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2년차 퀴어부부의 결심 "혼인신고하게 해주세요"

유지영 2024. 10. 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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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했지만 혼인신고 못한 황윤하·박이영글 부부, 11쌍 부부와 혼인평등소송

[유지영, 권우성 기자]

▲  혼인평등소송 원고인단 황윤하-박이영글 부부와 황윤하씨 어머니 마가렛(왼쪽)과 부부의 친구 정다혜씨(오른쪽). ⓒ 권우성

서로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오는 결혼 2년 차, 부부는 소송을 결심했다. 혼인신고를 '하게' 해달라는 소송이다.

2년 전인 지난 2022년 11월, 이들 부부는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하객 120여 명 앞에서 축하받으며 결혼식을 치렀다. 그럼에도 법적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할 수 없다.

"자기 자신으로 호명받지 못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라서요." (황윤하)

지난 1일 오전, 서울 은평구에 있는 부부의 집을 찾았다. 이곳에서 황윤하·박이영글 부부와 황윤하의 모친 마가렛(활동명), 이들의 결혼식을 도왔던 오랜 친구 정다혜씨를 만났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부가 키우는 강아지 라이언이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세상이 이제 바뀌었다고요"

▲  혼인평등소송 원고인단 황윤하씨 어머니 마가렛. 오른쪽으로 황윤하-박이영글 부부. ⓒ 권우성

이들 부부에게 결혼에 대해 먼저 물은 것은 윤하씨의 모친 마가렛씨이었다.

"윤하에게 제가 먼저 물어봤어요. 이 연애는 그냥 연애만 하는 상대로 만나는 건지, 아니면 결혼까지도 생각하는 상대인 건지요."

엄마의 말을 윤하씨가 받았다.

"우리 나중에 결혼도 하고 싶다고 지나가듯이 말했어요."

윤하씨의 말에 엄마는 이렇게 화답했다.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이다. 오늘 부암동에 식장을 한 번 보러 가자."

그렇게 2022년 11월 19일, 부암동은 아니지만 이들 부부는 서울 영등포구의 댄스홀을 빌려 120여 명의 하객들 앞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  혼인평등소송 원고인단 황윤하-박이영글 부부의 친구 정다혜씨. ⓒ 권우성

두 사람의 결혼식을 위해 10년 지기인 다혜씨와 친구 오씨 등이 "괜한 결의가 생겨" '결혼준비위원회'까지 꾸렸다. 결혼식 콘셉트를 선정하기 위한 '경쟁PT'를 통해 다혜씨의 안이 선정됐다.

"윤하가 좋아하는 소설 '해리포터'에 '금지된 숲'이라는 설정이 나오거든요. 이 '금지된 숲'에는 유니콘이나 늑대인간처럼 신비롭지만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생물이 사는데, 위험하다고들 말하는 숲에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당당하게 춤을 추면 좋을 것 같았어요."

다혜씨는 결혼식장에 숲을 만들었다.

▲  2022년 11월 19일 한 댄스홀을 빌려 진행된 두 사람의 결혼식. 부부가 좋아하는 책 '해리포터'에 나오는 '금지된 숲'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댄스홀을 꾸몄다. ⓒ 황글미언 유튜브

- 보통의 퀴어 당사자는 연애를 하는 상대를 밝히는 '커밍아웃', 그리고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거절당하거나 상처받는 경험이 익숙한데요.

마가렛 = "저는 우리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벤트가 결혼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생명을 가질 땐 부모의 선택에 의해 태어나지만 세상을 살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최초의 공식적인 일이 결혼이잖아요. 내 마음에 이 둘의 결혼에 걸림이 없었기 때문에 제 지인들도 초대했어요. 많이들 축하해주었어요. '세상이 이제 바뀌었다'고, '축하한다'고요."

마가렛은 '혼주'로서 자신의 친구들을 식장에 불렀다.

"퀴어인 입장에서는 엄마 친구들이 많이 안 오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예상치 못하게 너무 많이 오셔서 혼주 지인을 위한 테이블을 하나 더 비워둬야 하는 상황까지 있었어요."

▲  혼인평등소송 원고인단 박이영글-황윤하 부부. ⓒ 권우성

윤하씨와 영글씨는 결혼식 당시를 회상하면서 활짝 웃었다.

결혼식에 앞서 이들 가족은 상견례 자리도 따로 가졌다. 마가렛씨는 말했다.

"양쪽 모두 딸 가진 부모님들이라 오히려 신경전 속에서 진행되는 한국의 많은 상견례 자리와는 달리 아주 자유로웠어요. 영글이를 양육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사돈이) 재밌게 이야기해주시니 우리도 웃고, 저도 윤하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쾌한 자리였어요. 단지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그런 자리가 되니 좋더라고요."

'혼인평등소송' 결심.... "퀴어 결혼식이 기사로 실리지 않는 평범한 미래 꿈꿔"

윤하씨는 결혼식 전 프러포즈를 하면서 영글씨에게 편지를 썼다.

"영글이는 나한테 한순간의 불안감도 주지 않아. 영글이와 함께 사는 내 모습이 너무 맘에 들어. (중략) 영글이가 내게 준 사랑은 너무 많아서 영글이에게 주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을 만큼이야. 그래서 영글이와 내 남은 생을 쓰면서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과 동물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며 살고 싶어."

윤하씨는 결혼식을 치르고 2년간 영글씨와 같이 살아 보니 연애를 할 때와 달리 "관계에 대한 책임감이 달라졌다"고 했다.

"관계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하고 대화도 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옆에서 친구인 다혜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대화를 많이 해요. 같이 살다 보면 배려하기 쉽지 않잖아요.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알려주려고 노력을 부단하게 하더라고요."

이들은 매일 밤 하루 동안 고마웠던 일을 말하면서 같이 잠들고, 매일 아침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는 등 밝게 인사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 사이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혹독한 전세 사기를 겪고, 허리 디스크, 꼬리뼈 골절 등으로 서로를 잠시 간병했으나 오히려 이 사건은 서로 더 의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럼에도 서로 아플 때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것만큼은 이들에게 그냥 넘기기 어려운 커다란 슬픔이었다. 인터뷰 내내 웃던 영글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이영글 = "제가 허리 디스크가 찢어져서 응급실에 급하게 가야 했는데, 구급대원이 윤하가 옆에 있는데도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라'고 했어요. 전화는 했지만, 저희 어머니는 당장 올 수 없는 상황이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는데... 그러다가 윤하가 꼬리뼈를 다쳐서 병원에 갈 일이 생겼어요. 의사가 보호자는 들어오라고 하는데 제가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옆에서 (윤하의) 아버지도 망설이시더라고요. 제가 '법적 보호자는 아버지가 맞죠'라면서 병실에 들어가시게 했는데 많이 슬프더라고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황윤하 = "자기 자신으로 호명받지 못한다는 것이 되게 괴로운 일이라서요. 다른 사람의 말이나 시선은 신경 쓸 필요 없다지만 그렇다고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걸 받지 못한다는 것이 괴로운 일이기 때문에 계속 퀴어문화축제에서 소리를 지르고 소송을 할 수밖에 없어요. 퀴어가 아닌 이들도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없다면 괴로울 거고 소리 내고 싶을 거라 생각해요."

▲  혼인평등소송 원고인단 황윤하-박이영글 부부. ⓒ 권우성

그래서 이들은 또 한 번의 커다란 산을 넘는다. 이성 부부들과 동일하게 동성 부부 역시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혼인평등소송'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몇 달 전 은평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으나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오는 11일 이들 부부는 은평구 관할 법원인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혼인평등소송'을 시작한다. 같은 날 한국의 각 지역에서 이들과 더불어 11쌍의 동성 부부들이 동시에 관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그래서 영글씨는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마가렛) 부부처럼 다정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결혼식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사로 다뤄지지 않고, 퀴어라는 정체성이 주요한 특징이 되지 않는 평범한 미래"(황윤하)를 꿈꾼다.

이들 부부의 강력한 옹호자인 친구 다혜씨가 말했다.

"(이성과 동성 부부를 나누는 법적인) 기준이 (사라지게 되면) 우스워질 거라고 기대해요. 사실 별거 아니잖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들 (부부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스스로 해야죠. 각자의 위치에서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상상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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