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평양감사향연도’는 새로 부임한 관찰사를 환영하기 위해 부벽루에서 열린 연회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관에서 주도하는 이벤트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조선시대 의복을 연구하는 데 더없이 훌륭한 자료다.
관찰사가 앉아 있는 건물과 연회가 진행 중인 마당에는 악공과 무희들, 관리들이 보인다. 행사장 밖에는 구경꾼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들의 의복은 완전히 다르다. 연회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의복이 화려한 원색인 데 반해 구경꾼들의 옷은 흰색이나 연하게 물들인 자연색 일색이다.
모든 색을 품은
백의(白衣)의 민족

이렇듯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백의민족이라 부를 만큼 흰옷을 즐겨 입었다. 선사시대부터 상당히 발전된 염색술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굳이 흰색을 고집했다.
서진(西晉)시대의 진수(陳壽·233~297)가 쓴 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부여인은 흰옷을 숭상하였으며 흰 옷감으로 만든 소매가 큰 포와 고를 착용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흰옷을 입는 습관이 조선시대가 아닌 상고시대부터 이미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복색 역시 소(素)를 숭상했다고 전한다. 소는 꾸미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로 소색(素色)은 본바탕색, 백색을 뜻한다. 우리 민족이 상고시대부터 흰옷을 입었다는 것은 곧 흰색이 우리의 사상과 감정, 문화현상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의미한다. 흰색이야말로 한민족의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유난히 흰색을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만 얼룩이 튀어도 금세 표시 나는 불편한 흰색을 우리 민족은 왜 굳이 몇 천 년 동안 고집했던 것일까.
그 취향의 저변에는 불결하고 혼탁한 것을 배격하려는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 흰색은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본바탕색이다. 본바탕색을 선호하는 이유는 기본에 충실하려는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흰색 선호의 배경을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천손(天孫)사상의 영향으로 보는 학설도 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민족은 옛날에 태양을 하느님으로 알고 자기네들은 이 하느님의 자손’이라고 믿었는데 ‘태양의 광명을 표시하는 의미로 흰빛을 신성하게 알아서 흰옷을 자랑 삼아 입다가 나중에는 온 민족의 풍속을 이루었다’고 주장했다.
흰색에 대한 숭상은 단군신화와도 맥이 닿아 있다.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먹이고 동굴에서 백일기도를 시킨 것은 단순히 인내심을 실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기간 동안 흰 피부로 변신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쑥과 마늘은 항산화 작용과 미백 작용이 뛰어나다. 민간요법에서는 기미, 잡티, 주근깨 등을 제거할 목적으로 마늘을 꿀에 섞어 얼굴에 골고루 펴 바른 후에 씻어낸다. 쑥 달인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가 건강해지기 때문에 지금도 쑥탕을 찾는 사람이 많다.
곰과 호랑이가 피부관리를 통해 흰 피부를 갖고자 했던 이유는 흰 피부의 소유자가 귀인이고 미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때의 흰 피부는 백인 같은 피부가 아니라 맑고 청결한 피부를 뜻한다. 피부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우리 민족이 선호한 흰색은 본바탕을 중요시하는 자연색이다.
무엇보다 흰색의 위대함은 수용성에 있다. 붉음이 스며들면 붉음을, 푸름이 얹히면 푸름을, 그렇게 모든 색을 밀어내지 않고 온전히 드러내 준다. 받아들임으로써 더 깊어진다.
우리 역사 또한 그러했다.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여 사유의 지평을 넓혔고 서구의 과학과 민주주의를 수용해 사회를 재구성했다. 수많은 변화와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생각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또 다른 색을 덧입혀 왔다. 본바탕 위에 새로운 색깔이 켜켜이 쌓이면서 우리의 오늘이 만들어졌다.
흰색을 고집했다는 것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타자를 품으려는 문화적 성향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흰색이 모든 색을 품을 수 있듯 우리 민족의 힘은 수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흰색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듯 우리 민족의 미래도 그러할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