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마세요'가 인사였던 추석, 병원 문 열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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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기자]
추석 명절 내내 아프면 안 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 추석 인사로 가장 흔하게 들었던 말은 '아프지 말자'였다. 의료 사태로 응급실 운영이 원활하지 않게 되어, 또 응급실 비용이 비싸져서, 아프면 당장 갈 곳이 없을 것 같다는 불안들이 컸다.
정부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본인부담금을 높게 부과하겠다고 겁을 주었지만, 시민들은 자신이 아플 때 중증인지 경증인지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으니 그저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일하는 우리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부천시 원미동 시장 골목에서 일차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은 지역주민들과 '아는 의사'를 표방하고 있고, 아플 때 믿고 만날 수 있는 주치의들이 있는 동네병원이다(나는 이 협동조합의 상근 전무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창립 멤버로 10년째 근무 중이다).
연휴 반납, '명절에 문 엽시다' 제안한 의사
▲ 부천시민의원 입구 부천시민의원 입구, '나를 아는 추지의가 있는 곳' |
ⓒ 이선주 |
일차의료기관인 우리는 응급시설이 없어 중증 환자를 볼 수는 없지만, 경증 응급환자에는 대처할 수 있다. 응급시설을 이용하는 환자의 7%만이 중증 응급환자라는 사실을 봤을 때, 일차의료기관에서 경증 환자를 볼 수만 있어도 응급실 과부하를 경감할 수 있다.
조 원장은 "의료대란으로 불안해하는 부천시민을 위해 미약하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진료를 하고자 한다. 부천시민의원에서는 단순 봉합을 포함한 발열, 복통, 타박상 등 경증 응급환자분들을 진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둘러 보건소를 통해 우리 병원이 추석 연휴 기간 정상 운영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지역신문에도 기사를 내고, 조합원들에는 문자를 미리 보내뒀다. 시민들이 응급시에 병원을 찾아올 수 있도록 등록해두기 위해서다. 추석 연휴 기간 진료를 보려면 의사 외에도 다른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 의료대란으로 인해 전국 응급실 운영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의료진 인력부족 관련 안내문이 띄워져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이달 9∼10일 협의회에 참여하는 전국 수련병원 중 53곳의 응급실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급실 의사가 42% 급감했으며 이에 따라 병원 7곳은 부분 폐쇄를 고려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2024.9.12 |
ⓒ 연합뉴스 |
3일 연휴, 조합원들 모두가 합심해 부천시민을 위한 우리만의 건강 안전망을 갖췄다.
첫날부터 걸려온 전화 '정말 문 여나요?'
추석 명절 기간 동안 어떤 환자들이 찾아왔을까?
연휴 첫날, 아침부터 병원에 병원이 연휴인데도 진짜로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3일 내내 오전 9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열었다.
연휴 3일 동안 하루 50명 정도, 약 150명이 찾아 다녀갔다.
어떤 환자는 목이 부어 올라 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2차 병원에서는 3차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하고, 3차 병원에서는 응급이 아니니 돌아가라고 했다며 우리 부천시민의원을 찾았다.
조규석 원장은 환자의 목 부분을 살핀 후, '응급'은 아니니 안심하고 추석 연휴가 끝나면 정밀 검사하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며 돌아갔다.
본인 스스로도 '심야 약국'을 운영하며 야간에 응급한 상황에 대처해 주는 일을 하고 있는 OO약국의 한 약사도, 추석 명절기간 우리 부천시민의원을 찾아왔다.
처음엔 단순 감기인 줄 알았는데, 몸이 너무 아파서 찾아왔다는 것. 검사를 해보니 코로나 감염이었다. 코로나 진단 검사, 수액, 처치 등을 받았다.
그는 추석 명절 이틀 동안 병원으로 찾아와 수액 처방을 받았고, 생각보다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따로 물어보니 그는 명절 기간 동안 부천시민의원이 문을 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팠을 때 걱정하지 않고 안심하며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급성 장염, 코로나 감염, 위장 장애, 고열, 감기, 상처 등 환자들이 찾아왔다. 중증 응급은 아니지만, 혼자서는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몸이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다수 병원을 찾았다. 이전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환자가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으로 찾는 것과는 양상이 많이 달랐다.
지역 면에서도 다른 점이 있었다. 평소에는 부천 내에 다양한 지역 곳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방문을 하는데, 이번 명절 기간에는 80% 가량이 부천 원미동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었다. 그 중 36%가 처음 방문한 환자, 22%가 오랜만에 방문한 환자였다.
150여 명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이 문 연 것을 고마워했다. 명절 소원인 '아프지 말자'가 통하지 않았으니, 몸과 마음이 더 많이 지치고 불안했을 터다. 믿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되고 고마웠던 것이다.
▲ 부천시민의원 의료진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진료를 보고 있다 |
ⓒ 이선주 |
그럴 때는 제 때에 필요한 처치를 받고 미리 예방하여, 중증의 질환으로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종합병원 중심의 의료체계, 의료 대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언제라도 믿고 갈 수 있는 '주치의'가 별로 없는 현재의 의료 환경 역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추석 연휴 동안 다행히 아프지 않아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플 때 찾아갈 곳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하고 든든했다는 시민들의 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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