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도 일시도 전부 미상"…아들 사망진단서 꺼낸 엄마 통곡
“너를 보낸 날, 그렇게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좋은 소식의 문자가 날아왔는데 너는 갈 수가 없구나, 너무 원통하고 안타까워 또 통곡을 하였구나.”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이태원 참사로 숨진 故(고) 이상은 씨의 아버지는 딸에게 쓴 편지를 꺼내 읽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가 우리 딸에게 썼던 편지다. 태워서 딸에게 부치려 했는데 태우지 못하게 해서 여기에 부쳐본다”고 말했다.
이씨를 비롯해 이태원 참사로 숨진 희생자의 유가족 28명이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들이 집단적으로 공개 의사 표현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지난달 29일) 24일만이다. 민변이 지난 8일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유족들의 집단 소송을 추진해 왔다. 현재까지 희생자 34명의 유가족이 민변에 법적 대리를 맡겼다.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공개하고 촬영을 허락했지만 본인의 실명을 공개하진 않았다.
사망진단서에 쓰인 ‘미상’과 ‘추정’에 가슴 찢어져
유가족이 민변과 정리해 이날 발표한 대정부 요구사항은 ▶진정한 사과 ▶성역 없이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 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과 책임 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과 인도적 조치 적극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등 6가지다. 오스트리아 국적자로, 어학당에 다니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다 숨진 故 김인홍 씨의 어머니는 “(사망)선언 시간이 달라서 외국인이기에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서류가 해결되는 데 6일이 걸렸는데도 사과 한 마디가 없었다”며 “이제는 정부의 사죄를 받아야 하는데, 아들의 장례식이 비엔나에서 28일에 있어서 가야만 한다”며 눈물을 쏟았다.
故 이남훈 씨의 어머니는 이씨의 사망진단서를 꺼내 “이것이 저희 아들의 사망진단서라고 한다. 사망일시도 추정, 이태원 거리 노상, 사인은 미상,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 어떻게 부모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사인도 시간도 장소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 자식을 떠나보내라 하냐”며 “어떤 순간 죽음에 이르렀는지, 누군가 도와주어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 병원 이송 도중 사망했는지,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유가족들 소통 기회 없어…위패 없는 분향소가 상처
한 유가족은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2차 가해라고 했다. 그 전에, 저의 동의 없이 위패 없고, 영정 사진 없는 분향소를 봤을 때, 저에겐 그 또한 2차 가해였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국가 애도기간 동안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神位(신위)’란 위패가 세워졌다. 정부 차원에서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 반발해 친야 성향 신생 인터넷 매체인 ‘민들레’는 지난 14일 희생자 158명 중 155명의 명단을 공개했지만 유족들 동의를 구한 적이 없어 반발에 직면했고 명단을 이내 내렸다. 故 이민아 씨의 아버지는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하게 만든 것도 결국 유족끼리 만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처음부터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유족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족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 까지 다양했다. 발언에 나선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영정을 들거나 휴대전화로 희생자의 생전 사진을 띄우고 발언에 나섰다. 희생자를 위한 묵념이 진행되는 순간 회견장 곳곳에서는 유가족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유가족 1명은 울다 실신해 기자회견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한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이날 최재원 용산구 보건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참사 당일 구조 현장 인근에 도착한 후 구청으로 돌아간 경위, 용산구 내부 문서에서 구조 지휘 시작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사유 등을 조사했다. 특수본은 최 보건소장의 사고 당일 행적을 토대로 사후 대처가 적절했는지 등을 따져 입건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최서인·이창훈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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