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폐업 속 쌓여가는 황학동 중고 집기···다이소·메가커피만 잘되는 ‘불황 소비’
“1987년부터 황학동에서 가구를 팔았는데, 이렇게까지 어려운 적은 처음입니다. 주변 골목 한편에만 10곳이 넘는 가게가 문을 닫았죠. 저희도 이번 달까지만 장사하고 폐업합니다.”
지난 9월 23일 오후 찾은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에서 만난 김영덕 씨(가명)는 9월을 끝으로 가게 문을 닫는다. 37년을 이어온 가업이지만, 거듭되는 자영업 시장 악화로 더는 버티기 어려워졌다.
황학동 주방·가구거리는 창업을 준비하는 이가 주로 찾는 이른바 ‘땡처리 시장’이다. 폐업 자영업자에게 사들인 중고 가구와 각종 주방 설비, 또 여러 집기를 개인 창업자에게 되파는 게 사업 모델이다. 그동안은 어지간한 불황에도 황학동을 찾는 예비 자영업자가 많았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쓸 만한 물품과 설비 구입이 가능한 덕에, 초기 창업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어서다.
올해 들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공급이 수요를 훌쩍 뛰어넘었다. 폐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중고 물품과 설비는 산처럼 쌓였다. 하지만 창업 수요가 없어 이를 가져가는 이가 많지 않다. 황학동 곳곳에는 업소형 냉장고, 스테인리스 냄비, 매장용 의자 같은 중고 물품이 한가득 거리를 메운다. 하지만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을 정도로 거리는 한적하다. 철거 용품을 실어 나르는 용달차만 이따금 들락거릴 뿐이다. 상인들은 체념한 듯 텅 빈 거리만 바라봤다. 황학동에서 장사를 하는 또 다른 가구 용품점 상인은 “올해부터는 중고 물품을 전혀 구매하지 않고 남은 물건만 팔고 있는 상황”이라며 “팔리지도 않는데 괜히 돈 주고 매입할 이유가 없다. 지금 쌓인 재고 처리만 해도 버겁다”고 사정을 전했다.
이곳에서 30년간 주방 용품을 판매해왔다는 또 다른 상인은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훨씬 손님이 없다”고 한숨 쉬었다. “당시 배달업이 활발해지며 작은 식당과 배달 전문점이 많이 생겼고, 재난지원금도 있어 요식업 창업자가 중고 물품을 종종 사가곤 했다”며 “지금은 코로나 기간과 비교해도 매출이 3분의 1토막이 났다. 폐업만 많고 창업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 내수 시장에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영업자, 직장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코로나 때보다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뻔한 ‘앓는 소리’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통계가 증명한다. 폐업은 역대 최대, 상권 내 카드 결제는 가파른 우하향 곡선을 그린다.
업종마다 희비가 갈리는 현 상황에서도 불황을 엿볼 수 있다. 다이소·저가 커피·초저가 주점 등 가성비를 앞세운 매장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중고 거래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유통 채널에서는 편의점이 사상 첫 백화점 매출 역전을 눈앞에 뒀다. 반면 우후죽순 늘었던 명품 플랫폼은 고꾸라지는 추세다. 내수 불황 징후가 이곳저곳서 터져 나오는 모습이다.

폐업 역대 최대…“100만원도 못 벌어”
내수 침체 직격탄을 맞은 건 역시 자영업자다. 불황을 견디다 못해 폐업을 결정한 사장님이 부지기수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폐업’ ‘점포 정리’ 관련 문의글이 넘쳐난다. 매장 양수양도 플랫폼에는 ‘무권리’로 가게를 내놓은 물건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강남·홍대 같은 서울 핵심 상권을 잠깐만 돌아 다녀봐도 ‘임대 문의’가 내걸린 상가 1층 매장이 발에 차인다. 폐업 매장에서 중고 설비를 매입해 되파는 ‘땡처리 시장’에 손님은 없고 재고만 넘친다. 폐업 후 재창업 문의가 없는 탓이다. 단순히 ‘체감상 경기가 어렵다’ 수준이 아니다. 통계에서도 자영업자의 심각한 상황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개인·법인 사업자 수는 98만6487명으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사업자는 전년(86만7292명) 대비 13.7% 늘었다. 증가폭 역시 통계 집계 이래 최대다.
음식 업종 위기가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해 음식점 79만개 중 15만개가 문을 닫았다. 새로 창업한 가게가 15만9000개, 반대로 폐업 매장은 15만3000개다.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은 96%에 달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영업 시장이 홍역을 앓았던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도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신규 창업 대비 폐업 비율은 79%다. 가게 10곳이 문을 열 때 8곳이 문을 닫았다는 의미다. 팬데믹 끝자락이던 2022년(66%)보다 13%포인트 올랐다. 최근 10년 내 가장 높다. 서울시 상권 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서울 내 폐업 점포 수는 1만5810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평균 폐업 점포 수(1만3193개)를 약 20% 웃돈다.
서울 은평구에서 돈가스 전문점을 운영하다 올해 문을 닫고 구직에 나선 김상민 씨(가명)는 “팬데믹 때도 버틴 가게였지만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손님이 정말 너무 많이 줄었다”며 “냉장고와 그릇 같은 중고 집기를 사려는 이가 없어 돈 한 푼 안 받고 처분했다”고 한숨 쉬었다.
손님은 없고 재료비, 인건비, 전기세 같은 비용은 오히려 오른다. 장사를 할수록 빚만 늘어나는 이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는 빈곤층으로 내몰린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개인 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 1146만건 중 약 75%에 해당하는 861만건 한 달 소득이 월 100만원에도 못 미쳤다. 종합소득세 신고 기준인 탓에 실제 손에 쥔 돈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만큼 생계를 이어가기 힘겨울 정도로 어려운 자영업자가 많다는 얘기다.
10년째 폐업 점포 정리 컨설팅을 하고 있는 정예희 어게인 대표는 “올해처럼 폐업 문의가 많은 해가 없었다. 점포 정리·철거가 주를 이뤘던 상담 수요가 올해는 개인 회생·파산으로 바뀐 것도 우려스럽다”며 “보유 재산보다 채무가 많다 보니 정리를 못해 어쩔 수 없이 가게 문만 열어놓고 있는 사장님도 많다. 갈수록 폐업 리스크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영업자가 어렵다 보니 상권 전반적인 분위기도 침체한다. 매경이코노미가 빅데이터 전문 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에 의뢰해 건네받은 상권 카드 결제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상권 침체 징후가 뚜렷하다. 서울에서 매출이 가장 큰 상권 30곳 중 15곳에서 카드 매출 감소가 나타났다. 1년 전인 2023년 상반기에 전체 30개 중 29개 상권에서 전년보다 매출이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서울 상권 분위기는 확실히 우울해졌다. 특히 홍대입구(-510억원), 신사(-402억원), 신림(-378억원), 강남(-245억원) 등 서울을 대표하는 핵심 상권에서 전년 대비 카드 결제가 크게 줄었다.
최대 상권인 강남의 부진이 상징적이다. 전년 대비 의료 서비스 업종 카드 결제액이 160억원 넘게 늘었는데도 총 결제액은 줄었다. 성형외과·피부과 등 특수 병원 매출을 제외하면 실제 눈에 보이는 통계보다 상권이 더욱 안 좋다고 봐야 한다. 업종 특성상 의료 서비스는 외식이나 유흥, 쇼핑 같은 2차 소비로 잘 이어지지 않아 더 심각하다.
강남역 인근에서 고기 전문점과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는 이광호 씨(가명)는 “요새 강남역 주변 상권을 둘러보면 9시만 돼도 컴컴해진다. 돌아다니는 손님이 없어 가게가 하나둘 빨리 문을 닫게 되는데, 어두운 분위기 탓에 손님이 찾지 않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요즘 강남은 사실상 직장인 점심 상권이 됐다. 가성비 좋은 한식을 제외하면 잘 되는 가게가 몇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생맥주 1900원 초저가 이자카야 붐
물론 이 와중에도 잘되는 업종은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모두 전형적인 ‘불황형 업종’이다. 저렴한 가격과 가성비를 앞세운 사업은 최근 오히려 대목을 맞이한 모습이다. 팍팍한 지갑 사정을 고려하다 보니 ‘싼 것’을 우선 찾는 분위기 때문이다.
초저가를 앞세운 생활용품 브랜드 ‘다이소’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매출 3조4065억원, 영업이익 2617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다이소 매출이 3조원을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매출은 2조9458억원, 영업이익은 2393억원이었다.
다이소가 각광받는 이유는 단연 저렴한 가격이다. 3만종이 넘는 다이소 판매 제품은 항목 불문 최대 5000원을 넘어가지 않는다. 최근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라는 ‘다이소 화장품’만 봐도 그렇다. 모든 화장품을 5000원 이하에 판매하다 보니 너 나 할 것 없이 몰려든다. 용량을 줄이거나 포장을 단순화해 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방식이 불황 소비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다이소 올해 상반기 화장품 매출은 전년 대비 223% 급증했다. 2021년 4종에 불과했던 화장품 상품 수는 올해 8월 기준 340여개까지 늘었다. 최근에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프리미엄을 앞세운 국내 양대 뷰티 대기업이 모두 다이소에 입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폐업률이 치솟고 있는 커피 전문점 시장에서도 가성비를 앞세운 ‘저가 커피’ 브랜드는 꾸준히 덩치를 키우고 있다. 1500~2000원 가격에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판매하는 메가커피·컴포즈커피·빽다방 등은 점포 수를 계속 늘려가는 중이다. 최근에는 감성커피에서 1000원짜리 빅사이즈 아메리카노를 내놓는 등 저가 경쟁에 더욱 불이 붙은 모습이다.
주점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생맥주 한 잔에 1900원을 앞세운 ‘초저가 이자카야’ 창업 열풍이 뜨겁다. 생긴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벌써 100호점을 훌쩍 넘긴 신생 브랜드가 여럿이다. ‘생마차’는 창업 9개월 만에 170호점, ‘쏘시지요’는 6개월 만에 160호점을 넘어섰다.
이들 전략은 비슷하다. 빠른 회전과 박리다매다. 20평 매장 기준 테이블이 15개가 넘게 들어간다. 안주당 평균 조리 시간은 3~4분. 테이블에 부착된 QR코드나 스마트기기로 소비자가 직접 주문하는 방식 덕에 주문 시간과 인건비를 줄였다. 생마차에서 만난 한 직원은 “식사 후 2차로 가볍게 한잔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다. 찾는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넓다”며 “고물가 탓에 술 한 잔 먹어도 5만원은 우습게 넘는 주점이 워낙 많다 보니 초저가 이자카야 수요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다시 무한리필·뷔페가 인기를 끄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외식 물가 상승으로 가계 부담이 커지면서 합리적인 가격에 여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수요가 쏠린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무한리필·뷔페 음식점 이용률은 2022년 대비 24% 넘게 올랐다.
한동안 잊혔던 뷔페 브랜드도 다시 떠올랐다. 이랜드이츠가 운영하는 뷔페 ‘애슐리퀸즈’와 ‘로운 샤브샤브’ 올해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69%, 35% 올랐다. 한식 뷔페 ‘자연별곡’ 또한 동기간 지난해 대비 32% 증가했다. CJ푸드빌 샐러드바 레스토랑 ‘빕스’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점당 매출 기준 연평균 약 35%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커머스에서도 비슷한 트렌드가 이어진다. 중고 거래는 역대 최대를 기록한 반면 명품 플랫폼은 부진을 거듭하는 중이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조사 결과 올해 8월 주요 중고 거래 앱 설치
자 수는 3378만명, 사용자 수는 2264만명으로 두 지표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0년 8월과 비교하면 앱 설치와 사용자 수 모두 2배 이상 늘었다. 한국인 스마트폰 사용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중고 거래 앱을 설치했고 4명 이상이 앱을 쓰고 있는 셈이다.
반면 명품 플랫폼 결제는 내리막을 걷는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1~8월 기준 명품 플랫폼의 누적 카드 결제 금액은 375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069억원보다 38.1% 감소했다. 머스트잇(73%), 트렌비(71%), 발란(61%) 등 국내를 대표하는 ‘명품 빅3’ 앱에서 결제 감소가 오히려 더 두드러졌다.

응답자 73% “코로나 때보다 우울”
일반 시민이 체감하는 현 경기 상황은 어떨까. 매경이코노미는 모바일 리서치 기업 오픈서베이와 함께 전국 200명을 대상으로 최근 내수 침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한국 경제 분위기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대부분(91.5%)은 ‘내수 시장이 침체 상태에 있다’고 답했다. ‘침체’라고 답한 비율이 57%로 가장 높았고, ‘약간 침체’ 상태라고 답한 사람은 34.5%였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 팬데믹 시기와 비교해도 더 나빠졌다는 응답이 많았다. 전체 73%는 팬데믹 시기보다 현재 경기가 더 안 좋다고 말했다. ‘나아졌다’는 답변 비율은 단 6.5%에 그쳤다.
‘언제 경기 침체를 체감하는지’를 묻자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응답자 57%(복수응답 기준)는 ‘소비·지출을 줄였을 때’라고 응답했다. ‘대출 이자 부담이 크게 느껴질 때(43%)’ ‘코스피 등 주식 시장 침체(41.3%)’ ‘늘어난 공실 등 상권 침체(40%)’ 같은 답변이 뒤를 이었다.
일상에서는 ‘외식 등 식비’ 지출을 줄였다고 말한 이가 가장 많다(응답자 71.9%(복수응답)). ‘여행·공연·레저 등 여가 지출(65.6%)’과 ‘패션·미용·잡화 등 소비(60.9%)’ 같은 항목도 과거보다 많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적인 소비 외에는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높은 물가 수준이 가장 결정적이다. 소비를 줄인 주요인을 묻는 질문에 전체 10명 중 8명이 ‘물가 상승(79.3%, 복수응답)’이라고 답했다. ‘근로 소득 감소(39.3%)’와 ‘이자 부담(34.3%)’을 꼽는 이도 다수다.
2025년에는 상황이 조금 나아질까. 응답자들은 내년도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점쳤다.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한 응답자가 전체 50%였다. 반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8.5%에 그쳤다. 지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한 이는 41.5%였다.
전문가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돌아선 소비 심리가 내년에 갑자기 회복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 수출이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지만 그동안도 내수 경기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며 “특히 600만명이 넘는 자영업 시장이 무너지고 있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향후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고물가, 고금리, 부동산 가격 상승, 저출생, 고령화 등 경기·구조적 문제가 산적해 있다. 공격적인 정부 재정 정책이 없다면 2025년에도 쉽게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것 같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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