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유관순 박목월 이상화 손길이 묻은 이곳…공주 순례 여정을 따라가다

공주시-공주문화관광재단 ‘신실한 밤’ 가보니

16일 찾은 충남 공주 제민천 모습. 전구들이 늘어지게 걸려있다. 곳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16일 늦은 오후 충남 공주 제민천. 늘어지게 연결된 전구들이 밝은 빛을 발한다. 노란 빛줄기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낮은 건물들 사이로 교회가 눈길을 붙잡는다. 다소 낡아 보이는 이 건축물은 주변에 즐비한 현대식 건물들과 달리 홀로 과거에 멈춘 듯했다.

붉은빛을 띠는 건물 한편에 글귀 하나가 이렇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초라한 초가 한 동이 이웃과 지역으로 그 가지들 펼쳤고, 배움과 나눔 그리고 3·1 독립운동과 구국과 애국의 민족 지사되었으니 아름답고 복된 신앙의 결실이어라. 흙 한 줌 벽돌 한 장이 그 생명과 헌신, 땀과 눈물이 담긴 그리고 자신의 몸을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었으니 아! 생명의 거룩함이여 찬양하라. 그리고 함께 영원하리라.”(협산자(挾傘者) 이야기)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 붉은 빛이 도는 벽돌로 세워졌다. 6.25 전쟁 때 무너졌다가 다시 세웠다고 한다.

교회를 세울 때 상당한 기부금을 전달한 익명의 ‘옆구리에 우산을 끼고 온 사람’을 기념하고자 새겼다고 한다. 공주제일교회(윤애근 목사) 이야기다.

교회 기독교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역사 자료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자료들을 건너 자리에 앉자 박보영 기독교박물관 부관장이 교회가 걸어온 여정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공주시의 기독교 역사와 이야기, 근대시대 교회의 역할, 유관순 열사 이야기…. 참석자들은 말 한마디를 놓칠세라 박 부관장의 입에서 눈을 떼질 않았다. 공주시와 공주문화관광재단이 마련한 역사 소개 프로그램 ‘신실한 밤’의 현장이었다.

공주의 제 1 교회

교회 안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이 교회 성도이자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개척자인 이남규의 초기 작품이라고 한다.

우선 공주제일교회가 어떤 곳인지부터 살피자면 다음과 같다. 공주제일교회는 수원 이남 지역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회다. 1903년 의사이자 미국 북감리교에서 파송된 맥길(William B. McGill·1859~1918) 선교사가 이용주 전도사의 도움을 받아 세운 곳이다.

역사 자료가 일렬로 세워져 있다.

맥길 선교사가 귀국하고 로버트 샤프(Robert Arther Sharp)와 사애리시 샤프(Alice H. Sharp) 선교사 부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부부는 최초 서양식 건물을 짓고 선교 활동을 펼쳐나갔다. 명설학교를 비롯해 영명고등학교의 전신인 영명학교(永明學校)를 설립해 교인들을 가르쳤다. 1919년 이후 한국인 목회자를 세우고 유치원과 병원을 경영하면서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갔다.

오랜 역사가 깃든 만큼 교회에는 상처도 적지 않았다. 초가집에서 시작한 예배당은 1931년 교인들의 지원으로 건립됐지만 6·25전쟁 때 상당 부분 파손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 시 벽체, 굴뚝 등을 그대로 보존해 옛 흔적들이 잘 남아 있어 2011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독립운동가의 손길이 묻다

옛 성전 지하에 마련된 역사관. 공주의 만세운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공주제일교회는 유관순 열사가 다닌 교회로도 유명하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유관순은 당시 교회를 맡은 사애리시 선교사의 배려로 1914년 공주 영명여학교를 다녔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이 같이 제안했다. “유관순 양이 공부하길 원하면 제가 서울 이화학당에 보내줄 테니 우선 영명학교에서 교육을 받아보는 게 어때요?” 그렇게 유관순은 이화학당에 전액 장학생으로 전학했고 방학 때마다 공주에 내려와 문맹 퇴치에 앞섰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휴교령을 내리면서 유관순은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 운동에 참여했는데, 3·1만세운동 중 ‘천안 아우내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친일파 조선인에 의해 체포돼 고문을 받고 순국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지은 시인 이상화와 서온순 여사 가족 사진이다. 서온순 여사는 이곳 교인으로 알려졌다.

교회는 ‘빼앗긴 들에도 봄을 오는가’를 지은 시인 이상화(1901~1943)와 청록파 시인 박목월(1915~1978)이 결혼식을 올린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 두 시인 모두 교회를 다니던 여인들과 결혼했다.

특히 목월은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물려받고 아내인 유익순(1920~1997) 여사와 함께 그 신앙을 키워갔다. 생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가 발간하는 기독 월간지 ‘신앙계’에 축하시를 싣기도 했다. 사후 유 여사가 목월의 유고 중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드러나는 시들을 따로 모아 ‘크고 부드러운 손’ 시집을 펴낸 일화는 유명하다.

순례의 여정에 서다

쪽 길에 올라서자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과 유관순 사애리시 로버트 선교사 동상이 맞이한다.

근·현대 격변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공주에는 기독교와 독립운동을 펼치던 애국지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7일 박 부관장과 함께 근대문화탐방길을 살폈다.

4·1공주읍만세운동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영명고등학교가 나온다. 비좁은 길에 올라서자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과 유관순 사애리시 로버트 선교사 동상이 맞이한다. 선교사 부부와 자녀들의 무덤도 인근에 있다.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순례길 곳곳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 보였는데, 선교사 가옥은 현재 사유지로 방치됐다. 사이사이 놓인 등산길 줄은 금방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박 부관장은 “이뿐만이 아니라 순례길 입구에 설치된 간판에는 선교사들의 본인 사진이 아닌 다른 사람이 걸려있다”며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인 만큼 보수를 올바르게 해 많은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공주는 이를 바탕으로 종교관광 순례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옥성삼 한국기독교언론포럼 사무총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주에서 선교사를 제외하면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라며 “순례길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쉼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공주=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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