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요양원에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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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경 기자]
나는 경기권 한 지역에 올해 문을 연 요양원에서 시설장을 맡고 있다. 그렇게 지난 6개월 가량 시설장으로 있다 보니, 이전에 몰랐던 현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요양원에 처음 입소할 때는, 부양 가족들이 먼저 문의를 해 상담을 한 뒤에 모시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르신 스스로 입소를 하고 싶다며 먼저 찾아와서 상담을 청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 놀라게 된다.
▲ 집에 가끔 들르는 가족원의 폭력, 혼자 지내기 어려운 일상 등으로 인해 요양원에 오고 싶다는 어르신이 있었다(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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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상담을 하며 지켜보니, 어르신은 체격에 비해 마른 편이셨고 걸음걸이도 조금 느릿느릿 힘겹게 걷고 계셨다.
사정은 이랬다. 현재 혼자 살고 있는데 당뇨도 심하고 암 수술, 디스크 수술 등으로 몸이 약해진 상태라 도저히 혼자 지내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주변 보건소에서도 종종 이 분 집에 방문해서 건강을 체크해 주는데, 기초수급자이니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후에는 요양원에 무료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끔 들르는 가족원이 이 분께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장기요양 등급이 나올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제도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등급 신청을 도와드렸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 등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을 제공하는 국가 제도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장기요양보험 가입자가 되기에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은 장기요양보험 가입자에 해당하지만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신청을 해야 한다. 신청 이후 심사에도 몇 주에서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없어 집을 나왔다고 하는 어르신의 경우, 장기요양등급 심사를 받는 동안 우선 지역의 노인 보호시설로 연결해드리기도 했다.
또 다른 어르신 한 분도 가족들이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데, 당신이 혼자 살림을 할 힘은 없다며 스스로 찾아오셨다.
이런 분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가족이 있다고 해도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가까이 사는 가족이 있어도 사이가 나빠 돌봐주지 않으면 혼자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 가까이 사는 가족이 있어도 사이가 나빠 돌봐주지 않으면 혼자인 것이나 마찬가지다.(자료사진) |
ⓒ pixabay |
스스로 요양원을 찾아오는 어르신들의 공통점은 혼자 지내고 있고,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으며, 혼자 일상생활을 해 나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주로 남자 어르신들은 빨래와 요리 등 집안일을 제대로 할 줄 몰라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자 어르신들은 치매나 노인성 질환으로 혼자 집안일을 하기 곤란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여자 어르신은 왕래하는 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데, 근육이 점점 위축되는 질환이 생겨 일상생활이 힘들다며 요양원에 상담을 청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어떻게든 생활을 했지만 병이 진행되며 온 몸의 근육이 굳어가고 있다고 했다.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요양원을 찾은 것이다. 이렇듯 어르신들 혼자 어떻게 버텨오신 것인지, 대단하면서도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
여기엔 아마, 24시간 내내 도움을 받을 만한 재가 서비스가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 가족 간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집에 머물기 어려운 사연들도 많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어르신들은 장기요양보험 제도 자체를 잘 몰라서 도움을 받고 싶어도 어디에 도움을 청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한편, 상담을 온 분들에게 제대로 도움을 드리기 어려울 때도 있다. 보통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65세 이상 노인, 혹은 65세 이하여도 노인성 질환이 있는 경우이다.
그런데 장기요양등급 판정 결과 적정한 등급을 받지 못하면 요양원에는 입소할 수가 없다. 일례로 혼자 사는 어르신이 수술 후 허약해져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이 없어 공단의 등급 심사에서 탈락한 적도 있다.
▲ 노인들 뒷모습(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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