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서홍 기자]
▲ IU '관객이 될게' 챌린지 영상. |
ⓒ 귀한 녀자 귀녀 씨 |
예전에는 해당 가수와 친분이 있는 사람끼리 편하게 영상을 찍어서 올렸다면, 이제는 챌린지를 위해 애초부터 사측에서 출연진을 섭외하고 영상 콘셉트를 계획할 때도 있다.
이처럼 챌린지가 유행을 타면서, 일반인도 수없이 많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짧은 영상으로, 제작 시간이 길지 않고 트렌드까지 좇을 수 있으니 MZ세대가 즐기기 딱 좋은 문화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게 꼭 MZ세대만의 문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42년에 태어난 만 82세 귀녀씨, 내 하나뿐인 외할머니 귀녀씨도 '요즘 챌린지'에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1942년생 유튜버 귀녀씨 아시나요? 제 외할머니입니다 https://omn.kr/29frc ).
▲ 할머니의 60대 시절. 아마추어 댄스 대회에 출전한 모습이다. |
ⓒ 이서홍 |
한때는 아마추어 댄스 대회에 나가 메달과 상장을 휩쓴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이따금 보자기에 고이 보관해 놓은 당신의 금메달을 보여주곤 하셨다.
예순 언저리쯤 시작해, 어느덧 팔십 줄로 접어든 나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할머니는 꾸준히 몸을 움직이며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도 많았다. 나이가 드니 서서히 관절이 망가져 70대 중반에 척추협착증을 진단받았다. 할머니는 그때를 회상하며 몸을 못 쓰게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자고 났는데 일어나지를 못 하겠는 거야. 그래서 삼촌(나에겐 외삼촌, 귀녀씨에겐 장남)이랑 급하게 병원에 갔지. 갔더니 척추협착증에 디스크까지 말썽이라서 수술도 못 한다고 그러데."
할머니는 그날 이후로 치료에 전념했다. 수술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기에 꾸준히 물리치료라도 받아야 했다. 지인에게 물어 효과를 봤다는 병원에 찾아가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꾸준히 복용하며 어떻게든 일상을 이어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한 덕에 다행히 증상은 호전되었다. 여전히 다소 움직이기 불편한 부분이 남아있지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무릎이 고장 나버렸다. 5년 전, 할머니는 협착증 증세가 조금씩 나아갈 때쯤 무릎 관절 이상으로 결국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휴, 그때도 얼마나 걱정이었는지 몰라. 인공관절 수술하면 걷기 힘들다는 말도 있었고. 복지관 다니면서 춤추는 게 낙인데 그것마저 못 하면 어쩌나 싶었지."
▲ AKMU(악뮤) 'Love Lee' 챌린지 영상. |
ⓒ 귀한 녀자 귀녀 씨 |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봐 온 나는 작년 5월, 할머니에게 요즘 챌린지 문화를 가르쳐 드렸다. 할머니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춤을 한번 춰보자고 이야기했다.
당시 블랙핑크 지수의 '꽃' 챌린지가 유행이었다. 난도도 높지 않아서, 즉 너무 어렵지도 않았기에 할머니가 도전하기에는 딱 좋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망설였다.
"젊은 사람들 춤을 내가 괜히 망쳐놓는 거 아니냐? 나는 이런 (스포츠, 라인)댄스나 할 줄 알지. 요즘 춤은 모르는데."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눈은 어느새 내가 틀어놓은 챌린지 영상에 가 있는 할머니의 모습. 그걸 보면서 나는 내가 용기가 되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할머니, 누가 뭐라고 하겠어? 이렇게 춤추는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하다고 할걸? 그리고 할머니는 원래 춤을 잘 추시잖아. 이것도 할 수 있지!"
▲ QWER '고민중독' 챌린지 영상. |
ⓒ 귀한 녀자 귀녀 씨 |
그렇게 할머니는 "까짓것!"을 외치며 요즘 챌린지에 첫발을 내디뎠고, 지금까지도 종종 챌린지 영상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있다(채널 바로가기).
▲ 유튜브 <귀한 녀자 귀녀 씨> 채널에 처음 업로드된 영상(23년 3월) |
ⓒ 유튜브 <귀한 녀자 귀녀 씨> |
할머니를 보며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많이 두려울 것 같다. 소위 '젊음이 무기'라고들 하는 지금, 20대 초반인 내 경우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으니까. 도전은 늘 불안하고 불편한 존재이다.
"할머니, 할머니는 살면서 두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극복했어요? 유튜브 시작할 때도 걱정이 많으셨잖아."
할머니는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살짝 눈물을 보였다.
"많지. 왜 없겠어. 근데 그때는 다 그런 줄 알고 살았어. 지금은 나이가 드니까 조금씩 알 것 같네, 시대가 변했다는 것도 느끼고. 이제는 그냥 당당하게 살고 싶어. 젊은 사람들도 자신 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힘든 일은 '에라이, 이게 내 팔자다!' 생각하고.(웃음)"
그래서 요즘 나는 더욱 할머니를 닮아가고 싶다. '노년의 댄서'가 되어도 굴하지 않는 귀녀씨의 저 호쾌함을, 져버린 꽃은 까짓것 다시 피우면 된다는 저 희망참을 꼭 배워서 나도 멋지게 아름답게, 그렇게 나이 들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이던 저는 올해 휴학을 결정했습니다. 할머니와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저는 유튜브 <귀한 녀자 귀녀 씨> 채널의 PD이자, 1호팬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