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규정 공론화, 서울로봇고 학생들은 왜 '스스로 징계'를 택했을까

오성훈 2025. 11. 23. 11:0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부도 글램핑장에서 확인한 직업계고 학생들의 자율과 책임

[오성훈 기자]

 국회 본회의에서 초·중·고등학생이 학교 수업 중 스마트기기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2025.8.27
ⓒ 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수업을 마친 서울로봇고 학생회 임원 12명은 지도교사 4명과 함께 제부도로 1박 2일 캠프를 떠났다. 고기 굽는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 아이들은 카페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올해 학생회 워크숍의 하이라이트,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 규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휴대폰을 수거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2026년 3월부터 전면 시행될 법령을 어떻게 학교의 학칙으로 소화할지 그리고 디지털 문명 시대의 자율과 책임을 학생 스스로 어떻게 정립할지가 달려 있는 중요한 시험대다.

휴대폰은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열어젖힐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서울로봇고 학생들은 이 양날의 칼을 어떻게 다룰지 스스로 논의하기 위해 제부도에 모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교실 안에서 가르치던 민주주의의 원리가 교실 밖 글램핑장 한가운데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공동체가 규칙을 만드는 방식

우리 학교는 올해 '스마트기기 학칙 공론화 계획'을 세우며 학생·학부모·교직원이 각자 목소리를 내고, 이를 조정하며 학칙을 개정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학생회가 기본안을 만들고 전교생 설문을 거친 뒤, 학급 정부회장들이 모인 대의원회에서 이를 다시 검토한다. 학부모회도 별도로 의견을 모았고, 이렇게 모인 안들은 12월 18일 '난리법석 교직원 대토론회'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교장의 지시나 행정 편의는 이 과정 어디에도 개입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언론 보도와 서울시교육청 인권옹호관 특강을 먼저 공부했고, 주장할 때는 논증을 갖추려 노력했다. 이번 논의가 '학생 요구'가 아니라 '학생 제안'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다.

학생회가 직접 만든 세 가지 핵심 안

두 시간 넘게 이어진 난상토론에서 학생회가 내놓은 기본안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수업 외 시간 스마트폰 사용 허용

등교 즉시 수거하고 하교 후 돌려주는 방식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것이다.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오락기구가 아니다. 실습 매뉴얼 검색, 산학협력 담당자 연락, 자격증 일정 확인, 취업정보 탐색 등 학습·진로·생활이 모두 얽혀 있는 필수 도구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의 유해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수업 외 자율 영역까지 학교가 통제하는 것은 '책임 있는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를 오히려 박탈한다고 보았다.

둘째, 캠페인을 통한 자율 준수 문화 조성

규칙은 '강제로 지키는 것'보다 '설득되어 지키는 것'이 오래 간다는 것이다. 학생회가 직접 공론장에 서서 왜 이 규칙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전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겠다는 제안이었다.

셋째, 가장 주목할 만한 제안 ― '자율 징계 방안' 마련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이 적발되면 어떤 조치를 취할지 학생회가 직접 징계 기준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우리가 권리를 주장했으니, 그에 따르는 책임도 우리가 지겠습니다"라는 의미라고 학생회장이 브리핑에서 설명했다. 예를 들어 1차 적발은 캠페인 봉사, 재적발은 학생회 주관 디지털 시민교육 등, 처벌이 아니라 '책임의 경험'을 중심에 둔 방식이었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이런 합의에 스스로 도달했다는 사실은, 교육이 어디에서 피어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규칙은 위에서 떨어질 때 약해지고, 함께 올려 세울 때 힘을 얻는다. 학생회는 그 사실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규칙의 취지와 필요성을 직접 전교생에게 설명하고, 규칙을 어긴 친구를 어떻게 다시 공동체 안으로 이끌지까지 스스로 논의했다.

그들의 요구는 결코 과하지 않다. 권리만 누리지 않고 책임까지 함께 지겠다는, 성숙한 시민의 목소리다.

'성장'은 스스로 만드는 규칙에서 시작된다

제부도 글램핑장에서 벌어진 난상토론은 직업계고 학생들의 '성장 경로'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들의 성장은 기술 학습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원칙을 스스로 만들고, 그 책임까지 짊어지는 과정을 통해 자라난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 인재는 기술만 능숙한 로봇이 아니다. 로봇·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합리적 논증으로 설득하고, 갈등을 피하지 않고 대화하며, 합의된 원칙을 책임 있게 지켜내는 시민이다.

법안 통과 이후 현장의 고민 그리고 우리의 선택

국회가 스마트폰 금지법을 통과시키자, 나는 그것이 교실을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감시의 울타리로 만들지 모른다는 걱정을 글로 쓴 적이 있다(관련기사: 국회의원도 회의중 주식 확인...스마트폰 금지법이 공허한 이유 https://omn.kr/2f4la).

그 우려를 글로 밝힌 직후, 서울시교육청 인권옹호관이 우리 학교의 움직임을 주목하며 연락을 주었다.

"갈등을 키우지 않고, 이 법을 현장에서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을까. 서울로봇고와 함께 좋은 사례를 만들어보자."

이번 공론화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법이 시키니까'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납득해서 규칙을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12월 18일, 서울로봇고에서 진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12월 18일이면 그동안 각자 준비해 온 의견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 자리에서 나누는 토론과 합의 자체가 이미 교육이고, 우리가 말해온 민주주의의 실제다.

아이들의 자율적 성장은 결국 학교의 성장이기도 하다.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서로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합리적으로 논증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 시민교육의 핵심이다.

그날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갈 규칙은 서울로봇고를 그리고 이 사회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씨앗이 될 것이다.

최종 학칙 개정 과정과 대토론회 결과는 후속 기사에서 전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