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으로 시작해 흑백 두 자루의 화살로 이어지다, 허스크바나 필렌 시리즈
누구든 자신만의 무기를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무기가 신체적인 것일 수도 있고, 능력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무기가 있는 반면, 후천적으로 갈고 닦아 자신만의 주무기로 만들어내는 것도 있다. 오늘 소개할 무기는 먼 옛날 만들어졌지만 잠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현대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바로 허스크바나의 화살, 필렌 시리즈다.
‘필렌(pilen)’은 스웨덴어로 화살을 의미한다. 총구 모양을 로고로 삼은 브랜드다운 작명이기도 하고, 스피드를 추구하는 모터사이클의 특징과도 잘 어울린다. 필렌 시리즈의 시작은 195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많은 브랜드들이 그러하듯 허스크바나 역시 제품의 성능을 대중들에게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모터사이클 레이스에 참여한다. 최근에야 다양한 온로드 모델들을 선보이고 있어 어색할 것이 없지만, 불과 10~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허스크바나는 모토크로스나 엔듀로 모델, 혹은 이를 기반으로 한 슈퍼모토 정도가 라인업의 전부여서 허스크바나와 레이스를 연관짓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모델은 온로드 모터사이클과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사이에 형태적 차이가 크지 않았던 만큼 로드 레이스 그랑프리에서 활약해온 허스크바나가 새롭게 떠오르는 모토크로스에 참가하기 위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허스크바나는 단기통 엔진에 대대적인 경량화로 무게가 고작 75kg밖에 나가지 않는 모터사이클을 만들어 거기에 ‘은화살(silverpilen)’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가벼운 무게와 함께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텔레스코픽 포크, 유압식 서스펜션 등 당시로는 혁신적인 장비들을 더했고, 그 결과 모토크로스 챔피언십을 연이어 휩쓸고 이후 각종 엔듀로 경기에서도 1위를 이어가며 승승장구했다.
물론 허스크바나가 계속 높은 인기를 이어갔다면 좋겠지만, 시장 상황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여기에 20세기 말부터 최근까지 여러 브랜드로 팔려가길 반복하다 지난 2013년 KTM을 보유한 피에르 모빌리티 그룹에서 브랜드를 인수하고서야 겨우 상황이 나아졌다. 여기에 한정된 마니아층을을 위한 오프로드용 제품만으로는 회사의 수익을 내기 어려워 새로운 먹거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고민 끝에 허스크바나는 오프로드보다 훨씬 큰 시장의 온로드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응하는 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역사적인 모델인 실버필렌을 21세기에 부활시키기로 했다. 오프로드가 아닌 온로드에서, 화살같이 빠르면서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 모터사이클에 필렌의 이름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허스크바나는 2014년 밀라노 모터사이클쇼 현장에 401 비트필렌과 401 스바르트필렌 프로토타입을 선보이며 역사적 모델에 대한 경의를 표했으며, 이듬해에는 701 비트필렌 프로토타입을 연이어 공개하며 본격적인 필렌 시리즈의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결국 2016년부터 비트필렌 401과 스바르트필렌 401의 본격적인 양산을 시작했고, 비트필렌 701도 2017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허스크바나의 필렌 시리즈는 부활을 알린 401부터 모터사이클 입문자를 위한 125, 701에서 업그레이드된 801, 인도 시장을 위한 250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다.
프리미엄 엔트리, 스바르트필렌 125
배기량 순서대로 살펴보자면 먼저 스바르트필렌 125가 있다. 모터사이클에 처음 입문한 라이더들을 위한 모델로, 배기량은 낮아도 특유의 개성있는 스타일에 각종 고사양 장비들을 더해 안전하면서도 다루기 쉬운 모델로 다듬어냈다. 엔진은 125cc 수랭 단기통으로, 최고출력은 14.95마력으로 151kg의 가벼운 무게와 어우러져 경쾌한 주행을 보여주고, 도심에서의 저속 운행에서도 부담없이 다룰 수 있다. 또한 초심자들은 클러치 조작이 익숙하지 않은데, 이지 시프트 기능을 더해 기어 레버 작동 시 순간적으로 출력을 제한해 클러치 레버 조작 없이도 변속이 가능하게 했다.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기 위해 스틸 트렐리스 프레임에 WP APEX 오픈 카트리지 포크와 조절식 쇼크 업소버를 채택했고, 앞뒤 브레이크는 앞 320mm, 뒤 240mm 디스크에 바이브레 캘리퍼를 조합했으며, 보쉬 코너링 ABS로 안전성을 더욱 끌어올렸다. 앞뒤 휠은 모두 17인치 스포크 타입으로, 피렐리 스콜피온 랠리 STR 타이어를 기본 사양으로 채택해 다양한 노면에서도 우수한 접지력을 제공하도록 했다.
계기판 자리에는 5인치 TFT 디스플레이가 주행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차량 설정과 관련해서는 좌측 핸들바의 스위치 큐브로 조작 가능하다. 또한 스마트폰 연동 기능이 제공되어 블루투스로 연결해 전화 수신이나 음악 재생이 가능하다. 헤드라이트는 원형에 바깥쪽으로 링 타입의 주간주행등이 더해졌으며, 모두 LED가 적용되어 높은 광량으로 야간에도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한다.
도심부터 와인딩까지, 스바르트필렌/비트필렌 401
국내에선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하면 다음을 고민해야 하는데, 여기서 비트필렌 401과 스바르트필렌 401 중 선택지가 나뉜다. 사실 외관상에서의 차이일 뿐 세부 구성 요소들의 기능이나 사양은 완전히 동일하므로 오로지 개인의 취향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수랭 단기통 398.6cc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44.8마력을 내기 때문에 시내에서는 물론이고 한적한 교외에서의 라이딩이나 코너가 이어지는 와인딩 공략에서도 충분한 성능을 제공한다. 125와 마찬가지로 이지 시프트 기능이 제공되는데, 401을 탈 정도의 실력이라면 클러치 조작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보단 빠른 변속을 통한 끊김없는 가속이 더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또한 결코 적지 않은 성능인 만큼 환경에 따라 출력 특성을 달리 할 수 있도록 스트리트와 레인 2개의 주행모드가 함께 제공된다.
차체는 스틸 트렐리스 프레임에 WP 서스펜션 조합으로 125 못지 않은 민첩한 운동성을 경험할 수 있으며,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디스크에 바이브레 캘리퍼와 보쉬 코너링 ABS를 더했다. 여기에 모터사이클 경험이 많아 제어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뒤 ABS만 해제해 뒷바퀴를 미끄러트릴 수 있는 슈퍼모토 모드도 제공한다. 물론 슈퍼모토 모드에서는 기본 제공되는 트랙션 컨트롤(MTC) 기능이 함께 차단된다. 편의장비로는 LED 헤드라이트와 주간주행등, 5인치 TFT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연결기능, 도난방지를 위한 이모빌라이저 등이 있다.
서킷도 문제없다, 스바르트필렌 801
401로 충분히 실력을 쌓았다면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될텐데, 허스크바나는 다음 스텝까지 마련되어 있다. 과거에는 701 시리즈의 제품으로 미들급 시장의 진입을 도왔는데, 지난해 업그레이드된 스바르트필렌 801이 발표되며 업그레이드된 성능을 경험할 수 있게 됐고, 이 모델이 올해 선보인다.
미들급 네이키드인 만큼 무게가 상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겠지만, 허스크바나는 브랜드의 방향성을 고수하며 800cc 네이키드의 무게를 181kg으로 낮췄다. 프레임 소재에 크롬-몰리브덴을 사용해 유연성과 강성 사이 밸런스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동시에 무게까지 덜어내며 민첩하고 경쾌한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었다.
파워트레인은 앞선 모델과 달리 단기통에서 2기통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최고출력 105마력, 최대토크 87Nm의 성능을 낸다. 앞서 차량 전체 무게가 181kg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52kg밖에 나가지 않는 엔진의 무게도 한 몫 했다. 여기에 다운시프트 시 백토크를 감소시켜 차량 안정성을 높이는 PASC(Power Assist Slipper Clutch) 시스템과 클러치 조작 없이 변속 가능한 이지 시프트까지 더해져 와인딩이나 서킷에서의 적극적인 코너 공략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출력 특성을 바꾸는 주행모드는 스포츠와 스트리트, 레인 3단계로 제공하며, 개별 설정도 가능해 취향에 따라 엔진 스로틀 반응이나 트랙션 컨트롤 등을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다.
서스펜션은 앞뒤 모두 WP 제품으로, 모두 조절식이 적용되어 주행 환경이나 운전자 개인에 맞춰 감쇠력 변경이 가능하다. 브레이크는 앞 더블 디스크와 J.후안제 4피스톤 캘리퍼, 뒤 싱글 디스크와 1피스톤 캘리퍼 조합으로 높은 제동력을 제공한다. 안전을 위해 트랙션 컨트롤, 코너링 ABS, 윌리 컨트롤이 더해진 모터 슬립 레귤레이션(MSR) 등의 기능을 더해 주행을 보조한다. 계기판은 5인치 TFT 디스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선명한 화질로 제공하고, 스마트폰을 연동해 전화 수신, 음악 재생 등이 가능하다.
모터사이클 초심자부터 쿼터급, 미들급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의 특성이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제공하고 있는 허스크바나. 개성있는 디자인과 프리미엄 파츠들로 무장한 제품들을 통해 국내 시장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신제품까지 가세한 덕분에 앞으로의 전망이 더욱 밝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