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특수'에도 손가락 빠는 동네서점…"채식주의자 0권" 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학천 책방거리. 한 70대 노인이 도·소매 서점으로 들어섰다가 금세 다시 나왔다. 강동구 천호동에서 온 그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찾으러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책이 한 권도 없다고 해서 못 샀다”며 인근 대형 서점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한강 작가의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서점가가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과 달리 중·소형 서점은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형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책을 선점해 공급받는 탓에, 규모가 작은 서점으로 들어오는 물량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종로구 일대 도·소매 서점 10여 곳 가운데 각 출판사와 직거래 하는 일부 서점 1~2곳을 제외한 대다수에서 한강 작가의 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숭인동에서 유한서적을 운영하는 조주현(53)씨는 “한강 덕분에 동네 서점에도 활기가 돌아 반갑지만, 재고가 없어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실정”이라며 “초반에는 주문 자체가 막혀있었고, 물량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살 사람들이 온라인이나 대형 서점에서 책을 다 산 후에 동네 서점으로 재고가 넘어오면 무슨 소용있겠냐”고 덧붙였다. 인근 서점 사장 김모씨도 “한강 책 있냐는 문의가 하루에도 최소 50명씩 들어오지만, (물량이 없으니) 그냥 돌려보내고 있다”며 했다.
대형 서점은 한강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중이다. 전날 오후 6시쯤 찾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에는 평상시 퇴근시간 보다 책을 사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등 주요 대형 서점에 따르면, 한강의 주요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부터 14일까지 82만부가량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전국 도서 판매량의 약 90% 수준이다. 이르면 이번 주말 내 100만부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최근 도서 도매업을 겸하는 교보문고에 지역 서점 쪽으로 한강 책 물량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교보문고는 15일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한강 작가의 도서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오늘부터 하루 최대 주문량을 1종당 10부로 제한할 예정이며, 확보되는 물량은 순차적으로 각 서점으로 배송될 것”이라고 도매 판매처인 자사 홈페이지 ‘협력사 네트워크’에 공지했다.
최근 출판사가 대형 서점에 먼저 물량을 납품한 뒤 남은 책을 동네 서점에 대는 도서 유통 구조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 서점이 도매업에 나서면서 소량 계약은 받아주지 않는 출판사가 늘었고, 일선 서점들의 대형 서점 의존도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교보문고와 거래하는 지역서점은 2020년 716개에서 2022년 5월 기준 1100개로 증가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 중소 서점으로 풀린 한강 책은 1%도 안 될 것”이라며 “신간이나 화제의 도서가 나올 때마다 이같은 물량 지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교보문고 측은 “도매 대상으로 떼놓은 물량 비중은 따로 정해진 건 없지만, 온라인·영업점 소매 판매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주문량을 제한하고 있다”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받을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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