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터] “비영리의 다음 단계는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2025. 6. 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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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 인터뷰

지난달 28일 만난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사람을 키우면 그 사람은 더 많은 사람을 이끌게 된다”며 “비영리에서는 그게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라고 했다. 김용재 기자

비영리 활동가들의 공간인 ‘동락가’의 운영이 오는 30일 종료된다. 동락가는 지난 2019년 이준용 DL그룹 명예회장이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에 기부한 서울 종로구 단독주택이다. 이듬해 다음세대재단이 비영리스타트업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면서 초기 비영리조직이 역량을 쌓을 수 있는 보금자리 역할을 해왔다.

지난달 28일 동락가에서 만난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공간이 생기니까 사람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더라”며 “지난 5년은 공간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방 대표는 비영리 업계의 사람과 조직, 인프라를 지원하는 기금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 이른바 ‘기반조성기부’다. 활동가들이 머물 수 있는 ‘제2의 동락가’를 찾는 동시에 비영리 업계의 인적 역량 강화에 지원하는 기부자를 찾고 있다.

Q : ‘기반조성기부’라는 개념이 아직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A : “수도·전기·고속도로 등 사회의 기반시설을 생각해 보세요. 기반조성을 할 때 특별히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기반조성은 모두를 위한 일이니까요. 비영리 생태계의 기반조성은 공익활동의 기반이 되고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비영리 생태계에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자라 꽃 피울 수 있도록 도우려는 거예요. 사람과 조직, 그리고 공간. 결국 이 셋에 대한 장기 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 기부 요청을 할 때 반응은 어떻습니까.
A : “예전엔 대부분 예의상 듣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달라졌습니다. 필요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고, 참여 방법도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크래프톤 공동창업자인 김강석 기부자처럼 비즈니스에서 혁신을 만들어냈던 분들이 그렇습니다. 아직은 쉽지 않지만 저는 끊임없이 설득하고 또 설득할 겁니다. 기반조성기금은 사회문제 해결의 출발선입니다. 이런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계속 같은 문제를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Q : 같은 문제라고 하시면.
A : “기부금을 받으면 보통 사업 단위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저는 프로그램이 세상을 바꾸진 못 한다고 봐요. 현상을 잠시 치료할 수는 있지만 본질은 그대로 남죠. 반면에 사람에 대한 투자, 조직에 대한 투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킵니다. 다음세대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비영리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사업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두명으로 시작한 비영리스타트업이 점점 성장해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사회공헌이나 기부자들의 새로운 파트너가 되고 있으니까요.”
한국 비영리 생태계의 구조는 아직 프로그램 중심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기부금은 현장의 단기적 필요에 집중돼 있고, 기부금 사용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사람과 조직, 인프라를 키우는 데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다음세대재단이 주도하는 기반조성기부 캠페인 ‘에버래스팅 프런티어’는 이러한 관점을 전환하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에는 비영리 기반조성에 기부금을 투입하는 사례가 꽤 있다. 윌리엄 휴렛 전 HP CEO가 출연한 ‘프로스페라 기금’은 전 세계 여성재단을 지원하되 오직 재단의 자체 역량 강화에만 쓰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를테면 리더십 개발, 모금 역량 강화 워크숍 등에 비용을 쓰는 것이다.

Q : 어느 업계든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일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A : “물론 어렵습니다. 비영리스타트업을 지난 5년간 발굴했습니다. 비영리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집요하게 물어봅니다. 해결하려는 사회문제와 본인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의미 없다’는 수준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회문제 해결에 약간은 ‘미쳐있는 사람들’입니다. 일의 의미를 제대로 발견했다면 이미 인재입니다. 그들을 도와 솔루션을 탁월하게 만드는 일을 다음세대재단이 하고 있습니다.”

Q : 비영리에 아직 숨은 보석들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A : “그렇죠. 중요한 건 그런 ‘미친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간다는 거예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많습니다. 환경·여성·복지·인권·평화 등 이슈에 몰입한 사람들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Q : 말씀대로라면 안 할 이유가 없는데요.
A : “현재 한국의 공익재단 중 기반조성에 집중하는 곳은 극히 적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체 기부금 중 기반조성기부 비율과 집행이 극적으로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반은 확장성이 있거든요. 한 사람을 키우면 그 사람이 또다시 영향을 미치고, 조직 하나를 키우면 그 조직이 훨씬 큰일들을 해냅니다.”

Q : 그런데도 사람과 조직에 투자하는 기금은 왜 부족할까요.
A : “기업이나 개인 기부자들이 이런 종류의 기부 제안을 받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만나온 성공한 기업가들이 하는 말이 ‘기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할 때, 정작 이렇게 비영리 생태계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기부를 제안받은 적은 없다’고 해요. 사람과 조직, 인프라에 기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깊이 공감하고 진지하게 검토합니다.”

Q : 지금 이 시대의 기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 “저는 ‘다양성’이라고 봐요. 기부하는 사람도, 기부가 쓰이는 방식도, 그 내용도 훨씬 다양해져야 해요. 어려운 이웃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형태에만 머물러 있잖아요. 이런 기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고요. 기부자들도 곧 알게 될 겁니다. 기부의 방식에도 혁신이 필요하고, 그 혁신이 바로 기반조성기부라는 걸요. 이런 기부문화가 생기면, 기부자는 단지 돕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문일요 더버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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