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올린다고 중국 전기차 막을 수 있나 [기자수첩-산업IT]
미국·EU 등 관세장벽 높이지만… 막을 수 있나
값 싼 보급전기차 넘어 '살아남을 방법' 찾아야
"내연기관차 만들 때는 콧방귀 뀌며 무시했던 애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니 발악하는 겁니다. 이제 방법이 없다고 봐야죠."
퇴근 후 가벼운 저녁 자리에서 만난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에 으르렁대는 미국, 유럽 등 주요국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미 전기차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갔고,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말이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중국의 전기차 산업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고, 지금도 고속 성장은 진행형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중국 전기차 산업의 글로벌 확장과 시사점'에 따르면 중국 브랜드들은 올 상반기 자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에서만 41만9946대의 전기차를 팔아 치웠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속에서도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3.9% 증가한 규모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 아래 스타트업부터, 배터리를 만들던 회사까지 모두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며 고속 성장의 주역이 됐다.
큰 땅덩이에 사는 바글바글한 인구는 곧 소비자가 됐고, 원자재를 싼 가격에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값싼 인건비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도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싼 배터리 가격에 허덕이는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를 비웃고, 싼 값에 전기차를 공급하며 순식간에 덩치를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전기차 가격 경쟁력부터 원자재 및 배터리 수급까지 중국이 꽉 쥐고 있으니 자동차 산업으로 오랜기간 로얄층에서 군림해온 미국, 유럽은 고까울 수 밖에 없다. 공부 못 하던 친구가 갑자기 전교 1등에 이름을 올린다면 커닝을 한 건 아닌지, 시험지가 유출된 건 아닌지 온갖 의구심을 품지 않겠는가.
미국은 오는 27일부터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00%까지 대폭 올리기로 했고, EU(유럽연합)도 48%까지 관세를 높이는 방안을 오는 25일 회원국들을 상대로 투표에 부친다. 캐나다도 관세 100%를 예고한 상황이다. 어떻게든 중국에 전기차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높은 관세 장벽이 과연 중국산 전기차의 침투를 막는 묘안이 될 수 있을까. 관세를 높이면 당장 꼬리를 내리면서 중국 내에서만 전기차를 팔겠다고 선언이라도 할까. 중국의 글로벌 진출은 막으면서 값싼 노동력과 원자재 수급을 위해 중국에 지은 수많은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의 공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 자동차 산업을 취재해온 입장에서도 한 수 아래로 보던 중국 전기차의 갑작스런 고성장이 마뜩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이 효과적인 견제 수단이라는 주장에는 찬성하기 힘들다.
어차피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없는 상대라면 배척하고 내리쳐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자로 인정하고 실력으로 누를 대비책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 중국을 배척한다고 해서 미국이 전기차 왕좌에 앉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과 유럽의 무분별한 관세 인상 대책은 자칫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다.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주의는 '우리 편끼리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쉽게 줄일 수 없는 만큼 미국, 유럽에서의 관세 부과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묘수는 결국 미래 먹거리를 통한 철저한 대비가 될 것이다. 중국을 막을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중국과의 싸움에서 이길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최근 현대차와 GM, BMW와 토요타 등 완성차 브랜드간의 전례없는 합종연횡도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위기감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중국산 전기차는 지난해 대비 6배 이상 증가한 약 1만 9000대가 판매됐다. 전기버스 시장에선 이미 국산과 점유율이 비등해질 정도로 침투했고, 조만간 중국 승용차 브랜드도 한국에 발을 들인다.
당장은 '메이드 인 차이나'를 불신하고 배척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성향이 내수 시장을 지켜낼 안전판처럼 여겨지겠지만, 중국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판매 실적을 쌓고 평판을 높여 나가다 보면 국내 업체들도 그들과 정면대결을 펼쳐야 할 날이 올 수 있다. 국적을 떼고 한 판 붙어도 이길 수 있는 '한 방'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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