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라고 무시하나요? 논밭 사이 덩그러니 지은 아파트
임대 아파트 공실의 이유
충남 당진의 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영구 임대 아파트는 전체 200가구 중 172가구가 비어 있다. 첫 입주자 모집 때 단 8가구만 입주했고, 수차례 추가 모집을 해도 86%가 공실인 것이다. 논밭 사이에 지어진 이 단지 주변에 생활 인프라가 전무하다. 게다가 원룸형이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탓에 보증금 263만원, 월세 4만9000원의 저렴한 가격에도 수요가 거의 없다.
이 단지처럼 수요자 눈높이에 맞지 않아 유령 아파트 신세인 공공 임대단지가 늘고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LH가 관리하는 전국 건설 임대주택 98만5300가구 중 6개월 이상 비어 있는 집은 지난달 기준 4만9889가구로 집계됐다. 2만7477가구였던 2022년 비교하면 배 가까이 늘었다. 입주자를 한 번도 맞은 적 없는 임대주택도 전국에 9504가구나 된다.
전문가들은 상품성이 부족하니 임대주택 빈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요즘엔 1~2인 가구도 여유 있는 생활 공간을 찾는다. 하지만 건설 임대 공가의 50%가 전용 면적 31㎡(약 9.4평) 미만인 소형 평형이다. 수요와 현실이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전체 300가구 규모인 전북 완주군의 한 행복주택은 208가구가 공가인데 대부분 전용 21㎡, 26㎡다. 주거 수요가 많은 편에 속하는 동탄2신도시의 영구 임대 아파트도 소형 위주로 구성된 탓에 아직 3분의 1 정도가 비어 있다.
빈 임대주택은 충남·경북·전북에 많지만, 수도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작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경기 화성 신축 영구 임대 아파트는 136가구 중 60%인 81가구가 공실이다. 경기 파주시의 또 다른 신축 임대 단지도 공가 비율이 57%에 이른다.
임대주택 공가 증가에 따른 손실은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LH의 지난해 임대주택 운영 손실은 2조2565억원으로 5년 전인 2018년(9848억원)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노후 임대주택이 늘면서 수선 유지 비용만 연 1조원이 넘었다.
전문가들은 공가로 사회적 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수요예측 단계부터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LH 관계자는 “수요자가 선호하는 입지와 상품성을 갖춘 임대주택을 물량 공급하기 위해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전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