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종말론? 살아남을 기업은 있다...원천 데이터·진입장벽 있으면 금상첨화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6. 2. 2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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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생존 경쟁 시대

소프트웨어 위기론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에서 소프트웨어 업종 약세가 길어진다. 대표 소프트웨어 상장지수펀드(ETF)인 IGV는 앤트로픽이 클로드 코워크를 공개한 지난 1월 12일부터 2월 17일까지 23% 하락했다.

다만, 이번 파동을 산업 붕괴로 단정 짓는 시각은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소프트웨어 종말이라기보다 과금 방식이 재설계되는 구조적 재편에 가깝다는 진단이다. 기존에는 ‘좌석(Seat·사용 인원)’을 기반으로 구독료가 책정됐다. 이제는 사용량과 성과에 따른 과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른다.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반복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동일 업무에 필요한 계정 수는 줄어든다. 기업 입장에서는 ‘몇 명이 AI를 사용했는지’보다 ‘업무가 얼마나 처리됐는지’가 중요하다. 즉, 과거에는 사용하는 사람 수만큼 가격이 산정됐다면, 앞으로는 AI가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했고 어떤 결과를 도출했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SW 산업 재편 어떻게

조언자에서 실행자로

과금 체계가 과거와 달라지며 산업 내 생존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단순 사용자 환경·경험(UI·UX) 중심 소프트웨어는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대다수 AI 기업이 유사한 기능을 가진 에이전트를 내놓으며, 차별성이 약한 서비스는 더 이상 가격을 방어하기 어렵다.

시장 초점은 향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에 맞춰진다. 전문가들은 수익성을 지키기 위한 조건으로 크게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원천 데이터를 쥔 기업이다. AI가 데이터를 복제할 수 있지만, 원천 데이터를 만들어내긴 어렵다. 둘째, 규제 산업 깊숙이 침투한 버티컬(vertical) 서비스다. 규제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셋째는 조직 내 업무 프로세스를 통째로 운영하는 기업이다. 기업에서 인사·재무·정보기술(IT) 운영 등 핵심 업무 전반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교체 비용이 커, 한 번 자리 잡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여러 곳에 분산된 데이터를 연결하는 인프라 서비스는 생존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AI 확산으로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저장·연결·분석을 담당하는 기반 수요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한종목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누구나 저렴하게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AI가 조언자에서 실행자로 전환하는 흐름은 뚜렷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 기능 중심이나 대형 AI 모델에 기능만 얹은 응용 서비스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원천 데이터 확보한 Deep SaaS

SAP·세일즈포스·오라클

AI는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는 데 강점을 지닌다. 그러나 원천 데이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기업 회계 장부나 고객 접점에서 쌓이는 고객 관계 관리(CRM) 기록 등은 AI가 한순간에 만들어낼 수 없는 데이터다. 기업 핵심 데이터를 확보한 소프트웨어(Deep SaaS)는 고객이 쉽게 떠나기 어렵다.

대표적으로 독일 SaaS 기업 SAP를 꼽을 수 있다. 글로벌 1위 전사적자원관리(ERP) 역량을 바탕으로 재무·회계 장부뿐 아니라 구매·재고·원가 등 기업 운영의 핵심 데이터를 확보한 기업이다. 기존 ERP 고객 기반이 워낙 두텁기 때문에 신규 고객을 공격적으로 늘리기보다, 기존 고객을 클라우드로 전환해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전략이다. 고객을 묶어두는 록인 구조와 높은 ERP 전환 수요가 크다는 점에서 중장기 성장이 가능한 기업으로 거론된다.

세일즈포스 역시 대표적인 원천 데이터 기업으로 분류된다. 세일즈포스는 기업 영업·마케팅·고객 상담 전 과정을 관리하는 CRM 분야 글로벌 1위 업체다. 기업용 AI 플랫폼 에이전트포스를 통해 AI를 CRM에 결합하며 자동화 수준을 높이고 있다. AI 확산이 기존 CRM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성장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기업용 데이터베이스(DB) 시장 강자 오라클은 데이터 생성과 저장을 동시에 장악한 기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ERP를 통해 기업 운영 기록을 확보하고, DB를 통해 데이터를 저장·처리한다. 최근에는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OCI) 확장에 속도를 낸다. 기업의 AI 도입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AI 학습·추론 수요 증가가 클라우드 매출로 이어진다는 점이 핵심이다.

규제 산업 깊숙이 침투한 버티컬

인튜이트·비바시스템즈·가이드와이어

규제가 강한 산업일수록 진입장벽은 높다. 기능 경쟁보다 감사·보고·준법감시(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이해하고 문제없이 처리하는 성능이 중요하다.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계약 기간이 길며, 전환 비용이 큰 구조다.

미국 개인·중소사업자 세무 소프트웨어 1위 기업 인튜이트는 법적 책임이 수반되는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세금 신고 소프트웨어 ‘터보텍스’와 소규모 기업용 회계 소프트웨어 ‘퀵북스’를 통해 축적한 세무·회계 데이터가 핵심 자산이다. AI가 계산을 도와줄 수 있지만, 법적 신고 체계를 대체하기 쉽지 않다.

글로벌 제약 산업 특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비바시스템즈 역시 주목받는 버티컬 기업이다. 임상시험 관리부터 규제 대응 시스템까지 함께 제공하며 글로벌 제약사와 장기 계약을 여럿 맺었다. 화이자·로슈·노바티스 등이 대표 고객사다. 의약품 개발 과정은 까다로운 규제당국 승인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데이터 무결성과 추적 가능성이 핵심이다. 이 분야에서 AI는 단순 데이터 분석을 넘어 규제 대응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범용 AI가 쉽게 침투하기 힘든 배경이다.

보험 분야 버티컬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이드와이어소프트웨어 또한 생존 가능성이 큰 회사로 꼽힌다. 가이드와이어는 보험 상품 설계부터 계약 관리, 사고 발생 시 보험금 지급까지 보험사 핵심 업무 전반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보험업은 특유의 복잡성과 규제 구조로, 일반적으로 시스템을 교체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가이드와이어가 클라우드로 전환하고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수요가 따르는 배경이다.

업무 프로세스 통째로 운영

시놉시스·워크데이·서비스나우

AI가 기능을 세분화할수록 조직 내 운영체제(OS)가 중요해진다. 승인·보안 등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다루는 운영 시스템은 자동화가 늘어날수록 필요성이 커진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 기업 시놉시스다. 시놉시스는 칩 설계 전 과정을 관리하는 핵심 플랫폼을 제공한다. 반도체 기업은 설계 툴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 기존 지식재산권(IP)과 설계 데이터가 깊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놉시스는 회로 설계부터 검증, 물리 설계, 시뮬레이션 등 반도체 설계 전체 흐름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 제공한다. 반도체 설계는 가장 복잡한 지식의 집약체 중 하나라는 점에서 향후에도 시놉시스 시스템은 대체가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글로벌 인사·급여 관리 솔루션 기업 워크데이는 조직 운영 전반 데이터를 다룬다. 특히 인사·보상·성과관리 시스템은 기업 운영 핵심이다. 직원 수가 줄어도 인사 체계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또한 인사 데이터는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여겨져 전환 비용이 높다. 기업 IT 서비스관리(ITSM) 플랫폼 강자 서비스나우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장애 대응, 자산 관리, 보안 관리 등 전사 업무 흐름 전반의 통합을 담당한다. AI 에이전트가 늘어날수록 AI를 통제하는 운영 자동화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데이터 연결·통합 인프라

스노우플레이크·팔란티어

AI가 확산될수록 데이터 사용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러 곳에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하고 처리하는 서비스가 갈수록 중요해질 전망이다.

클라우드 데이터 플랫폼 기업 스노우플레이크는 회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스노우플레이크의 사용량 기반 과금 구조는 데이터 소비 확대가 매출로 직결되는 구조다. 장기적으로 AI 확산에 따른 수요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증권가는 분석한다.

팔란티어는 최근 소프트웨어 위기론 속 가장 주목받는 업체 중 하나다. 정부·방산·에너지·제조 대기업의 복잡한 데이터를 통합해 의사결정까지 연결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발생한 설비 데이터, 재고 정보, 공급망 지연 상황, 인력 배치 현황이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연결된 구조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팔란티어가 지난 20년 동안 구축한 온톨로지는 단순한 DB가 아니다. 온톨로지는 AI 에이전트가 수행한 모든 사고 과정과 도구 사용 내역을 시각화하고, 추적 가능한 형태로 기록한다. 그만큼 기업은 안심하고 AI 에이전트를 사용할 수 있다. AI 에이전트는 온톨로지 위에서 작동하며, 단순 분석에 그치지 않고 의사결정과 실행을 돕는다. 이 구조 덕분에 팔란티어는 AI 모델이 바뀌어도 영향이 비교적 크지 않다는 평가다.

국내엔 어떤 기업 있나

더존비즈온·유비케어·한컴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은 미국만큼 업체 수나 규모가 크지 않다. 지난 2월 10일 기준 코스피에서 소프트웨어 업종 비중은 4% 미만이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국내 기업은 있다. 특히 경쟁 업체가 쉽게 진입하지 못할 영역에서 주도권을 쥔 회사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중소·중견기업 ERP 강자 더존비즈온은 국내 세무·회계 프로세스를 장악했다. 반복 매출 비중이 높은 데다, 플랫폼 전환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잦은 세법 개정과 전자신고 시스템 연동 등 복잡한 국내 세무 환경이 자연스러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AI 도입이 확대돼도 회계 기록 시스템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의료 전산 시스템 기업 유비케어는 병원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를 축적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의료 산업은 규제와 정확성이 핵심이다. 데이터 전환이 쉽지 않아 장기 고객 기반이 유지된다. 의료 데이터는 앞으로 AI 분석 수요가 늘어날수록 활용 가치가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공공 문서 생태계를 기반으로 성장한 한글과컴퓨터는 국내 문서 업무 환경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공공기관 문서 체계와 높은 호환성, 장기간 유지되는 행정 시스템 특성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공공 시장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 매출 구조가 향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 전략은

거시경제보단 실적

소프트웨어 업종 약세가 길어지며 투자자 고심이 깊어진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소프트웨어 주가 급락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업종 전반이 흔들려도 기업 수익성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변동성 확대는 성장주 가격 매력을 키울 수 있다는 진단이다. 오한비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과도하게 오르고 기업 이익 역시 거품의 소지가 있다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기업 이익이 견조할 때 나오는 위기론은 대부분 매수 기회로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업종 변동성이 커진 흐름에서 투자자는 거시경제 지표에 과도하게 집착해선 안 된다. 통화 정책이나 거시경제 지표보다 기업 실적과 설비투자 흐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소프트웨어 주가는 거시경제 지표보다 기업 실적 사이클에 연동되는 흐름”이라며 “지금은 거시경제 지표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AI 산업이 감당 불가능한 거품 조짐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8호(2026.02.25~03.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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