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치명적인데... 미국·유럽도 침묵하는 '이것' [소셜 코리아]

박정은 2024. 10. 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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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배출량 공개의무 없고 통제 않는 군사부문 온실가스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박정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자신들의 첨단무기 실험장으로 쓰고 있다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 실험장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넘어 레바논 베이루트로 확장되었다. 온라인 게임을 하듯 이스라엘이 연일 이곳에 쏟아붓고 있는 벙커버스터는 무자비한 폭격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화염 속에 폐허를 남기고 있는 이 전쟁은 동시에 엄청난 온실가스를 지구상에 뿜어대며 인류사회 모두에게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월 영국 신문 <가디언>은 지난해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였던 전쟁의 첫 두 달 동안 온실가스를 총 28만 1천 톤 배출했다는 연구를 소개했다. 이중 99% 이상이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 침공에 기인했다. 전투기, 탱크, 차량 등의 연료와 폭탄, 포탄, 로켓의 제조와 폭발로 인한 것이다.

이 규모는 기후에 취약한 20개국의 연간 탄소 발자국보다 더 많은 양이다. 메탄과 같은 온실가스는 물론 각종 무기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배출량은 포함하지 않았다. 실제 탄소 배출량은 이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군대를 운영하고 있고, 또 많은 나라들이 무기체계의 생산과 거래에 관여한다. 군대와 무기를 동원해 전쟁을 수행하기도 하고, 초토화시킨 곳을 재건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일단 군사 분야는 화석연료의 대표적 소비처 중 하나다. 군대 운영, 군사 활동, 무기체계 운용과 장비 유지보수 등에서 상당히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무기 제조에 사용하는 철강,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은 생산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특히 군함, 전투기, 탱크, 미사일, 포탄 등과 같은 무기들은 석탄 기반으로 생산한 철강을 소재로 한다. 이들 무기는 아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강도가 높은 철강 제품을 쓰는데, 주로 고로(용광로)에서 생산하는 철강 제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강 생산과정에서 석탄을 주입하는 방식의 고로 공정은 1톤의 철강을 생산하는 데 2톤 이상의 탄소를 배출한다. 고로에서 대부분의 철강을 생산하는 포스코가 압도적인 탄소 배출량을 기록하는 이유이다.

올해 기후솔루션 보고서에 따르면 볼보 트럭의 경우 약 47%가 철강 소재로 구성된다. 어떤 철강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트럭을 만들 때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의 40% 안팎이 철강 소재로 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트럭보다 강도 높게 만드는 수많은 무기들을 생각한다면 무기산업에 사용하는 철강의 양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군사부문 배출량, 세계 4위 국가 수준
 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에를 공습해 화염이 발생하고 있다.
ⓒ UPI/연합뉴스
군사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한 공개 연구물은 매우 드물다. 있다고 해도 주로 군대의 에너지 소비와 연료 사용, 군사 활동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에 관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공개한 2017년 군사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바로 그런 사례다. 미국은 그해 차량의 연료 소비와 군사 시설의 에너지 소비만으로 5900만 톤의 탄소 배출을 기록했다. 물론 이것은 다른 여러 국가들의 총 배출량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하지만 '국제적 책임을 위한 과학자들'(SGR)에 따르면 일부 군수산업과 공급망까지 확대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정했을 때는 총 2억 8천만 톤이 추가되어 미국의 군사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약 3억 4천만 톤에 달한다. 군사 장비를 생산하는 군수산업과 이 산업에서 사용하는 원자재, 군사장비를 사용하는 전쟁 등을 고려하면 그 수치는 몇 배나 커진다.

2022년 SGR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군사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 추정치는 전체 배출량의 약 5.5%에 달한다. 국가로 친다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국가가 되는 셈이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처럼 탄소 배출 제품에 대한 규제가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 탄소 다배출 품목인 철강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자동차산업계는 탄소중립을 선언하며 탈탄소를 위한 계획을 내놓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 주로 사용하는 에너지원에 따라 친환경차 여부를 구분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차체와 부품이 철강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철강을 생산할 때 배출했던 탄소량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배출 없이 만든 녹색철강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군수산업은 철강을 대규모로 사용하면서도 녹색철강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대규모 인명 살상을 위해 만든 벙커버스터를 녹색철강으로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계 무기산업을 이끌고 있는 록히드마틴이나, 보잉, 라파엘, 한국의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과 같은 방산기업들에는 탄소 배출을 줄인 철강을 써야 할 유인이 없다.

군수산업은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을 지속적으로 소비해 줄 든든한 구매자인 것이다. 그리고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알려진 석탄 기반의 철강 생산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무력충돌은 끊이지 않고 무기 생산과 구매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 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 4400억 달러로 3000조 원이 훌쩍 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전년 대비 6.8%나 증가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지역 전쟁이 지속하고 있어 올해 군비는 또다시 최고치를 갈아치울지 모른다. 한국 4대 방산기업의 지난해 매출 역시 전년 대비 24% 넘게 증가했다. 그만큼 군사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군사 분야에서만 감축 요구하지 않는 이유
  건군 제76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열린 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숭례문 앞에서 K2전차들이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토록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군사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 문제는 국제사회의 통제 밖에 있다. 국제사회가 온갖 노력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고 있지만, 군사 분야에서만은 감축을 요구하지 않는다. 국제사회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국가들의 군사 분야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군비 규모를 압도하는 미국이 최대 무기 공급국의 위치에 있고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독일 등 5개 국가가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무기 수출량의 76%를 차지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SIPRI 2023 연감)

무엇보다 군사 분야 배출량에 대해서는 엄밀하게 파악된 적이 없다. 데이터가 있다고 해도 불확실성이 크고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다.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해서 보고하거나 공개할 의무도 없다. 국제사회가 입 모아 기후위기를 말하지만 정작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군사 분야에 대해서는 애써 눈 감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전쟁과 군비경쟁이 인류에게 얼마 남지 않은 탄소 배출 허용량(탄소 예산)을 써 버리고 있다.

결국 군사 분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길은 군비 축소일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총예산으로 12조 원을 배정하면서(나라살림연구소 2025 예산 분석) 국방예산으로 61.6조 원을 책정하는 방식으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천문학적인 재정을 군사 부문에 쏟아부어 더 많은 온실가스 배출을 초래하는 것과 에너지와 산업 전환에 쓰는 것 중에 무엇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것인지 지금보다 분명했던 때도 없었다. 전쟁과 군비경쟁이 아니라 서로 평화롭게 사는 길을 찾는 것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해법이 될 것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군사 분야를 더 이상 기후 위기 대응에서 예외로 둬서는 안 된다.
 박정은 /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 박정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박정은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2000년부터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평화군축, 국제연대 활동에서부터 정치개혁, 검찰개혁 활동, 사회정책 관련 연대 활동 등에 주력했습니다. 2018년부터 4년간 참여연대 사무처장직을 맡았고, 정치개혁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직을 수행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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