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BIFF] '혀를 쯧쯧 차며 봐달라' 박찬욱표 블랙코미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이병헌, 손예진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어쩔수가없다>가 9월 17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국내 최초 상영과 함께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장에는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이 참석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감독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선보이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지 떨리는 마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어쩔수가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바탕으로 한다. 25년을 다닌 제지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회사원 유만수(이병헌)가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이라는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박 감독은 원작을 집어 든 이유에 대해 “읽자마자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인과 사회의 이야기가 결합돼 바깥으로도, 안으로도 향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동시에 “가족들이 주인공이 하는 일을 눈치챘을 때 벌어질 일, 그리고 코미디의 가능성이 즉시 떠올라 더 대담한 방향으로 이야기의 레이어를 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신작은 기존 필모그래피와 달리 잔혹성·선정성을 낮추고 블랙코미디적 색감을 전면에 내세운다. 박 감독은 “만수라는 사람의 한계와 어리석음을 각별하게 묘사하고 싶었다”며 “끝까지 혀를 쯧쯧 차면서 보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극의 마지막에 배치된 ‘AI’ 모티프에 대해서는 “발전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을 드라마에 녹이고 싶었다”며 “편집과 VFX가 끝난 뒤에도 해당 시퀀스를 다시 만지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고 밝혔다.

영화의 중요한 축은 ‘집’이다. 박 감독은 “집이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아야 했다”며 “외경에 붙인 콘크리트 구조물부터 정원, 온실까지 미술팀이 새로 구성했다. 시각적으로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제지업이라는 배경 역시 상징적이다. 박 감독은 “종이를 만드는 일을 보통 사람들은 대단치 않게 생각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인생 자체다. 영화도 누군가에겐 2시간짜리 오락거리일 수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 가진 것을 다 쏟아붓고 인생을 건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은 ‘평범함’ 위에 쌓이는 변화의 곡선을 공통의 키워드로 꺼냈다. 이병헌은 “만수는 특별하지 않은,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라며 “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극단적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면서 변해가는 감정의 설득력을 보여주기 위해 집중했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아내 미리 역을 “작품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로 규정했다. 그는 “정말 엄마, 아내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었다”며 “생각보다 낙천적인 성격이라 비극적 순간을 돌파하는 데 오히려 현실감이 생긴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현장의 연기 디렉션에 대해서도 구체적 증언이 이어졌다. 이병헌은 “초기 면접 장면은 대사가 많은 데다 지문 연기가 엄청났다. 반사광을 피하고, 아픈 이를 만지려 하다 ‘아차’ 하고 손을 내리고, 다리를 떨다 다시 진정시키는 세세한 상황 연기를 계속 첨가해 촬영했다”며 “힘들었지만 큰 트레이닝이 됐다”고 말했다. 이성민은 “대본과 다르게 표현해도 배우의 생각을 존중해줬다. 확장할 여지를 많이 열어줬다”고 했고, 염혜란은 "'영화라는 작업의 참된 맛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걸 새삼 느꼈다"며 "완벽한 콘티를 기본으로 배우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장면이 풍부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박희순은 “촬영 때는 여유로운데 테이크만 들어가면 섬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테이크마다 다른 걸 요구하며 연기를 쌓아가게 했다”고 전했다. 손예진은 “모니터 안에서 벌어지는 연기와 동선, 소품까지 어색한 부분을 매의 눈으로 잡아내 체계적으로 설명해 줬다”고 덧붙였다.

영화가 비추는 현실 감각에 대한 발언도 나왔다. 박 감독은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며 영화인의 삶보다 자신의 직업을 먼저 떠올릴 것”이라며 “한국 영화계의 회복이 더딘 것은 사실이지만 영영 이렇게 머물진 않을 것이다. 우리 영화가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 작은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7년 만에 영화를 찍었다. 이번 촬영 중에 나도 또 영화를 할 수 있을까 불안함이 있었다. 상황이 더 나아지도록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성민은 “배우라는 직업도 언젠가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 지점의 공포가 영화의 메시지라고 본다”고 말했다.

작품의 대중성에 대한 자신감도 분명했다. 박 감독은 “코미디와 가족을 더해 새로움을 만들고자 했다”고 했고, 현장은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를 반복해 강조했다. 이병헌은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 큰 화면으로 디테일을 봐야 하는 작품”이라며 “내년, 내후년 추석 특집으로 TV로 보기보다 따뜻한 필름으로 극장에서 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손예진은 “한 번 보면 이병헌이 보이고, 두 번 보면 내가, 그다음엔 또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라며 N차 관람을 독려했다. 이성민은 “박찬욱 감독 작품 중 가장 좋은 흥행이 나오길 바란다. 내가 출연한 영화 중에서도 가장 잘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며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상영으로 첫선을 보였고, 정식 개봉은 9월 24일로 예정돼 있다.

어쩔수가없다
감독
출연
차승원,유연석
평점

글=부산 · 나우무비 심규한 편집장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