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범이 변호사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마이뉴스 글:서형, 편집:김준수]
이 기사는 2009년 7월 6일 전남 황전면에서 일어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검찰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로 어머니를 죽인 범인으로 남편과 딸을 지목했다. 그 후 부녀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고, 각각 무기징역과 실형 2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부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검찰 수사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독자 대다수와 인연이 없는 이 부녀의 인생살이를 이 연재물에 담았다... -기자 말
(17화 : 청산가리 탄 막걸리, 어머니는 한 번도 못 봤을까 편에서 이어집니다)
검찰에 의하면 사건 당일 백경환씨와 백희정씨의 당시 행적은 다음과 같다. 백희정이 오전 2시 30분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다고 한다. 백희정은 일어나 어머니 최명자씨가 자는 거실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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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당일 잠에서 깨난 백희정 |
| ⓒ 공갈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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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찰이 말하는 백희정 동선 |
| ⓒ 공갈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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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단 앞에 놓아둔 막걸리 |
| ⓒ 공갈만 |
"어이, 누가 막걸리를 가져다 놨네. 뜰 방에 올려놨네."
그리고 백경환은 트럭에 올라탔다. 백희정이 범행에 쓴 일회용 장갑을 종량제 봉투에 버릴 거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이심전심'으로 알아챘다고 한다. 백경환은 종량제 봉투를 마을 버스 정류소 옆에 버렸다.
오전 9시 10분경 최명자씨는 공공근로 현장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시다 변을 당한다. 오전 11시에 한 친척이 남편 백경환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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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식을 접한 백경환 |
| ⓒ 공갈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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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 사망 소식을 접한 백희정 |
| ⓒ 공갈만 |
우선 백희정은 둘째 언니 전화를 자다가 받은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부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한 흔적은 보인다. 백희정은 과자를 살 때면 구례구역으로 갔다.
엄마 사망 소식에 '버스' 타고 간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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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구역으로 과자 사려 가는 백희정 |
| ⓒ 공갈만 |
슈퍼 아주머니는 백희정과 조카가 나가자마자 가게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 막걸리 사고 소식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안 돼 조금 전에 과자를 샀던 백희정이 조카와 함께 다시 구례구역 앞에 나타났다. 백희정은 조카와 슈퍼마켓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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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구역 가게들 |
| ⓒ 김민정 |
아주머니는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둘째 언니는 동생이 버스를 탄 행동에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고 경찰에 설명했다. 백희정의 친척은 오히려 버스를 탄 게 희정에게는 최선이었다고 주장했다. 어머니가 실려 간 병원으로 가는 버스가 가장 많이 다니는 곳으로 달려왔다는 얘기다.
사건 발생 당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남편 백경환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올랐다. 백경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 첫 조사에서 백경환은 결코 말할 필요가 없는 얘기를 했다.
"제 처 최명자에게 '어이 누가 막걸리를 가져다 놨네. 뜰방에 올려놨네'라고 말을 하고…"
부녀는 이런 수준이었지만 경찰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버텨내지 못하고 자백했다. 가족과 친척은 변호사를 구했다. 윤기수 변호사를 먼저 선임했다.
윤 변호사가 보기에는 자백 사건으로 간단해 보였다. 갇힌 백희정과 백경환을 차례로 면담했다. 당시 백희정은 범행을 인정했으나 백경환은 부인했다. 공동 피고인이 이해관계가 다르면 변호를 동시에 맡을 수 없다.
윤기수 변호사는 송현승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딸은 자백했으니 송 변호사는 법정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송 변호사는 도와주는 셈치고 일을 맡았다고 한다.
지능범이라는데, '변호사' 개념도 이해 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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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프로그램 중 송현승 변호사 사진 캡쳐 |
| ⓒ MBC |
백희정은 울면서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고 말했다. 당시 송 변호사 보기에 백희정은 검사를 자기편으로 인식했다. 검사가 백희정에게 '나쁜 사람은 아버지고 너는 피해자'라며 도와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반면 백희정은 가족을 적으로 인식했다. 검사가 '가족이 시켜서 이웃집 남자를 고소한 것이니 희정을 빼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공소장을 보여주면서 백희정씨에게 설명했다. 검사는 '네가 죄가 있다고 판단해서 기소했고 너를 도와줄 사람은 변호사'라고 알려줬다. 백희정은 그 개념을 어려워하는 듯했다. 다만 조용히 피식 웃기만 했다. 송 변호사는 다른 사건도 확인했다. 성폭행 부분에 대해 백희정은 "성추행만 있었다"고 했다. "그 점은 상대에게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10월 1일 첫 재판이 시작되자 피고인들은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백경환·백희정 부녀는 최명자씨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백희정은 또 성폭행 건에 대해 성폭행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성추행은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으니 허위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 견해는 어땠을까? 당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을 취재하던 한 언론인은 사건을 맡은 강남석 검사가 무척 들뜬 상태였다고 기억했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기자회견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순천 청산가리 사건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은 강남석 검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검사님은 '살인의 추억'도 해결한 검사"라고 추켜세웠다고 한다.
강남석 검사가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 부임한 것은 2009년 2월 9일이다. 그해에는 굵직한 사건이 순천지청으로 넘어왔다. 이 가운데 세 가지만 꼽으면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 '광양 살인사건' 그리고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이었다.
2001년 발생한 미제 사건,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을 2009년 강남석 검사가 해결했다. 이에 언론이 주목했고 당시 강 검사는 "'살인의 추억'은 없었다"라는 제목으로 직접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수사기관에서 자백하던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는 일은 흔하다. 피의자는 구속됐을 때 교도소에서 변호인을 만나기 때문이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순천경찰서, 여수경찰서, 광양경찰서, 고흥경찰서 등을 지휘한다. 따라서 이 지역 지능범죄자는 모두 순천교도소로 모인다. 검찰은 피고인 백경환에게 피고인 박용근(가명)을 아는지 물었다. 강남석 검사가 언급한 박용근은 일명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 범인이었다.
8월 24일 긴급체포 된 백희정은 교도소에서 광양 살인사건 용의자와 함께 한방을 썼다. 검찰도 이 부분을 추궁했다. 검사는 피고인 백희정에게 이렇게 물었다.
"김혜진(가명)은 ○○○의 목을 졸라 살해를 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에서 처음에 범행을 인정했는데, 나중에 검찰조사에서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범행을 부인하면서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 허위로 자백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피고인은 이와 같은 변명과 김혜진의 변명이 일치하는데, 김혜진에게 배워서 말한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피고인 허위진술 변경 이유만 같은 게 아니었다. 재판 결과도 비슷했다.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도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과 마찬가지로 1심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는 다시 유죄가 선고됐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취재 중 접한 기자들은 '고흥판 살인의 추억' 사건도 진범에 대해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1심에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했는데도 진술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경찰과 검찰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을 만나기 전 단계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당시 검찰과 경찰이 겪었던 일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앞서 겪은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고 수사관으로서 어떻게 발전했을까? 이는 검찰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에서 보여준 수사태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제19화 - '고흥판 살인의 추억'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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