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세빈의 변신이 눈에 띈다. 현재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배우 명세빈이 연기하는 25년 차 주부 ‘박하진’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늘 양보하며 살아온 인물이지만,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김부장의 아내’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모색하는 여성이다. 최근 드라마 〈닥터 차정숙〉, 〈세자가 사라졌다〉 등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한 명세빈은 이번 작품에서도 섬세한 감정 연기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청초한 청춘스타로 시작해 이제는 생활 연기까지. 명세빈의 발자취를 되짚어 봤다.
신승훈 사인 받다가 '우연한 데뷔'

1996년, 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이던 명세빈은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가수 신승훈의 사인을 받던 중 명세빈을 눈여겨 본 신승훈의 소속사 관계자가 다가와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그렇게 신승훈의 5집 수록곡 〈내 방식대로의 사랑〉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전격 입문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여러 잡지 모델의 러브콜을 받을 만큼 눈에 띄는 신인이었다. 뮤직비디오로 얼굴을 알린 뒤 각종 화보와 광고 제안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방송가로 진출하며 90년대 후반 ‘청순 스타’의 계보를 잇게 된다.
ㅣ
인생을 바꾼 두 편의 CF

명세빈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린 것은 단연 두 편의 CF였다. 첫 번째는 지금도 회자되는 캔 커피 광고다. 전지현·류시원이 등장했던 1편의 뒤를 이어 2편에 출연한 명세빈은 “저, 이번에 내려요”라는 단 한마디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이 한 줄 대사는 90년대 광고계의 역대급 대사로 지금까지도 회자하고 있다.

두 번째는 초콜릿 과자 광고였다. 백혈병에 걸린 친구를 위해 반 친구들이 함께 머리를 미는 설정이었는데, 명세빈은 광고를 위해 실제로 삭발을 감행했다.
그는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당시 촬영 비하를 전했는데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광고였다.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머리를 민다는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며 “모델이었고 의상디자인학과 학생이니까 삭발도 패셔너블하게 느껴졌다.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두렵지 않았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ㅣ
90년대 '원조 국민 첫사랑'

CF 스타로 주목받은 명세빈은 곧바로 드라마계의 구애를 받았다. 1998년 KBS2 드라마 〈순수〉에서 류시원, 한재석, 이본과 함께 청춘 로맨스를 이끌며 첫 주연을 맡았다.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연기력과 단아한 외모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어 드라마 〈종이학〉에서도 류시원과 다시 호흡을 맞추며 ‘국민 첫사랑’ 타이틀을 굳혔다.

쌍꺼풀 없는 눈매, 차분한 목소리, 말할 때 드러나는 귀여운 송곳니는 당시 여성들의 ‘워너비 페이스’였다. 장동건, 김민종, 권상우 등 톱 남배우들과의 호흡으로 대중적 인기를 확고히 다졌고, 2001년 SBS 주말극 〈그래도 사랑해〉에서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주연 배우로 자리 잡았다.

명세빈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밖에서는 매니저가 항상 옆에 있어야 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그만큼 ‘첫사랑 이미지’가 강했다”고 회상했다. 청순한 이미지에 갇히는 부담도 있었지만, 그는 “이제는 편하다”고 덧붙였다.
ㅣ
영화 캐스팅 위해 발치까지

명세빈의 연기에 대한 집념은 놀라울 정도였다. 영화 〈남자의 향기〉 캐스팅 당시 그는 스스로 “청순한 인상엔 가지런한 치아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송곳니 교정을 결심했다. 그는 “덧니가 송곳니라 뽑을 수 없었는데, 대신 뒤에 있는 이를 빼고 교정을 했다. 오디션에서 ‘이 영화를 위해 이를 뽑았다’고 말했더니 감독님이 놀라셨다”고 밝혔다. 그 진심 덕분인지 그는 결국 주연 자리를 꿰찼고, ‘열정파 신예’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명세빈은 이후에도 〈고스트〉, 〈뜨거운 것이 좋아〉, 〈그래도 사랑해〉 등 다수의 드라마에서 활약했다. 2007년에는 변호사와 결혼했으나 5개월 만에 성격 차이로 이혼하며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2010년 SBS 〈세자매〉로 복귀, 데뷔 이래 처음으로 팜므파탈 캐릭터를 맡으며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했다.
ㅣ
여전히 빛나는 배우, 명세빈

‘원조 첫사랑’으로 출발해 어느덧 데뷔 30년 차 배우가 된 명세빈. 최근 그는 〈닥터 차정숙〉의 최승희 역으로 재조명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욕을 먹을수록 인기가 느껴졌다”며 웃는 여유 속엔, 여전히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의 진심이 묻어난다.

이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명세빈은 또 한 번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청춘의 첫사랑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박하진’으로 성장한 셈이다. 우연한 사인 한 장으로 시작된 인생이지만, 그 여정의 끝은 우연이 아닌 꾸준함으로 채워지고 있다.
나우무비 에디터 썸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