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넌 고려아연·영풍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참전으로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가문 갈등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영풍·MBK 연합과 고려아연 현 경영진 간 극한 대립에 노조, 지역사회, 정치권까지 가세해 불확실성이 증폭됐다. 경영권 분쟁의 최종 승자를 섣불리 예측하기 힘든 가운데 주요 주주인 현대차, LG, 한화 등 재계 그룹과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주주 대응에 향방이 갈릴 전망이다.
최소 1조원 자금 마련 회의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지난 9월 12일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 및 장형진 영풍 고문 측(약 33.1%)이 MBK에 ‘자기 지분 절반+1주’를 넘기기로 하면서 점화했다. 이어 9월 13일에는 MBK가 오는 10월 4일까지 고려아연 지분 최대 14.6%를 공개매수한다고 밝혀 최윤범 회장 측과 지분 대결을 본격화했다.
‘머니게임’ 시각에서는 최 회장 측이 불리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MBK와 영풍은 9월 13일부터 10월 4일까지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최소 144만5036주(6.98%)에서 최대 302만4881주(14.61%)까지 사들이는 공개매수를 진행한다. 공개매수 성공 땐 영풍과 MBK 측 지분은 최대 47.7%까지 늘어난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 등을 제외하면 지분율은 52%로 경영권 장악에 무리가 없다. 소요 자원은 최대 2조원에 달한다. 주가 등락에 따라 공개매수 가격이 오를 수 있지만 자금 동원에는 무리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로서는 섣불리 공개매수 성사 여부를 가늠하기 힘들다. 최근 고려아연 주가는 공개매수 가격을 소폭 웃도는 수준이다. 통상 세금 등을 고려한 주가가 매수 가격을 살짝 밑돌 때 공개매수 성공 가능성이 높다. 70만원이라는 주가에는 양측 간 대항 공개매수 기대감이 일정 수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 회장 측 선택지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공정거래법상 영풍과 고려아연이 여전히 특수관계자로 묶인 게 발목을 잡는다. 현재 고려아연 단일 최대주주는 ㈜영풍으로 자회사와 모회사로 엮여 있다. 이 탓에 공개매수 기간 동안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사들여 공개매수를 방해할 수는 없다. 영풍과 MBK 측은 고려아연 자사주 취득을 막으려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 낸다. 고려아연과 영풍 간 특수한 지배구조를 활용해 최 회장 손발을 사실상 묶어놓는 전략을 짠 것이다.
이와 별개로, 최 회장은 영풍 장 씨 측과 ‘특별관계자’를 해소하고 개인 차원에서 대항 공개매수를 타진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우호 세력 중심으로 PEF 컨소시엄을 꾸려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을 주목한다. 다만, 현재로선 판세를 180도 뒤집을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MBK가 영풍정밀 경영권을 확보하면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에 필요한 최소
지분율은 7.6%까지 늘어난다. 이는 최 회장 측 지분 15.9%에 현대차 등 대기업 지분이 백기사 역할을 자청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서다. MBK 측은 유통 주식 가운데 7%만 확보해도 지분 경쟁에서 승기를 굳힐 수 있다고 본다.
기간 산업 특수성 고려될 필요
하지만 사업 시너지와 제련 산업 특수성 등에 비춰 정당성(Legitimacy) 싸움에서는 최 회장 측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지역 정치권과 노조 등 여러 이해관계자 반발이 거세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난 9월 16일 성명 발표에 이어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모펀드의 주된 목표가 단기간 내 높은 수익률 달성이라는 걸 고려하면 인수 후 연구·개발 투자 축소, 해외 매각 등이 시도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소액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는 홈페이지에 “고려아연은 한국 상장사 2400개 중 지배구조와 주주환원율에서 가장 우수한 수준이다. (이번 일을) 동학개미가 회사(현 경영진)와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사례로 만들고 싶다”면서 공개 지지했다. 고려아연 노조도 “약탈적 공개매수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날을 세운다.
사업 시너지 측면에서 고려아연 우호 세력 동향을 예의 주시하는 시각도 있다. 최 회장 체제에서 고려아연은 사업 시너지 제고를 명분으로 여러 대기업 집단과 손을 잡았다. 니켈 안정적 확보(현대차), 신재생에너지와 수소 사업(한화), 2차전지 파트너십(LG화학) 등 사업적 시너지 제고가 지분 동맹의 목적이다.
특히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인 현대차와 한화 등에선 MBK와 ‘동거’가 불편할 것이라는 게 재계 대체적인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 같은 경우 엘리엇 같은 사모펀드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당한 적이 있는 데다 지배구조 개편도 지지부진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개매수로 재계 경영자를 몰아내고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MBK 측과 한 지붕 아래 동거하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고 촌평했다.
ESG 관점에서 잦은 환경 사고로 구설수에 오른 영풍 측을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다수다. 영풍은 석포제련소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로 대표이사 2명이 동시에 구속됐다.
사모펀드인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아연 공급망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산업계에서 제기된다. 통상 사모펀드 만기는 7년 안팎이다. 최근에는 7년 만기를 가정했을 때 3년 안에 원금 수준을 회수하고 이후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 선호된다. 이에 비춰, MBK가 경영권 확보 뒤 3년 뒤부턴 매각을 위한 사전 절차가 가시화하고 이 과정에서 아연 공급망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 있단 우려가 팽배하다. 재계와 산업계에선 비철금속 제련이 국가 기간 산업이라는 점에 비춰, 연간 42만t에 달하는 국내 아연 시장을 사실상 사모펀드가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려아연이 수소·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벌이는 호주 현지에서도 정·재계 우려가 높다. 외신에 따르면 호주 퀸즐랜드주 타운즈빌 기업협회는 “단기 수익을 좇는 사모펀드로 인해 사업 축소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MBK는 최근 두 차례 입장문을 내고 “각종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MBK에 경영권을 일임한 것”이라며 해외 매각 가능성을 일축했다.
고려아연 측은 “이번 공개매수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영풍 측을 상대로 배임 등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도 예고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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