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비판하면서 윤석열은 감싸 온 보수 언론
[강명구 기자]
▲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러닝메이트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러닝메이트인 제이디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의 이름이 표시된 부재자 우편 투표용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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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진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해리스가 이긴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다. 한국 언론이 해리스의 우세를 주로 보도한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한국과 미국의 언론 환경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간과하고 있었음을.
미국의 언론 지형은 어쩌면 한국과 정반대다. 보수 언론이 대세가 아니라 진보 성향의 언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한 미국 매체들은 대부분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 언론은 트럼프의 재선에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이에 대한 부정적 여론 형성에 주력해 왔다.
이들 언론은 조 바이든 정부의 약점인 경제와 이민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다루는 반면, 트럼프 기소 관련 보도를 지속적으로 쏟아내 왔다. 예를 들어,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 연방정부 부채가 7조 달러 이상 증가해 35조 달러(국내총생산의 120% 초과)에 달했고, 연간 이자 비용만으로도 1조 달러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정책이 이러한 문제를 포함한 주요 경제 이슈들에 대해 실효성 있는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 보도는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 언론 대부분이 이러한 미국 진보 성향 매체의 보도를 실시간으로 번역하여 전달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독자들 대다수는 이렇게 걸러진 정보를 통해 미국의 정치와 선거, 특히 트럼프를 바라보게 된다. 이로 인해 트럼프에게 열광하는 미국 유권자들의 표심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 보수 언론의 이중적 태도이다. 이들은 트럼프에 대해서는 미국 진보 언론의 논조를 따르면서도, '한국판 트럼프'로 불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그간 보수언론에서 윤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심도있는 비판적 보도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윤 정부의 국정 난맥상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자, 뒤늦게 윤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선 토론을 마친 후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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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통령 재임 중 언론과 끊임없이 충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류 진보 언론 매체들이 그의 정책과 행동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미국이 지켜 온 자유와 법치주의에 반하는 국정 운영 사례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몰아세우며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트위터(현 엑스)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이에 굴하지 않고 트럼프의 비민주적 행태와 권력 남용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방해하려 했을 때,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집중 보도하며 그의 권력남용을 폭로했다. 정치 싸움의 성격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언론 본연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
물론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 눈에는 이들 언론이 민주당 기관지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최소한 트럼프 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등을 기준으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권력 감시와 비판, 이를 통한 민주적 견제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려 한 것이다. 이것이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이 여전히 신뢰를 받는 핵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보수 언론의 이중적 잣대와 정치 활동
한국 보수 언론은 과연 어떤 원칙과 가치에 따라 윤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했을까? 처음부터 그런 의지 자체가 없었던 듯하다. 윤 정부의 오류와 실패를 비판하기보다는 덮어주고 보호했다. 정권 초기의 허니문 기간을 훨씬 넘어서도 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윤 정부 초기부터 벌어진 용산 대통령실 졸속 이전, '바이든-날리면' 논란,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채상병 순직 수사 외압 의혹, 김건희 여사 국정 개입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장관 자녀 입시 의혹 등은 모두 법 앞의 평등이라는 대원칙에 따라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했다.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과 부인의 총선 공천 개입 의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보수 언론은 침묵하거나 방관했다.
그 결과, 법치, 자유, 시장경제 같은 보수의 핵심 가치는 윤 정부의 무능 속에 퇴색되었고 국정은 난맥상에 빠졌다. 일부 보수 언론은 왜곡된 이중잣대를 적용해 '내 편'에는 관대하고 '상대편'은 악마화하는 진영 논리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했다. 원칙과 가치가 아니라 권력과의 결탁을 선택했던 것이다.
상상해 보라. 똑같은 사안들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미국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그들도 과연 외면하고 방관했을까?
아마도 <뉴욕타임스>는 윤 정부의 정책 혼란, 소통 부재, 권력 남용을 날카롭게 비판했을 것이다. 노동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이 갈등을 어떻게 심화시키는지에 대한 심층 분석 기사도 나왔을 것이다. 트럼프 1기 정부 때도 독선적 리더십과 사회 갈등 조장, 정책 실패를 가감 없이 보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바이든 정부의 실정에 눈감았다며 정파적인 매체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뉴욕타임스>는 백 년 넘게 언론 본연의 권력 감시와 비판, 견제의 역할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보수 성향 매체로서 윤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재정 정책, 물가와 금리대응의 실효성을 철저히 따졌을 것이다. 이는 정치적 결탁으로 시장을 속일 수 없다는 인식과 시장 왜곡을 막으려는 매체의 특성 때문이다. 트럼프 1기 정부 때도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나 무책임한 재정 운용을 비판했고, 바이든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 매체들은 트럼프는 비판하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에 반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방관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고 훼손돼도 침묵했다. 많은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며 절규해도 이를 외면해 왔다.
그래서 최근 일부 보수 언론의 윤 정부 비판은 생뚱맞고, 책임 회피와 정치적 이익을 위한 알리바이일 뿐이라는 의구심이 든다.
▲ 지난 5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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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은 자본과 권력을 견제하기보다 결탁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데 익숙해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윤 정부의 국정 난맥상은 바로 이러한 왜곡된 환경의 결과물이다. 이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윤 정부와 같은 사이비 보수 정권의 재등장과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반복될 것이다.
윤 정부의 국정 혼란이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지금, 깨어 있는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과연 보수 언론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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