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도 이문열도 아니었다, 노벨문학상이 한강 선택한 이유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강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주제 의식, 외적으로는 2010년대 들어 국내에서 활발해진 번역 사업과 한국 문화에 대한 해외 독자의 관심 증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한국 문학의 가장 큰 '사건'은 2016년 한강의 부커상 수상이었다. 한강이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부커상을 받으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 독자의 관심이 커졌고 이를 계기로 한국 문학의 번역이 활발해졌다. '한강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22년. 한국 작가 정보라와 박상영이 나란히 부커상 국제부문 1차 후보에 노미네이트됐고,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세계에서 단 여섯 작품을 뽑는 최종 후보로도 선정됐다.
한강의 부커상 수상은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번역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부커상은 상금 5만 파운드(약 8799만원)를 저자와 번역가에게 절반씩 나눠 줄 만큼 외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역자의 공을 높게 평가한다.
이후 한국 문학 '수출'은 눈에 띄게 늘었다. 2001년 19종에 불과했던 번역 출간 도서는 최근 200종을 넘어섰다. 당시 국제부문 1차 후보(롱리스트)에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최종후보(숏리스트)에 정보라의『저주토끼』가 이름을 올리며 두 작품을 모두 번역한 안톤 허에게는 '스타 번역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부커상 외에도 메디치상이 노벨문학상의 디딤돌 역할을 했다. 한강은 2016년 부커상 수상에 이어, 지난해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메디치상 외국문학상까지 받으면서 노벨 문학상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평을 받았다. 두 상은 프랑스의 공쿠르상, 체코의 카프카상 등과 함께 노벨문학상의 관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앞서 한국 작가 중 노벨상 후보군으로 거론된 황석영·이문열 등과 한강을 구분 짓는 요소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강의 섬세하고 시적인 문체와 문학적 환상성이 차별 포인트가 됐다고 분석한다. 소설이지만 운문처럼 읽힐 만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을 쓴다는 점, 민족의 비극을 드러내면서도 개인성에 초점을 맞춘 서사라는 점에서 차별화를 이뤘다는 평이다.
경희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문학평론가 김종회는 "과거에 조정래나 이문열 등 선배 문인들이 6·25를 배경으로 한 소설, 민족상잔의 아픔을 다룬 소설을 썼고 한강도 5·18, 4·3 같은 역사적 사건을 다뤄왔지만, 결이 다르다"며 "한강은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개인의 내면을 강조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했다. "필치가 웅장하기보다 시적이고 서정적이라는 점, 한국 남성 문인들이 이끌었던 리얼리즘 문학과 달리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듯한 내러티브를 쓴다는 점 등이 어필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이후 눈에 띄게 성별 안배를 고려하는 노벨 문학상 위원회의 경향성을 고려했을 때, 그동안 동양인 여성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점, 일본과 중국에서는 이미 남성 수상자가 나왔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노벨문학상은 2013년부터 2년에 한 번꼴로 여자 작가에게 상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이 올해 다와다 요코(일본), 찬쉐(중국)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본 것도 이들이 여성이면서 최근 몇 년간 수상자가 몰린 유럽·북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문학평론가)는 "최근 김혜순의 시집 『날개 환상통』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상을 받는 등 아시아 여성 작가에 대한 주목도가 크게 높아졌다"며 "한강의 수상은 그의 뛰어난 문학은 물론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 증가 등 환경적 요인이 결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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