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아, 섹스하고 싶은지는 내가 결정해"

진일석 2016. 5. 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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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여성은 마음대로 해도 되는가?' 여성주의 모임 '시소'의 목소리

[오마이뉴스 글:진일석, 편집:이준호]

 여성이 남성과 술을 늦게까지 마신다고 해서 마음대로 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진은 영화 <불량남녀> 중 한 장면
지난 1일 <매일경제> 신문의 한 기사는 술에 취한 여성과 동의 없이 성관계를 가지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비판을 받았다. 독자들의 항의로 해당기사는 삭제되었으며 매일경제 측의 해명글이 올라온 상태다.

해당 기사에서는 '야한 차림', '기가 센', '직업여성'이라는 단어들을 쓰며 '그런' 여성을 술에 취하게 하는게 쉽다는 식으로 서술했다.

여성이 남성과 술을 늦게까지 마시면 마음대로 자도 되는걸까? 야한 옷을 입은 여자는 그렇게 입었으니 강간을 당해도 자기 책임일까?

지난 달 대학가 음주에티켓 캠페인(관련기사: "난 잘 취하지만 너랑 자겠다는 건 아니란다")을 진행한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여성주의 모임 '시소'의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엿들어봤다.

"경제일간지의 이런 기획 자체가 문제"
"침묵을 멋대로 동의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

리제: 해당기사도 잘못됐지만, 사실 매일경제 신문의 이런 기획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남성들의 연애, 섹스에 관한 건 코스모폴리탄, 맥심같은 잡지에서 해도 될텐데 굳이 경제지에서 해야할까?

열매: 기사의 내용 중 "약을 먹인 적도 없고, 강제로 하지 않았잖아요?" 이 말이 문제의 핵심인 것 같다.

리제: 예전에 한 연예인이 여자 헌팅하는 이야길 하는데 여자가 지금 있는 술집에 와봤다고 하니 "너 예전에도 여기있다 섹스하러 갔겠네?"라는 썰을 푼 적이 있다. 여자는 술만 마시러 온건지도 모르는데 헌팅에서 술자리만 가도 암묵적으로 섹스에 동의했다고 생각하는거다.

열매: 아 진짜 이 새끼들은 머리에 섹스밖에 안 들었나, 진짜? (리제의 말에) 좀 덧붙여 보자면 침묵은 동의라는, 분명히 의사를 표시할 때만 거절이라고 생각하는게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의도, 성욕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의사나 자기결정권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리제: 그러니 길거리에 쓰러진 여성도 자기가 주워먹으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나보다.

열매: '직업여성', '남다른 외모' 등의 단어 선택으로써 자기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리제: 그러는 동시에 그 여자들은 하룻밤 잠만 자고싶고, 연애는 하고 싶지 않은 존재로 설정한다. 이 자체가 여성을 완전히 대상화 시키는 거다. 화장 짙은 여자가 취했다고 물건처럼 취급한 거잖나? 그 여자가 자기를 따먹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나?

"성녀와 창녀의 프레임은 누가 결정?"
"근본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 문제"

열매: 맞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여성들도 자신들을 창녀와 성녀라는 프레임에 넣어 해석한다. 그래서 헤프거나 성에 적극적인 여성상을 얘기하면 자신과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문제다. 누군가 여성이라는 집단을 이미 성녀-창녀로 나눴으며, 그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나눌 권리가 있고, 여성들끼리 싸움을 붙이는거다. 그런 창녀에 대한 인식이 남성에게도 익숙하고, 그 부분 때문에 여성들이 '당할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리제: 참담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여성주의 감수성이 있는 모임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보면 '걸레녀'등을 얘기하며 여성들이 더 구분짓고 비판한다. 이건 여담인데 기사에서 나온 "친절히 부축해드린다",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건 완전 또라이 같다. <매일경제>에 항의 메일을 써야겠다. 전에도 다른 신문사에 성폭행 남학생을 옹호하는 기사를 냈길래 '졸라' 길게 쓴 적이 있다. 답신이 왔는진 기억이 안 나지만..

리제: 애초에 그걸 강간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인 중엔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성매매를 정기적으로 하거나, 토킹바나 가요주점을 가는 게 취미인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진짜로 섹스 그 자체를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보다는 여자를 돈을 주고, 그 관계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즐기는듯 보였다. 마치 다양한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맛보듯. 근본적으로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것이 문제다.

열매: 맞다. 여성이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라 생각하기에 그러는 거다. 한숨이 나온다 한숨이.

리제: 살기 싫다.

열매: 사람들이 이런 걸로 공공연히 기사까지 쓰는데, 여성들 보고 왜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가냐고 말하면 할 말이 없다.

('두시'님 등장)

두시: 요즘 기자들의 빙의가 문제다. 최근에 불법적인 강간 모의의 장이 되었던 소라넷 운영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서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리제: 가끔 내 자신이 상품같다. 정육점에 있는 고깃덩어리 같단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이런 글을 볼 때, 속되게 말해서 여자들이 '구멍'으로밖에 안 보이나?

"여자라서 받는 혜택? 사실은 여성의 상품화"
"피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찾아야 하는 이상한 상황"

두시: 흔히 여자라서 받는 혜택도 많지 않냐고 하는데, 자본주의에서 혜택을 받으면 여성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클럽의 레이디스 데이도 영업 잘하기 위해서 여자 모으는 거 아니냐?

리제: 맞다. 부킹할 때도 '여자 4명 오면 양주제공'이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연구 주제다. 이 남성은 전형적인 픽업아티스트 같은 느낌이다.

열매: 최근 대학가에 성폭력 사태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조금 조심스러운데, 나도 2년 위 선배에게 당한 적이 있다. 학과 내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한 선배 집에 가서 자게 됐다. 문제의 가해자는 내 옆에 누워있었다. 손을 잡고, 골반을 쓰다듬고, 온몸을 쓰다듬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던 건, 새내기 때 그 선배는 동경할 만큼 좋은 이미지였고, 당시에도 과동기와 연애중이었기 때문이다. 문제제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 때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 건너서 들으니 다른 후배 여성에게도 더 심각한 수위의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한다.

리제: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 문제제기를 하면 "그럼 왜 남자 선배의 자취방에서 잠을 자?"라는 말이 먼저 나올 것 같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그 때는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은 들지만, 저 사람을 가해자로 부를 수 있을지 두려웠다. '내 책임도 일부 있는 게 아닐까?"생각이 들기도 했다. 굳이 술을 마셨고, 선배 자취방에 갔고, 어쨌든 옆에 누웠고... 피하긴 했지만 어쨌든 저 사람이 행위를 멈추지 않은 건 내가 확실히 말하지 않아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두시: 옆에 누워 자도 추행 안 하는 사람들도 많을거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가 될 때 가해자 중심의 보도로, 가해자가 뭘 잘못했는지 옹호하는 듯한 관행들이 있기에 우리도 모르게 세뇌가 돼서 내 책임이 아닌가 묻게 되는 것 같다.

기자: 왜 이런 분위기,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은가?

"목사님도 이런 생각이 들만큼 옷차림이 문제인 거에요"
"여성들 내부의 내면화도 문제, 인식을 변화시킬 운동이 필요"

열매: 유치원에서부터 사회화의 과정을 밟아가며 여자는 몸조심해야하고, 자기 자신을 방어해야 하고, 내 몸은 소중한 거고, 보지나 자궁은 아이를 출산할 때만 쓰인다고 배우지, 누구도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몸이라든가, 쾌락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자랄 때부터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한 건 내 실수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 같다.

리제: 순결과 정숙이라는 게 밤 늦게 남자랑 술도 마시면 안되고, 그 남자의 자취방이나 모텔에 따라가는 건 당연히 성관계에 동의하는 거고, 그런 것들이 너무 세뇌가 되니까. 특히 아까같은 경우는 술을 마시면 판단력이 흐트러져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통용되고 있는 것 같고.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성욕을 조절할 수 없다는 논리가 학습되는 것 같다. "빌미를 주면 안 된다. 내가 빌미를 준 건가? 내가 쉬워보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숙한 성녀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났기에 이런 일을 당한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시: 초등학교 3, 4학년 때 교회에서 성교육을 받았는데 목사 사모님 분이 성교육을 해주셨다. 청소년부 대상의 성교육이었는데 그 사람이 옆에 있던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목사님은 아이들이 짧은 바지를 입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 질문에 목사는 "안에 손을 넣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그 사모님은 성경을 공부하는 목사님도 이런 생각이 들만큼 옷차림이 문제인 거라고 꾸짖었다. 사이비종교 아니다. 우리나라의 큰 기독교 교파 중 하나에 소속된 교회였다.

리제: 잠깐 만났던 사람이 있는데, 같이 술을 마셨는데 정말 많이 먹어서 필름이 끊겼다. 사귄 지 3주 정도 됐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dvd방이었다. 그 중간과정은 생각 안 난다. 그 사람이 강간범은 아니지만 나는 술에 취해서 그 사람이 데리고 갔을 거고, 나는 정신도 못차릴 만큼 취했는데 그 사람은 내가 자기와 자도 된다고 동의를 했다고 생각한 걸까? 그 상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흔히 "연애에는 성관계가 전제되고, 성관계 없이는 오래갈 수 없다"는 속설도 있고. 이런 게 여자들 내부에 내면화 돼있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캠페인을 많이 해서 "침묵은 동의가 아닙니다. 강간은 강간입니다", "당신의 몸은 당신만 결정할 수 있습니다"를 세뇌해야 한다.

두시: 어두운 거리에서 튀어나와서 성폭행을 하는 범죄자에 대한 이미지가 유일하게 여자의 잘못이 없는 상황이다. 안면이 있는 범죄자의 경우 현실적으로 맥락이 얽히고 쉽게 단호히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 대한 대처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내가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어도, 잘못이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열매: 'yes'만 'yes'라고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드라마에서도 폭력을 로맨스로, 강간 비슷한 걸 사랑으로 포장하곤 한다. 그리고 평상시에 순종적으로 지낼 걸 요구하면서 잠자리에서는 요부가 될 것을 요구한다. 평생 순종을 강요하면서 왜 그 순간에만 그런 걸 요구하지?

리제: 서양은 한국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드라마의 장면들에서도 여자가 남자에게 거부 의사를 말로만 밝혀도 화들짝 놀라며 떼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두시: 한국 남자들은 여자의 의사가 뭐든 내맘대로 하겠다는 가치관을 지닌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열매: 맞아. 성적 자기결정권만 있어. 남에게는 없어.

리제: 갈길이 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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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추후에 타 매체에 기고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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