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해외여행, 불안해도 '굳이'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권유정 2024. 10. 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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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환전, 돈 뽑고 더치페이하기... 낯설고 불안해도 일단 해보면 달라집니다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여행,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연극 등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자립과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여행에 따라오는 건 설렘뿐만은 아니다. 낯선 곳을 마주하는 불안 또한 여행에 대한 기대 반대편에 늘 자리하고 있다.

입국심사는 잘 통과할 수 있을지, 길은 잘 찾을 수 있을지, 바가지를 쓰진 않을지, 아프거나 다치면 어떻게 할지,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등등 시시콜콜한 걱정과 함께 온갖 최악의 상상들이 펼쳐지면서 여행을 앞둔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사실 막상 한 번 겪어보고 나면,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구나 하게 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고, 금방 익숙해지며, 우려했던 문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여행에는 설렘도 있지만 불안도 따라온다(자료사진).
ⓒ chuttersnap on Unsplash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경험치가 쌓이면, 다음 여행은 더욱 수월해진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줄어들고, 자신에 대한 신뢰와 효능감은 높아진다.

우리가 자유여행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신나게 놀고 즐기기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의 대부분이, 그리고 여행지에서도 꽤 많은 시간이, 머리 아프고 몸 힘든 순간들이다. 때로는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도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대다수가 불안함을 이겨내고 끈기 있게 노력하는 태도가 부족하다. 잦은 실패의 경험은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어려우면 의존하고 힘들면 포기한다. 이러한 태도가 고착되면 아이들은 가진 바 능력 이하로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잃게 된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무기력이 학습된 아이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어려운 여행 준비에 머리가 지끈거려도, 잘 해낼 수 있을까 불안이 솟구쳐도,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해 성취해 낸 경험은 세상을 헤쳐나갈 토대가 되어 아이들 마음 깊은 곳에 단단히 자리 잡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발달장애 아이들과 자유여행을 도전하는 이유이다.

환전, 잘할 수 있을까

여행을 앞두고, 아이들이 가장 염려한 것 중 하나는 환전이다. 우리는 현금을 가져가는 대신 소지와 사용이 용이한 트래블 카드를 만들어 가기로 했고, 1학기 동안 졸업여행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카드발급, 충전, 환율 계산, ATM 사용방법 등을 공부하며 준비를 마쳤다.

트래블월렛 카드와 연결된 계좌에 입금만 하고, 카드만 챙겨 오면 된다고 했지만 정말 현금을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이들이 ATM 출금을 잘할 수 있을지 등 여러모로 염려가 됐다.

불안이 높은 아이들은 배운 것들을 여러 번 되묻고, 이미 알고 있는 것들도 계속 확인하고, 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실제 해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다독여도, 이들의 불안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누구도 대신 감당해 줄 수 없고, 스스로 부딪히고 깨달아야 잦아들 마음이었다.

우리가 여행일에 소지하기로 한 4박 5일 경비는 식비 및 교통비 최소 30만 원. 간식비와 쇼핑은 제각각 정한 예산에 따라 10~30만 원가량을 더했다. 그중 우리는 우선 홍콩국제공항에서 옥토퍼스 카드를 구매할 200달러와 비상금 200달러, 총 400달러만 출금을 하기로 했다.

홍콩은 현금만 받는 가게가 꽤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는 일정상 둘째 날까지 현금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았고, 별도로 현금을 챙겨 온 학생들이 일부 있었기 때문에 소액만 출금했다.
▲ 홍콩국제공항에서 ATM 출금하기 휴대폰 메모를 보며 ATM 출금에 도전한다
ⓒ 권유정
비밀번호를 몇 번씩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막상 홍콩국제공항에서 출금을 시도하니 비밀번호가 또 틀린다. 메모해 놓은 숫자를 보고 입력하는데도 왜 틀리는 건지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다. 긴 대기줄에 눈치가 보여 오류가 나면 다시 뒤로 가서 줄을 서고 재시도를 하길 수차례.

그래도 여러 번 반복하니 영어로 된 메뉴도 혼자서 척척 누르는 게 학습은 확실히 된 것 같았다. 출금에 성공한 아이들은 몹시 뿌듯해했다. 현금을 찾고, 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옥토퍼스 카드를 구매하고, 숙소로 가는 공항버스 티켓을 끊었다.

우리 숙소가 위치한 침사추이 역까지는 A21 공항버스로 환승 없이 이동이 가능하다.

공항버스는 옥토퍼스 카드나 트래블월렛 카드로도 탑승이 가능하지만 왕복티켓을 결제하면 약 10HKD 정도 더 저렴하다고 하여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티켓을 끊기로 했다(HKD는 홍콩 달러, 1달러에 한화 약170원 정도).

창구가 하나뿐이라 각자 결제를 하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룹별로 결제를 하고, 트래블월렛 카드의 친구 간 송금 기능을 이용하였다. 그룹별로 A21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 A21 공항버스 티켓 그룹별로 공항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 권유정
트래블월렛 사용자끼리는 친구 간 송금 기능이 있어, 상대의 이름과 전화번호만 있으면 충전된 돈을 간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

지난해 오사카 여행 때는 없었던 기능이라 그때는 택시 등 한 명이 대표로 결제할 일이 있으면 나머지 친구들이 현금으로 주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후 송금 기능이 생겨 올해는 아주 유용하게 이용했다.

방법도 간단해 아이들도 한두 번 사용해 보자 금방 사용방법을 익혔고, 내역이 기록되니 가계부를 작성하기에도 쉬웠다.

사실 원래는 트래블월렛의 'N빵 결제'를 이용하려고 했었는데, 실패했다. 트래블월렛 사용자 간 그룹을 만들고, 대표가 카드로 결제를 하면 자동으로 더치페이가 되는 기능인데 아쉽게도 교통카드, 호텔, ATM출금, 항공 등 몇몇 곳은 이용이 불가능했고, 공항버스 티켓 구매도 불가능했다.

대신 식당에서는 유용하게 사용했다. 홍콩의 로컬 식당 중에는 현금만 받거나 일정 금액 이상만 카드결제가 되는 곳들이 있었는데, N빵 결제 기능을 이용해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각자 메뉴를 선택해 금액이 다를 때도 각각 결제 금액을 설정할 수 있는 점이 매우 좋았다. 다만 각기 다른 금액을 결제할 때는, 동일한 금액 때와는 다르게 참가자들이 자기 금액을 확인하고 동의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최근 한국은 결제할 때 요청하면 각자 계산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 많은데, 내가 겪은 홍콩은 안 된다는 곳이 많았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식당에서 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더치페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에게 무척 편리한 기능이다.
▲ 트래블월렛 N빵 결제 N빵 결제 기능을 이용해 더치페이 하기
ⓒ 권유정
'더치페이'는 우리 아이들에게 항상 가르치지만, 항상 어렵다. 아이들에겐 1/n 계산도 조금 어렵고, 나눈 금액이 천 원 단위 등 단순하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비용을 주고받는 것도 어렵다. 금액에 꼭 맞는 잔돈이 없을 때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그래서 요즘은 '카톡 정산하기' 등 기술을 활용해 각자 결제하는 대체 방법을 가르치는데, 그것도 카카오페이 등을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은 활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카드발급부터 하나하나 모두 준비해야 하는 자유여행은, 해야 할 일이 참 많지만 이렇게 여행을 통해 평상시에 할 수 없던 것들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최고의 장점이다.

다소 아쉬운 점은 N빵 결제 그룹을 만들고 사용을 하면 계속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어 다음에 대표자가 개인결제를 할 일이 있을 때 수동으로 비활성화를 시키지 않으면 자동으로 N빵 결제가 된다는 점이다. 몇 번 잊어버려 개인사용 분을 N빵 결제하는 바람에 잘못 결제된 금액을 다시 송금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금으로 주고받을 때와는 비할 바 없이 편리해졌다. 새로운 기능을 익히느라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익숙해지니 그리 어렵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그려졌다.

'굳이'? 싶지만, 그럼에도 해보는 게 늘 나은 이유

사실 그런 기능들을 사용하지 않아도 여행에 지장은 없다. 굳이 복잡하게 이런 것까지 해야 할까 싶을 때도 있다.

어쩌면 하던 대로, 익숙한 방식으로 하는 것이 더 복잡하지 않고 편할지도 모른다. 잘 모르는 것들은 항상 불안을 유발하고, 사람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익숙한 것들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아마 나 역시 발달장애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간 해온 것들을 반복하며, 굳이 새로운 기술들을 배우고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배움일지라도, 이전엔 경험해 보지 않았던 것들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그 자체로 내면의 힘이 되어 아이들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걱정돼서 포기하는 대신 불안함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것, 어렵다고 회피하는 대신 서툴러도 시도해 보는 것,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만들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것.

그 느린 걸음을 통해 나 또한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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