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선진국2030-2부]②"보호종료 후 살기 너무 힘들어도 돌아갈 곳 없어요"
자립 준비 청년 약 50% 자살 생각
전체 청년 대비 3배 높은 수준
힘든 마음 드러내면 떠날까
걱정에 마음 못 열어
"가족 결속력 와닿지 않아"
편집자주 - 대한민국은 선진국일까. 국회 입법을 통해 '선진국의 방향'을 모색하려고 마련한 '복지선진국2030'기획에선 지난 '1부-발달장애인'편에 이어 이번에는 '결식아동'과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을 다뤘다. 학교 급식이 멈추는 방학 동안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결식아동들의 겨울, 아동양육시설 등에서 퇴소해 준비되지 않은 어른을 맞아야 하는 보호종료아동들의 겨울을 살펴보고 국회 차원에서의 입법, 대응 마련안 등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한번 기대고 싶단 생각이 들면 무한정 기대게 되네요. 의지할 곳 없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까 조금만 잘해주면 그렇게 되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지 4년째인 윤비슬(서울 강서구·26)씨는 보호종료아동 자립센터 대표이사로 재직한 목사가 아동들을 상습 성추행하고 폭행했다는 최근 기사 내용을 떠올렸다. 이 목사는 아동복지센터를 나온 아동들의 자립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센터를 설립한 뒤 밤마다 술판을 벌이고 아동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가족이 있는 친구들과 달리 저희는 일하다 힘들어도 당장 돌아갈 곳이 없는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가끔은 ‘나 살기가 너무 힘든데 먹여 살려주세요’라고 어디 말하고 싶은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요. 특히 시설을 나오고 나서 그걸 체감했어요."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2020년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 조사’에 따르면 자립 준비 청년 3104명 중 약 50%인 1552명이 ‘자살을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전체 19~29세 전체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된 ‘2018년 자살실태조사’의 16.3%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설에서 자란 윤 씨는 보호종료 사후관리 기간이 1년 남았다.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가 양육할 수 없는 환경에 있어 아동복지시설에서 양육하는 아동인 보호종료아동은 시설 퇴소 후 자립 준비 청년으로 5년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개는 만 18세 무렵,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 늦어도 만 22세 전후로 시설을 나오기 때문에 5년이란 기간 동안 자립 준비 청년들이 완전히 독립하기엔 빠듯한 시간이다.
"시설 퇴소하고 나서 5년 안에 어디 정착하기는 힘듭니다. 저는 대학을 다니다가 22살에 나왔지만, 돈을 좀 모았다고 해도 전세 구하려면 요즘엔 억 단위가 필요하잖아요? 이제 1년 남은 입장에서 목돈을 어떻게 구하고 생활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나라에서 평생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란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많이 걱정하고 있죠."
보호종료가 된 청년들은 사기를 당하거나 생활비 등으로 갖고 나온 지원금을 대부분 빠르게 써버린다. 윤 씨는 "2000만원을 들고나와도 1년 안에 다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주변에도 정말 힘든 친구들이 있는데 신용불량자가 돼서 통장에 월급이 들어와도 여신업체에 바로 빼앗긴다"고 전했다.
윤 씨는 대학 졸업 후 전공과 연계해 관련 기업에 취업했지만 최근 완전히 다른 전공을 선택해 다시 대입 원서를 넣었다. 그는 "어른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그런지, 회사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사실 다시 취업하려고 했는데 회사 가기가 너무 무서웠다"면서 "대학부터 다시 한다고 생각하니까 솔직히 안심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인터뷰에서 ‘저는 운이 좋았어요’라는 말을 여러 차례했다. 운이 좋아 정부, 재단의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다른 친구들은 지원금 자체를 모르기도 하고, 퇴소 후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는 경우에도 선생님과 관계가 좋지 않아 시설에 연락하기가 어려워 받을 수 있는 지원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평소 윤 씨는 "걱정이 없는 것 같다", "항상 해맑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감정은 힘든 마음을 드러내면 누군가 자신과의 관계를 끊을까 봐 두려운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에 생겨난 습관이다.
"보통 가족은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단어라고 많이 느끼잖아요. 서로 싸워도 이해해주고 같이 있어 주는 게 가족인데 그런 가족이 없다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아프거나 힘든 걸 티 내면 안 된다고 배우면서 컸어요. 티를 내봐도 아무 소용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거든요. 누구든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이 내 근처에 없어도 나는 멀쩡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항상 벽을 치고 감정 공유를 잘하지 못했어요. 저에게 가족은 애를 써야 유지할 수 있는 존재여서요. 가족 결속력 같은 게 솔직히 감이 잘 안 와요."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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