일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현재는 이렇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파리·밀라노·뉴욕·런던에서 패션쇼를 열고 새 컬렉션을 선보이면 런웨이에 올라온 옷은 그로부터 약 6개월 뒤 매장에 신상품으로 걸린다. 쇼가 끝난 직후 바이어들이 주문을 내면 제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봄에 열리는 패션쇼는 가을·겨울 옷을, 가을 패션쇼는 봄·여름 옷을 보여주고 있다. 올 초, 이런 오랜 관행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디자이너들이 나왔다. 제조와 유통, 날씨와 디지털 환경 등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은 소비자 욕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달과 이달 주요 도시에서 열린 패션쇼에서부터 변화가 감지됐다.
▶ 런웨이에서 매장까지 시간 줄인다
지난달 5일 영국 브랜드 버버리는 대대적인 패션쇼 일정 변경을 발표했다. 해마다 4회(1월, 2월, 6월, 9월) 선보였던 패션쇼를 오는 9월부터 연 2회(2월, 9월)로 줄이기로 했다. 남성복과 여성복 패션쇼를 합치고, 패션쇼 명칭도 바꾼다. ‘봄·여름(Spring Summer·SS) 컬렉션’이나 ‘가을·겨울(Fall Winter·FW) 컬렉션’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단순하게 ‘2월 컬렉션’ ‘9월 컬렉션’으로 부를 계획이다. 계절에 대한 인식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호주처럼 7월이 겨울인 나라가 있는가 하면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은 일 년 내내 여름인데, 9월 컬렉션을 FW컬렉션으로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다.
버버리는 또 패션쇼에서 선보인 컬렉션을 쇼가 끝난 직후 매장 및 온라인몰을 통해 바로 살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런웨이 쇼에서부터 상품이 매장에 입고되기까지의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베일리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시즌의 경계가 없어지고, 소비자의 욕구가 보다 즉각적이며 개인화된 방식으로 변화하는 데 발맞춰 새로운 형식을 도입했다”며 “런웨이 쇼를 통해 선보이는 경험과 상품을 매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과정을 더욱 가깝게 연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는 아예 지난달 뉴욕 패션위크에 참여하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2월 패션쇼에서 FW컬렉션을 선보였어야 했는데 이를 취소했다. 대신 오는 9월에 FW컬렉션을 선보이고, 동시에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톰 포드는 “몇 개월이나 앞서 컬렉션을 보여주는 현재의 방식은 구시대적이고 더는 통하지 않는다. 고객들은 패션쇼에 나온 컬렉션을 즉각 구매하고 싶어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톰 포드도 남성복과 여성복을 합쳐 한 무대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즉각 실행에 옮긴 디자이너도 있다. 미국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는 지난달 뉴욕 패션위크에서 새 컬렉션을 선보인 직후 일부 상품을 뉴욕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온라인에서 판매했다. 주요 의류와 슈즈, 가방 등 20여 점을 고객들이 바로 구매할 수 있게 했다. 마이클 코어스는 “고객들은 계절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지 여부만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타미 힐피거도 “오는 9월부터는 패션쇼와 동시에 상품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 여름과 겨울, 남과 여의 공존
파리 패션위크 기간 중인 지난 8일 열린 미우미우 패션쇼. 올해 말 매장에서 판매할 FW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하지만 옷은 다양한 계절의 어울림을 담아냈다. 면직물로 짠 셔츠, 흰색 반바지와 블루 셔츠 같이 가볍고, 한여름에 어울리는 옷을 입은 모델들이 런웨이에 올랐다.
데님 재킷은 여러 형태로 변주됐다. 흰색 레이스 깃의 셔츠와 데님 맥시 스커트를 매치한 차림 등 전형적인 여름 스타일 몇 종류가 지나간 뒤 본격적으로 겨울 옷이 등장했다. 황금빛 여우털 코트와 두툼한 꽃무늬 직물의 맥시 스커트, 와이드 벨벳 벨트를 맨 빅사이즈 코트 등이 눈길을 끌었다.
계절뿐 아니라 남성복과 여성복도 통합되는 추세다. 버버리는 오는 9월부터 남성과 여성 컬렉션 패션쇼를 한 자리에서 통합해 운영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달 런던에서 열린 여성복 패션쇼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남성과 여성 모델이 밀리터리 코트와 항공 재킷을 나눠 입었다.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열린 구찌 여성복 패션쇼에서는 남자 모델들이 핫핑크 수트에 큼직한 리본을 메고 런웨이를 걸었다. 루이비통은 미국 배우 윌 스미스의 아들인 제이든 스미스를 루이비통 여성복의 ‘얼굴’로 선발했다.
▶ 쇼, 과거로 돌아가다
파리 패션위크에 참가한 일부 디자이너들은 패션쇼의 원형을 재현한 듯한 프리젠테이션을 보여줬다. 샤넬은 계단식으로 설치하던 관람석을 이번에는 모두 1층으로 배치했다. 모든 참석자에게 프런트 로우(앞줄)을 준 셈이다. 1950년대 가브리엘 샤넬이 고객에게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 처럼 약 3000개 의자가 행사장을 가득 메웠고, 그 사이사이로 모델들이 새 컬렉션을 선보였다. 패션쇼의 시기와 기능에 관한 논쟁이 있는 가운데 샤넬은 “이것이 바로 패션쇼다”라고 외치는 듯한 쇼를 보여줬다.
샤넬의 옷은 한층 젊어지고 스트리트 스타일이 가미됐다. 등에서 잠그는 흰색 스웨트셔츠, 퀼트 재킷과 가죽 패딩의 후드 재킷 등 실용적인 럭셔리를 선보였다. 트레이드 마크인 트위드 재킷도 좀 더 직선적이면서 터프해졌다. 방수 나일론 재질의 카키색 코트, 데님이 곁들여진 재킷, 쇠 장식이 있는 스웨터 드레스 등 ‘숙녀스러운’ 특징이 많이 줄었다. 대부분의 옷을 굽 낮은 라이딩 부츠와 매치했다.
프랑스 브랜드 생로랑의 패션쇼는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생존해 직접 쇼를 열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음악이 흐르지 않는, 적막함 속에 장내 아나운서가 “넘버 원, 넘버 투…”라며 숫자를 호명하자 모델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패션쇼장인 대저택의 2층에서 대리석 계단을 내려와 1층에 있는 고객들 앞으로 걸었다. 이브 생로랑이 소수의 고객만 초대해 컬렉션을 선보이던 전통적인 방식이다. 실제로 1977년부터 2002년까지 오트 쿠튀르 쇼에서 번호를 불렀던 아나운서가 이번에도 사회를 맡았다. 생로랑은 1980년대 디스코 풍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빅숄더 재킷에 이보다 더 짧을 수 없는 길이의 미니 레더 원피스, 반짝이 소재를 주로 썼다. 하트 모양의 레드 퍼 재킷은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 핑크와 블루
유명 디자이너들은 각기 다른 톤의 핑크와 블루를 활용한 룩을 한 두 가지씩 선보였다. 샤넬은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 부츠와 모자까지 온통 핑크빛을 내놓았다. 하늘색 데님과 핑크빛 트위드를 섞은 배합도 경쾌했다.
보테가 베네타의 연보라빛 핑크 드레스와 프라다의 오렌지빛 핑크 꽃무늬 원피스, 돌체앤가바나의 핑크 스팽글 장식이 화려한 원피스, 질 샌더의 핑크 광택 원피스 등 다양한 핑크가 등장했다. 구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로 통일한 룩을 내놓았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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