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낯선 모습으로 돌아온 BTS,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김영실 2026. 3. 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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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광화문 공연 둘러싼 온갖 말들 속에서 내가 눈여겨 본 것들

[김영실 기자]

4년 만에 완전체로 복귀한 BTS의 광화문 공연이 뜨겁다. 누구나 오가며 한마디씩 보탠다. 페이스북에서 팔로우하며 읽는 한 음악평론가는 "BTS 공연은 시시했다"라는 문장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두었다. 쓰레드에서는 방탄을 옹호하는 글과 비난하는 글이 첨예하게 맞붙는다. 무지성 비난도 싫지만, 무지성 옹호 역시 내 취향은 아니다. 그 와중에 제법 내용이 있는, 논리적인 비판의 글들은 읽어볼 만했다.

우선 정치적, 사회적, 행정적 측면은 감히 논할 급이 되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방탄 이야기 자체만 적어보려 한다.

사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공연을 현장에서 본다는 것은 피 튀기는 티켓팅의 승자가 된다는 뜻이다. 티켓은 무료였지만, 여하튼 티켓팅은 티켓팅이었다. 특정한 날짜와 시간에 정해진 좌석 수가 풀리는 방식. 1차 표는 무대 바로 앞 2천 석이었고, 그다음은 무대 주변 모니터로 보는 1만 5천 석이었다. 당연히 내 포도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티켓팅을 감히 시도했었다. 예매 사이트에 접속하자마자 내 앞 대기번호는 이미 7만 6천 번이었다.

이후 취켓팅(일명 예매가 취소된 표를 사는 것)에도 서너 번 도전했다. 그러나 이선좌를 단 한 번 봤을 뿐, 역시나 실패했다. 마음을 편히 먹기 위해 과감히 취켓팅은 접었고, 넷플릭스로 아미 친구들과 집에서 공연을 봤다. 현장의 열기는 없었지만, 대신 조금 더 차분하게 공연 전체를 볼 수 있었다. 누가 어디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곡을 어떤 순서로 배치했는지, 무대를 어떤 메시지로 엮고 있는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는 면도 있었다.

BTS 7명은 검은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대중적인 곡 위주로 진행될 것이라는 항간의 소문과는 달리, 기존 곡 네 곡, 그러니까 'Butter', 'Dynamite', 'Mic drop', '소우주'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이번 정규앨범의 신곡들로 채웠다. 낯설고 거친 사운드, 만만치 않은 가사였다. 음향의 결도 이전의 대중적인 히트곡들과는 꽤 달랐다. 새로웠고, 동시에 생소했다. 전날 음원 사이트를 통해 앨범 전곡을 미리 들어두었기에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막상 공연의 맥락 안에서 듣는 신곡들은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어 가사가 꽤 많아서 안심했던 마음도 있었는데, 그 안심조차 이번 앨범의 방향을 완전히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혹자는 방탄이 전역 후 흑화했다고 말한다. 다크하고 무겁고, 의상도 검고 노래도 검어서 사자보이즈인 줄 알았다는 식의 평도 보았다. 웃자고 하는 말 같지만, 그 말이 아주 틀렸다고만 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이번 무대는 밝고 친절한 대중적 호감의 언어보다는, 조금 더 거칠고 날것의 에너지에 가까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방탄은 애초에 힙합 보이밴드로 출발한 팀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낯선 변신이라기보다, 오히려 꽤 오래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온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3년 6월 13일 데뷔한 이후, 처음 2년 동안 시장의 반응은 지금의 위상에 비하면 차갑고 더뎠다. 그 시기에 발표된 싱글 1개, 미니앨범 2개, 정규앨범 1개, 그러니까 총 네 장의 앨범은 10대의 저항과 성장, 사랑을 다뤘다. 지금 돌아보면 그 메시지는 분명했고, 에너지도 넘쳤다. 하지만 그때의 방탄은 대중의 한복판에 서 있던 팀이 아니라, 자기들만의 언어로 자기 세대를 밀어붙이던 팀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가 2015년 화양연화 앨범의 'I Need U'가 역주행하면서 비로소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해외 시장에서 먼저 반응이 왔고, 한동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그룹이라는 인상도 강했다. 그리고 코로나 시기를 전후해 영어곡 세 곡이 발표되었을 때, 방탄의 대중성은 말 그대로 폭발했다.

사실 BTS가 지나온 길을 이력과 숫자로 적어보면, 이것은 그저 성공한 아이돌의 서사가 아니라 지구별 대스타의 기록에 가깝다. 이번 공연만 해도 송출 국가와 동시 접속자 수를 둘러싼 숫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떠돈다. 하지만 나는 숫자로 방탄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숫자는 위엄을 증명해주지만, 사랑의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대단함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왜 이 팀이 한 사람의 내면까지 흔드는지는 끝내 말해주지 못한다. 내가 방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기록이 아니라 감각이고, 성취가 아니라 흔들림이며, 통계가 아니라 체험이다.

그렇다면 이번 <아리랑> 앨범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리랑은 왜 영어 가사로 불려져야 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누군가는 전통의 훼손을 말하고, 또 누군가는 세계화를 말할 것이다. 둘 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아리랑>은 우리 민족성에 대한 단순한 회귀라기보다, 방탄소년단이 자기들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몸짓처럼 보인다. 세계를 다 돌아본 끝에 다시 처음의 자리로, 가장 원초적인 정체성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더 멀리 가기 위해 더 깊이 내려가는 방식. 나는 이번 앨범이 그런 회귀의 제스처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랑이 영어로 불렸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낯설다. 왜 굳이 아리랑을 영어로 불러야 하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곱씹어보면, 그것은 한국적인 것을 지우려는 시도라기보다 오히려 전 세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문법 안으로 옮겨 심으려는 시도처럼 느껴진다. 가장 로컬한 것을 가장 글로벌한 형식으로 번역하는 일. 방탄은 오래전부터 그 일을 해온 팀이기도 하다. 자기들의 언어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언어 안으로 들어가 닿는 법을 배워온 팀. 그러니 이번 영어 가사는 어쩌면 타협이 아니라 확장이고, 훼손이 아니라 번안이며, 잃어버림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전달일 수도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언제나 매끈하고 완벽할 수는 없다. 어떤 시도는 과하고, 어떤 선택은 아쉽고, 어떤 무대는 기대보다 밋밋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이번 공연을 보며 단번에 압도되기보다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이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왜 이 곡을 여기 배치했을까, 왜 이토록 검고 무겁게 갔을까. 하지만 그 질문들조차 결국은 무관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기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질문이고, 애정이 있으니 끝까지 보게 되는 의문이다. 그러니 비판과 애정은 꼭 반대편에 서 있는 감정만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좋아한 사람일수록 더 복잡하게 말하게 된다.

방탄이 나에게 해준 게 뭐냐는 식의 불만에, 나는 이제 꽤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다. 방탄은 나를 구원해줬다고. 어쩌면 이 말은 신파처럼 들릴 것이고, 너무 많이 소비된 팬의 문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런 문장이 조금 민망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민망함과 진실은 별개의 문제다. 뻔하게 들린다고 해서 거짓은 아니다. 어떤 시절의 나는 정말로 음악 몇 곡에, 무대 몇 장면에, 가사 몇 줄에 기대어 하루를 건넜다. 사람은 거창한 구조가 아니라 의외로 사소한 것으로도 살아진다. 다음 날을 버티게 하는 한 문장, 나보다 먼저 울고 화내주고 대신 말해주는 어떤 목소리. 내게 방탄은 그런 순간들이었다.

그러니 내가 방탄을 좋아한다는 말은, 단순히 스타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잘생겼고, 춤을 잘 추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좋아하는 것만도 아니다. 물론 그런 요소들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어떤 시절의 나를 통과하게 해준 음악이었고, 어떤 감정을 무사히 건너게 해준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방탄이 세상을 바꿨다고까지는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 세계의 일부는 바꾸어 놓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대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거대한 세계 전체보다, 자기 삶의 작은 세계가 실제로 바뀌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광화문 공연을 둘러싼 온갖 말들 속에서도, 나는 조금 느리게 생각해보려 한다. 이 무대가 완벽했는지, 모두를 만족시켰는지, 비평적으로 얼마나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는 시간이 지나 더 많이 말해질 것이다. 하지만 내게 남은 장면은 따로 있다. 검은 옷을 입고 다시 선 일곱 사람, 낯설고 거친 신곡들, 그럼에도 끝내 자기들의 자리로 돌아오려는 듯한 몸짓. 나는 그 장면을, 방탄이 새로운 얼굴로 돌아온 순간이자 동시에 가장 방탄다운 자리로 되돌아온 순간으로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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