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여빈이 돌아왔다. 이번엔 삶의 끝자락에 선 배우 ‘이다음’으로. 6월 13일 첫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우리영화>에서 전여빈은 인생 마지막 순간에 처음으로 주연 자리를 맡게 된 배우 ‘이다음’ 역을 맡아, 전작들과는 또 다른 결의 멜로 감성을 선보인다. 상처를 품은 영화감독 ‘이제하’(남궁민)와 함께 마지막 영화를 준비하며, 잔잔하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담길 예정. 데뷔작 이후 5년간의 공백을 지닌 감독과, 생의 끝자락에서 처음 주연이 된 배우. 두 사람이 스크린 안에서, 그리고 현실 안에서 완성해 가는 <우리영화>는 전여빈이라는 배우가 가진 깊은 감정선과 내면의 진폭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드라마 속 ‘이다음’처럼,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서사로 빛나는 배우 전여빈의 이모저모를 지금부터 따라가 본다.
의사를 꿈꾸던 소녀


전여빈의 첫 번째 꿈은 배우가 아니라 의사였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줄곧 반장을 맡고,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강릉의 비평준 고등학교 진학 후 입시에 실패하면서 깊은 좌절을 겪는다. 그 시기 그녀에게 위로가 되어준 것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여러 시집들이었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배우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처음부터 연기를 꿈꾼 것은 아니었고, 영화라는 예술의 한 구성원이 되고 싶었다. 이를 본 어머니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서울 연기학원을 보내줬고, 단 한 달 다닌 뒤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에 합격했다. 그 이후 전여빈은 대학로 연극 스태프, 영화제 조연출, 무용·음악·문예 수업까지 섭렵하며 ‘연기’라는 자신의 진짜 꿈을 붙잡게 된다.


전여빈은 그후 ‘배우로 서고 말하고 움직이고 싶다’는 갈망이 더 커져가던 어느 날, 친오빠(전윤영/사진작가)가 찍어준 프로필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을 영화 관계자가 보고 오디션 제의를 받아 배우로 데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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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경연대회 대상 출신

전여빈에게는 꽤 독특한 수상 경력이 있다. 대학 시절 참가한 ‘강릉사투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 그 시작은 어머니의 바람 때문이었다. 몇 달째 김치냉장고 이야기를 하시던 어머니를 위해, 대회 상품이 김치냉장고라는 이야기를 들은 전여빈은 과감히 출전했고, 결국 대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상품은 김치냉장고가 아닌 노트북이었다. 운영 측의 “교환 불가” 방침에 어머니는 대상까지 받았는데 김치냉장고를 못 탔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고.


해당 일화는 MBC <놀면 뭐하니?>에서도 소개되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전여빈은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실기 시험에서도 유창한 강릉사투리를 선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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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과 배우 문소리와의 인연

전여빈은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 기회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장진 감독을 만나고 싶어 연극 <서툰 사람들>에 스태프로 들어갔지만 실제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자마자 직접 장진 감독의 기획사 문을 두드렸다. “공연 한 번 안 오셨더라”는 그녀의 당돌한 한마디는 장진의 기억에 남았고, 전여빈은 장진 감독의 TV영화 <바라던 바다>(2015)에 캐스팅된다.


문소리와의 인연도 영화제 홍보영상에서 비롯됐다. 전여빈의 얼굴에서 ‘촌스러움과 세련됨’이 공존하는 매력을 발견한 문소리는 직접 전화를 걸어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2017)의 단편 <최고의 감독>에 캐스팅했다. 문소리는 “감독 말을 잘 알아듣고,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에 연연하지 않는 배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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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스타에서 괴물 신인으로 발돋움


<우리 손자 베스트>(2016)에서 투잡 뛰는 알바생, <여자들>(2017)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연,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에서는 수영장 친구 자영. 이름도 낯선 영화 속 캐릭터들로 차곡차곡 필모를 쌓던 전여빈은 마침내 <죄 많은 소녀>(2018)에서 ‘괴물 신인’이라는 수식어를 얻는다. 친구의 실종 사건 중심에 서서 의심받는 인물 ‘영희’를 연기한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거짓 없이 감정을 응축하려 했다”는 말처럼, 전여빈의 연기는 결코 과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진심을 담았다. 겨울바람보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영희’를 통해, 전여빈은 관객의 심장을 조용히 조여왔다. <죄 많은 소녀>는 그에게 터닝포인트였고, 전여빈이라는 이름이 제대로 새겨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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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빈이 가진 천의 얼굴


전여빈의 얼굴은 도화지 같다. 무쌍의 커다란 눈, 도톰한 입술, 오목조목 조화로운 이목구비. 무표정일 땐 단아하고 고요하지만, 메이크업이나 각도에 따라 시크하거나 우아하게 변신한다. 그래서 화보에서는 전업 모델 같은 고급스러움을, 광고에서는 친근한 이웃 느낌을, 영화에선 처연한 슬픔을, 드라마에선 유쾌한 에너지를 보여준다.

작품마다 분위기가 달라 ‘진짜 얼굴이 뭐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 전여빈 역시 “많은 캐릭터를 담아내기에 좋은 얼굴 같다”고 말한다. 대중에게 다양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분명 큰 자산이다. 전여빈은 그 자산을 가장 영민하게 활용하는 배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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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그마’ 청룡영화상 수상소감 화제


드라마 <빈센조>(2021)로 대중성과 영화 <낙원의 밤>(2021)으로 장르성을 입증한 전여빈은 2023년 <거미집>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더 화제가 된 건 트로피보다 그의 수상소감이었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즉 ‘중꺾그마’라는 신조어처럼, 꺾여도 괜찮다는 믿음의 메시지를 담았다. “너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지”라는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하며, 그는 ‘스스로를 믿는 것’의 소중함을 전했다. 응원은 늘 남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깨달음. 그 소감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고, 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무대 위에서 말한 그의 진심은 단순한 수상 소감이 아닌, 이 시대 청춘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편지였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