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3사 M&A 성적표 뜯어보니
443억원 → 0원.
이마트가 2022년 인수한 미국 나파밸리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Shafer Vineyards)’의 영업권 가치 변화다(지난해 말 기준). 당시 향후 5~10년 매출 성장률이 4~11%대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3077억원에 인수했지만, 경기 불황에 따른 와인 수요 부진에 전액 손상 처리, ‘제로(0)’가 됐다. 인수합병(M&A) 전략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유통 업계는 매년 크고 작은 M&A가 일어나는 ‘활성 단층’이다. 트렌드 변화가 빠른 데다, 이커머스 공세로 인해 지각 변동이 수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통 3사도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을 투입해 거의 매년 1~5개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과연 M&A 전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유통 전문 애널리스트 10명의 설문을 통해 유통 3사의 지난 20년간 M&A 성적을 매겨봤다.
‘절대 평가’ 3사 모두 낙제점
내수 기업 위주로 고점 매수 반복
설문 결과, 먼저 ‘절대 평가’에선 유통 3사 모두 그리 우수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3사 모두 성공적이지 않았다” “M&A로 인한 실적 감소가 가장 덜한 기업을 찾는 게 빠르다” “(유통업과 별개로) 부동산 인수가 성공적이었다” 등의 냉정한 답변을 한 애널리스트가 10명 중 5명에 달했다. ‘본업과의 시너지 부족’ ‘지나치게 큰 자금 투입으로 인한 재무 구조 훼손’ ‘호황기에 고점 매수’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허제나 DB증권 애널리스트는 “산업 사이클의 정점에서 고가에 매수한다는 점은 유통 3사가 명백하게 개선해야 할 점”이라며 “G마켓(이마트), 일진머티리얼즈(롯데), 지누스(현대)는 모두 이커머스, 2차전지, 매트리스 시장 과열 시점에 고가로 진입해 손해를 봤다”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A애널리스트는 “대부분이 실패 사례”라고 혹평했다. 그는 “내수 시장이 침체되고 있는데 내수 기업 중심으로 M&A가 이뤄졌다. 본업과 연관성이 다소 약해도 성장 산업에 투자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야 했다”고 말했다.
인수 성공 사례는
센트럴·한섬·두산주류 ‘잘 샀다’
‘그나마’ M&A를 잘한 기업을 상대 평가로 물었다. 결과는 신세계(이마트), 현대, 롯데 순으로 평가됐다. 애널리스트 6명, 3명, 1명이 이렇게 답했다.
신세계는 센트럴시티, 고속버스터미널(지분), 스타벅스(지분), 월마트코리아(16개점) 등을 인수한 것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특히 센트럴시티와 고속버스터미널은 국내 백화점 최초로 연매출 3조원을 돌파한 신세계 강남점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애널리스트 10명 중 5명이 표를 줬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서울 핵심 상권의 부동산을 인수해 자산 가치 상승 효과와 최대 상권의 안정적인 영업망 확보를 달성했다. 신세계 강남점, 호텔, 터미널 등이 핵심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그는 이어 “특히, 약 1조원에 인수한 센트럴시티는 부동산 가치만으로도 최소 7~8배 상승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재개발 가능성도 부각되며 신세계가 ‘자산주’로 평가 받는 데 기여했다”고 짚었다.
스타벅스코리아를 운영하는 ‘SCK컴퍼니’ 지분을 추가 인수해 경영권을 강화한 것도 성공적이란 평가다. F&B 플랫폼으로서 그룹 집객 효과에 기여했다고. 조상훈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스타벅스를 통해 외형 성장과 고수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오프라인 유통과 외식업 간의 시너지도 창출했다”고 말했다.
현대는 패션 계열사 한섬이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애널리스트 10명 중 8명이 몰표를 줬다. 백화점의 콘텐츠 확장과 제조+유통 수직계열화 시너지를 톡톡히 창출했다는 평가다.
허제나 애널리스트는 “현대백화점의 명품, 럭셔리, 패션 경쟁력 강화의 핵심으로서 브랜드 가치 제고에 성공했다. 단 4200억원 투자로 그룹 패션 포트폴리오 전체를 단번에 구축했다”고 호평했다. 김정욱 애널리스트는 “현대는 더현대 서울 성공 이후 패션 MD 역량이 매우 강화됐다. 이는 한섬이라는 ‘브랜드 사업’을 인수한 효과가 직간접적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롯데는 성공 사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롯데주류(3표), 롯데렌탈, 하이마트(이상 각 2표), GS리테일 백화점·마트 부문, 롯데케미칼타이탄(이상 각 1표) 순으로 표가 분산됐다.
롯데주류는 2009년 두산주류 인수를 통해 롯데칠성음료가 점유율을 확대하며, 종합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를 통해 ‘처음처럼’ ‘새로’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참이슬 독주 체제를 위협하는 강력한 대항마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고. 김정욱 애널리스트는 “두산주류 인수 이후 롯데칠성음료의 주류 부문은 핵심 캐시카우가 됐다. 최근에는 미국 등 해외 시장으로 소주 수출을 확대하며 영토를 넓히고 있다”고 짚었다.
2015년 ‘KT렌탈’을 인수하며 출범한 롯데렌탈은 안정적인 캐시카우 역할을 한 것이 평가를 받았다.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며 연간 30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을 벌어들이는 효자 계열사다.
이 밖에 롯데하이마트는 ‘롯데의 기존 유통망과 시너지 창출 및 카테고리 다변화 성공’, 롯데케미칼타이탄은 ‘롯데케미칼이 아시아 PE 1위 화학사로 도약하는 계기’ 등의 호평을 받았다. 허제나 애널리스트는 “롯데가 2010년 1조5000억원에 인수한 타이탄케미칼은 이후 12년간 연 3000억~5000억원의 수익을 벌어다주는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다”며 “2022년 이후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매각을 추진 중이긴 하나, 이미 누적 영업이익으로 인수금액은 성공적으로 회수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에너지머티·지누스·지마켓 ‘몰표’
M&A가 늘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잘못 인수해서 적자를 떠안은 ‘아픈 손가락’도 적잖다.
롯데가 2023년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전 일진머티리얼즈)가 대표적이다. 2조7000억원의 거금을 들였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 여파에 이후 2년간 누적 2000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다. 한 애널리스트는 “석유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를 이차전지 소재 등 다변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지만 전기차 캐즘 직전 고점 매수한 것이 뼈아프다. 단독 입찰자였음에도 매도자 희망가를 수용했다”며 “롯데월드타워까지 담보로 내놓는 등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2021년 인수한 ‘한국미니스톱’도 실패 사례로 꼽힌다. “점포 수 확대를 위한 인수였으나 이후 대규모 폐점이 발생하며 규모의 경제를 누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대는 글로벌 매트리스 기업 ‘지누스’의 실적이 아쉽다. 애널리스트 7명에게 몰표를 받았다. 2022년 약 8790억원을 들여 그룹 사상 최대 베팅을 했지만, 코로나19 특수가 끝나며 약 3000억원에 이르는 영업권이 손상차손되며 2023년 현대백화점의 사상 첫 적자를 초래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미국 매트리스 시장이라는 단일 카테고리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 코로나19 보복 소비의 정점에서 인수한 사례”라며, “경기 민감 소비재라는 점에서 인수 전 리스크 검토가 부족했다. 5000억원이 넘는 단기차입금도 그룹 재무에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지누스는 연내 흑자 전환의 가이던스를 제시하고 있지만, 준내구재인 제품 특성과 치열한 경쟁 상황 등을 감안할 때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신세계는 2021년 3조4404억원에 인수한 이베이코리아(G마켓, 옥션) 인수가 뼈아프다. 애널리스트 8명이 몰표를 줬다. 역시 고점 인수로 ‘상투’를 잡았다는 평가다. 한 애널리스트는 “2020년 850억원 흑자였던 회사가 2022년 655억원 영업손실로 전환하고 현재도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인수 시기 자체가 이커머스 버블의 정점이었다”며 “4년 만에 알리바바와 5:5 합작법인으로 전환하며 사실상 통제권 절반을 포기한 것은 실패를 인정한 빠른 판단이라고 본다”고 짚었다.
M&A 전략 성공하려면
몸집 불리기 지양…백화점 재투자를
M&A 성적표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기업은 내부 혁신과 외부 환경 변화를 통해 움직이는 생물이기 때문. 올해 수백조원의 영업이익이 기대되는 SK하이닉스도 15년 전에는 연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던 미운오리새끼였다.
실제 실패 사례로 꼽힌 기업 중 최근 선방 중인 기업도 꽤 있다. 지마켓은 지난 3월 객단가와 거래액이 모두 10% 이상 늘며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올 1분기 영업손실(50억원)을 전년 동기 대비 10분의 1로 줄이며 흑자전환을 꾀하는 중이다.
쉐이퍼 빈야드도 영업권과 별개로 ‘부동산 가치’를 보면 실패한 투자가 아니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와이너리가 보유한 247만㎡(약 75만평)의 부동산 총 자산 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 3889억원으로 인수 당시(3077억원)보다 상승했다는 것. 이마트 관계자는 “쉐이퍼 빈야드가 위치한 ‘스택스 립’은 나파밸리의 희소 부지”라며 “부동산과 브랜드 가치는 계속 우상향할 것이라 전망하며, 애초에 이런 장기적 관점에서 인수한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순 몸집 불리기는 지양하고, 본업과 시너지 중심의 M&A에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허제나 애널리스트는 “본업과 거리가 먼 거래일수록 실패 확률이 높았다. 가격 협상에서도 업종 평균 대비 과도한 프리미엄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3사 모두 규모 확장 중심의 M&A에서 벗어나 비핵심 자산 매각, 고수익 사업 강화를 병행하는 포트폴리오 최적화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민지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피인수 기업의 성장 서사가 부각되는 시점에서의 대규모 베팅은 고점 매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산업 사이클과 거시 환경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인수가격 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A보다 본업 강화를 위한 투자를 제언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 효과와 소비 양극화로 인해 백화점 산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주요 점포 리뉴얼과 신규 대형점 투자 등이 오히려 M&A보다 더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욱 애널리스트의 생각이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0호(2026.05.20~05.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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