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택배 노동자 유가족에게 송편을 나눠드리고 싶은 이유

임은희 2024. 9. 1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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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줄어들어도 행복해진 추석, 아이에게 배운 한가위의 진정한 의미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경기도 가평,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여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임은희 기자]

▲ 아이가 송편을 만드는 모습 송편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만들고 있다.
ⓒ 임은희
추석이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송편을 만든다. 손으로 조물조물해 말랑해진 떡에 달콤한 소를 넣고 떡도장으로 꾹꾹 찍으면 예쁜 떡이 만들어진다. 솔잎과 함께 찜기에 담아 15분가량 찐 송편에 참기름과 물을 발라 접시에 담아두면 언제 만들었냐는 듯 금세 사라져 버린다. 갓 쪄낸 송편의 맛은 칼로리 증가도 잊게 만들 정도로 맛있다. 중학생인 큰 아이는 송편을 위해 독특한 도안까지 그리며 즐거워했고, 작은 아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도구를 활용해 작고 섬세한 조각을 만들었다.

어깨가 아프다면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만드는 모습에 어차피 먹으면 그만인데 뭘 저리도 열심히 만드나 싶었지만 나름의 의도가 있겠거니 싶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마지막 송편까지 찜기에 넣은 후 식탁을 치우고 다 만들어진 송편들을 꺼내 접시에 담았다. 둘째 아이가 만든 송편들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귀엽고 아기자기했다. 아이 접시에 예쁘게 담아 먹으라고 주었더니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 난 터진 거 먹을게. 엄마, 정성을 쏟는다는 건 진짜 힘든 일이구나. 그런데 자꾸 예뻐져."

예쁘게 만든 송편은 아까워서 먹질 못하고 잘못 만든 것이나 대충 주먹으로 꾹 눌러 만든 것들만 먹겠다는 줄로 짐작하고 칭찬을 담아 말을 건넸다.

"이렇게 예쁜데 어떻게 먹지? 어쩜 이렇게 곱게 만들었을까?"

"너무 예쁘니까, 내가 안 먹고 선물하려고. 예쁜 건 나누는 거야."

아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어깨를 주무르며 도시락통을 찾았다. 만든 것들 중 가장 예쁜 것들만 골라 가족들이 먹을 통과 도시락 통에 나눠 담았다.

아이 덕분에 알게 된 '나눔'의 기쁨
▲ 아이들과 함께 만든 송편 너무 예뻐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울컥했다.
ⓒ 임은희
나는 살림과 요리에 정성을 쏟으며 살았다. 귤 하나를 담아도 접시에 단정하게 내는 것이 습관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예쁘게 잘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와 가족을 위해 정성을 들이며 마흔다섯 해를 살았는데 딸은 정성을 들인 송편을 나눠먹을 생각부터 했다. 아이의 말이 너무 예쁘고, 나만 알고 산 삶이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네 말이 맞다며 도시락을 꺼내 송편을 담고 보자기로 포장을 해 아이가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들고 갔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저 맛만 보시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엄마, 송편 가져오길 잘했어. 세 시간도 넘게 밥도 못 먹고 서서 일만 하셨대. 저녁도 못 먹은 사람한테 떡은 쌀이니까 밥이야 그렇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아씨들>에는 딸들에게 '천로역정'을 선물하며 바르게 살기를 강조하고, 크리스마스에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아름다운 어머니, 마치 부인이 등장한다. 나는 마치 부인처럼 나눔의 미덕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선한 영혼의 아이가 있다.

아이 덕분에 많은 이들과 송편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작은 송편을 반으로 나누어 한 덩어리씩 건네며 위로하고 싶었다. 우리는 일이 바쁜 사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추모하는 사람, 아파서 힘든 사람, 속상한 일을 겪은 사람, 외로운 사람과 송편을 나눠먹었다. 나눌 때마다 '곱다', '예쁘다', '맛있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우리가 먹을 송편은 자꾸만 줄어드는데 이상하게 행복해졌다. 그리고 더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위의 풍요로움 모두 함께 즐겼으면
▲ 송편을 건네는 마음 정성스럽게 빚은 떡을 나눠먹으며 위로를 건네고 싶다.
ⓒ 임은희
명절만 다가오면 속이 더부룩하고 두통이 심해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동네 언니가 있다. 주방에서 나오질 못하고 일만 하다 추석 당일을 보내는데 앉아서 사과 한쪽 먹을 시간도 없단다. 일하랴, 아이 돌보랴, 살림하랴, 제대로 된 밥 한 끼도 먹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며 중년이 되었지만 명절에도 타인들 돌보느라 바쁠 어머님들께 부드러운 밤을 넣은 단정하고 깨끗한 백색 송편을 선물하고 싶다.

고등학교 1학년인 ㅇㅇ이는 동네 빌라촌의 어느 작은 원룸을 빌려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만 18세가 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자립해야 하기 때문에 기관 근처의 방을 빌려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다. 식사 준비부터 빨래까지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고소한 깨와 꿀을 담은, 단호박과 껍질로 색을 낸 영양가 높은 연두색 송편을 건네고 싶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였던 김지은씨는 지난 5월 4년 만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충청남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잦은 성폭행으로, 사회의 2차 폭행으로, 소송으로 보낸 4년 동안 했을 마음고생이 어땠을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성폭력 피해자 분들께 꿀에 갠 녹두경단을 넣고 은은한 향의 쑥가루를 보탠 멥쌀가루로 동그랗게 빚은 초록 송편을 나눠드리고 싶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30년째 수많은 사람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고통받고 있다. 피해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송편을 건네고 싶다. 잘 불린 서리태를 삶아 꿀을 바른 속을 담고 몸에 좋은 홍국쌀가루로 곱게 색을 낸 분홍 송편으로 추석만큼은 아픔을 잊고 지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명절이면 택배가 너무 많아서 죽을 정도로 바빠진단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에 치여 목숨을 잃어버린 택배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에게 힘내시라고 송편 한 알을 건네고 싶다. 개도 뛰어다니면 힘든 폭염에 쉴 새 없이 택배상자를 나르다 사망한 분들의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원통함에 눈물 흘리는 분들께 뭉근하게 끓여 단맛을 더한 팥경단을 꼭꼭 눌러 담고 치자로 색을 낸 노란 송편을 선물하고 싶다.

추석은 추수 전에 햇곡식으로 떡을 빚고 햇과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하는 큰 명절이다. 함께 농사를 짓고 올벼쌀을 훑어 없는 살림에도 떡을 찌던 과거의 넉넉함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한가위의 풍요로움을 모든 이가 함께 즐겼으면 한다. 명절이 온다 해서 모든 이의 힘듦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추석만큼은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온정을 베풀고, 슬픔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의 마음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를 기원한다.

《 group 》 육아삼쩜영 : https://omn.kr/group/jaram3.0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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