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앞두고 하는 슬픈 고백...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김지영 2026. 5. 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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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게릴라칼럼] '정당'만 보고 뽑는 지방선거? 어떻게 바꿀 것인가

'6.3 지방선거 게릴라칼럼'은 시민기자가 쓰는 지방선거 관련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영 기자]

 지난 28일 오후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컨벤션홀에 마련될 사전투표소에서 용봉동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투표용지 출력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백하자면 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작된 1995년 이후 지금까지 광역, 기초단체장, 의원, 교육감을 동시에 선출하는 투표소에서 후보자 이름을 보고 투표한 기억이 없다.

투표 날, 매번 기표대 앞에 섰던 시간은 아마 1분도 안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진보정당 후보를 두고 대세와 양심 사이에서 조금 더 고민할 때도 몇 번은 있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기초의원 투표는 다르다. 후보자 이름보다 정당 기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호 1번 아니면 기호 2번 때론 3번까지. 그리고 망설임 없이 이어지는 도장찍기. 이른바 줄투표였다.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후보 한 명 한 명을 다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초의원 선거구에 후보가 네다섯 명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과 기록이 있는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유권자는 내가 아는 한 거의 없다. 말하자면 투표는 했지만 숙고된 선택은 없었다. 이 역설이 대한민국 지방선거의 오래된 현실이다.

후보보다 정당, 지방선거에선 유독 심하다
 지난 15일 오후 대구 서구 대구시선관위 건물 외벽에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투표를 독려하는 대형 홍보물이 눈길을 끌고 있다.
ⓒ 연합뉴스
유감스럽지만 (특정 지역의 경우) 지방의원 당선의 90%는 정당이 결정한다. 숫자가 이것을 증명한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2년) 광역의원 기준으로 국민의힘은 영남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권에서 각각 90% 이상의 의석을 독점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지방선거에서 매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해당 지역의 국민의힘 혹은 민주당 지지율인 60~70%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지지율과 의석수 간의 불일치가 표로 나타난다. 여당 강세 지역에서는 여당 후보가, 야당 강세 지역에서는 야당 후보가 거의 예외 없이 당선됐다. 후보 개인의 역량이나 도덕성은 이 90%의 방정식에서 변수가 되지 못한다.

기초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이 정당 기호만 보고 투표하는 이른바 줄투표 현상이 뚜렷하다. 같은 선거구에서 같은 정당 소속 후보라면, 이름도 얼굴도 다르지만 득표율이 비슷하게 묶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후보가 아니라 정당을 고르는 것이다.

제8회 지방선거 투표율은 50.9%였다. 둘 중 한 명만 투표한 셈이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이 구조는 더욱 공고해진다. 유동표가 줄어들고 조직을 가진 거대 양당 후보의 이점이 극대화된다. 결국 지방선거는 누가 더 좋은 후보인가보다 어느 정당의 바람이 더 센가로 결판난다.

특정 정당으로 고착화된 동서 지역은 늘 한결같은 방향이지만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사는 서울·경기 지역은 선거를 앞두고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 동쪽인지 서쪽인지가 판세를 가른다. 국회의원 선거보다 지방의회 선거가 그런 현상이 더 뚜렷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비중이 적고 후보 인지도가 낮은 지방의회 때문이다. 이른바 쏠림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방선거다.

여의도에 복속되는 지방의회, 조금은 달라졌을까?
 한 광역시의회 본회의 장면 (해당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또 유감스러워야 할 대목이 있다. 국민주권 시대라고 말하기 민망한 일이지만 기초의원의 고용주는 지역 주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90%의 방정식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후보를 결정하는 사람 즉 공천권자다. 그는 또 누구인가.

공직선거법 제47조는 정당에게 후보자 추천권을 부여한다. 문제는 이 권한이 실질적으로 어디에 집중되느냐다. 과거에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맡는 당원협의회 위원장 또는 지역위원장이 기초의원 공천의 생살여탈권을 사실상 쥐고 있는 구조나 다름 없었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있어도 위원들의 구성에 지역위원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구조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강선우 국회의원(무소속) 구속사태까지 부른 '공천헌금'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배경이다. 다들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돈을 주고 후보를 사는 구조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또 아니라지만 과거에 그랬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마 지금도 거대 양당에서 암암리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의구심이 민심의 밑자락에 깔려있다. 걸린 사람만 재수 없었다는 말이 회자되는 속세의 민심을 거대 정당 정치인들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의도에 복속되는 지방의회의 구조적 문제는 진작 사라져야 할 폐습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 지방의회의 주인 자리를 지역주민의 것으로 되돌릴 열쇠가 정치권력을 쥔 여의도에 있었다. 구태가 쉽게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민주당이 먼저 움직였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공천 규칙을 개정했다. 지난 2024년 말부터 '지방선거 제도개선 TF'를 통해 논의하고 확정한 이번 개정의 방향은 분명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자의적인 공천 영향력을 차단하고 당원과 유권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상향식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핵심 변화는 세 가지다.

민주당 공천 규칙 개정 3대 변화

① 현역 국회의원의 공천 기구 참여 사실상 배제
시도당위원장의 공천 과정 직접 개입 제한, 공천 과정 기록 보존 의무화

② 당원 투표 비중 확대 (상향식 공천 강화)
기초 비례대표: 상무위원 50% + 권리당원 50% 투표 반영
광역 비례대표: 권리당원 100% 투표로 진행

③ 부적격 기준 명문화 및 경선 감산 강화
부정부패·갑질·성희롱 등 전력자에 경선 10%~20% 감산 적용

의미 있는 변화다. 특히 현역 의원의 공천 기구 참여 배제와 기록 보존 의무화는 그동안 밀실 공천의 온상이었던 구조에 제동을 거는 조치다. 부패 및 범죄 전력자에 대한 경선 감산 규정도 강화됐다. 전과 혹은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후보가 아무런 제재 없이 공천받는 현실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제도와 운영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고 빈틈이 있다. 기록 보존이 의무화됐지만 기록을 읽고 검증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권리당원 투표 비중이 높아졌는데 당원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것이 지역위원장이라면 결과는 같아질 수도 있다. 제도는 바꿨지만 권력의 무게는 바뀌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50일 앞둔 지난 14일 전남 나주시 영산강체육공원에서 시민들이 기표 도장 마크 형상으로 조성된 유채꽃밭을 거닐며 봄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완전한 무공천제가 현실적이지 않다면 대안은 두 갈래다. 첫째는 민주당이 이번에 시도한 것처럼 공천 과정을 제도적으로 투명하게 만들어 완성하는 것. 둘째는 유권자가 기호 1번, 기호 2번이 아니라 이름을 보는 것. 이름에 딸린 그의 경력과 전문성 그리고 삶의 궤적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따져보는 것이다.

사실 정당공천제의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투명한 공천과정이 보장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후보자를 걸러내는 거름망 역할을 한다. 자질은 없는데 지역의 연고만 믿고 출마하는 토호세력의 의회 진출을 어느 정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이미 고착화된 거대 양당 구조를 당장 해체하기 어려운 정치 지형이다. 충분한 기간을 두고 권력을 분산하고 합리적 논의와 다양한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다당제로의 변화를 희망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현실은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현실적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번 6.3지방선거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민주당을 비롯한 각 당의 공천 규칙이 실제로 작동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가방보다 주민의 손을 먼저 잡는 사람이 공천을 받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기표대 앞에 서는 그 1분 남짓한 짧은 시간 이름 앞에 붙은 '기호'를 '스킵'하고 미리 기억해 둔 이름을 찾아 도장을 선명하게 찍을 수만 있다면 그 순간이 이번 선거의 '하이라이트'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당신이 후보들의 면면을 한 번쯤은 다 들여다보고 숙고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눈이 쏠리는 현상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굳이 덧붙이고 싶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시민의식의 성숙도와 함께 한다. 지금 우리 정치가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없이 그건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결과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 여의도보다 먼저 민주주의를 이끄는 건 부인할 수 없이 시민의식의 발로다. 제도가 완벽하지 않은 한, 유권자의 의식이 제도를 추동한다. 이는 한때는 피로 써야 했던 지난 민주주의 역사가 가르쳐 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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