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규의 과학산책] 헤일메리

지난 주말, 뒷산에 올랐다. 산에 가면 온갖 새소리가 영혼을 편케 한다. 주변에 포식자가 없을 때 평화로이 지저귄다는 걸 깨달은 인간은 그 소리에서 평안을 찾게 됐다. 이따금 그 평온이 깨지기도 한다. 박새는 뱀이 나타나면 ‘직, 직’ 소릴 지르고 새끼들은 둥지에서 몸을 피한다. 그러다 부모가 ‘핏, 핏’ 소릴 내면 즉시 납작 엎드린다. 매가 떴다는 공습경보다. 새소리에는 문법이 있다. 그 규칙에 어긋난 신호를 들려주면 새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한 종(種)이 쓰는 의미 있는 음소의 조합(어휘)은 수십 개. 새의 언어에는 현재형뿐, 과거와 미래는 없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공짜로 보는 행운을 누렸다. 고맙게도 한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조건으로 시사회에 초대해서다. 영화 ‘마션’의 원작 소설을 쓴 앤디 위어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필자는 그 느낌을 가족과 나누려고 다시 극장에 갔다. 같은 장면에서 또 눈물이 흐른다. 극 중 외계 생명체로 나오는 ‘로키’는 눈이 없다. 박쥐처럼 음파를 쏴서 되돌아오는 소리로 주변 물체를 ‘스캔’한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오카리나와 클라리넷·혹등고래·새소리를 조합해 그 음성을 창조해 냈다. 로키는 기쁠 때 한 옥타브 높게, 기분이 별로면 낮은 소리를 낸다. 주인공은 로키의 발성기관이 울리는 음파로 수학과 물리 법칙을 하나씩 확인해 소통의 물꼬를 튼다.
둘이 주고받는 ‘레-미-도-낮은 도-솔’의 화음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들은 수백 개 어휘로 번역기를 만들어 소통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칠흑 같은 공간에 버려진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건다. ‘행성을 뛰어넘는’ 그 둘의 교감과 헌신에 마침내 관객의 마음은 허물어진다. 같은 종에, 또 같은 말을 쓰는 우리는 왜 이토록 각을 세우며 사는 걸까.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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