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사의 추적, 여성 질병 진단은 왜 지체되고 오진되나

윤일희 2026. 4. 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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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엘리자베스 코멘, 2026, 생각의 힘) 서평

[윤일희 기자]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 표지
ⓒ 생각의힘
지난 3월 12일 발표된 다보스포럼 보고서는 "여성은 남성보다 700가지 넘는 질병에서 평균 4년이나 늦게 진단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는 다보스포럼 연구진이 20년간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밝혀낸 결과다. 지체된 진단은 질병에서 회복될 시간에 영향을 미치고 치료비를 증가시킴으로써 결국 여성의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때마침 출간된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의 배신>은 왜 이런 격차가 생기는지 상세히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을 쓴 엘리자베스 코멘은 유방학 분야 종양 내과 전문의로 수많은 임상에 참여하며 여성 몸에 대한 의학의 편견이나 무지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의도된 의학적 무지는 의학의 시작이랄 수 있는 BC 5세기 히포크라테스 시절로 소급된다.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저서에 자궁이 돌아다니며 여성의 갖은 질병을 유발한다는 '히스테리증'을 기록했다.

이렇게 비과학적으로 주술화된 믿음은 중세를 거치며 산파나 약제술을 가진 수만 명의 여성들에게 주술을 부리는 마녀라는 혐의를 씌워 화형에 처하게 만들었다. 사악한 믿음은 검증되지 않은 채 유지되다, 1700년대에는 여성의 성적 욕망과 연관시킨 '히스테리'로 변주돼 여성 질병의 오진을 고착화했다. 여성의 자궁에 대한 유구한 집착은 "여성에게 뭔가 이상이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히스테리라 결론을 내렸고, 실제로 그런 진단이 횡행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러한 오진은 더욱 심각해져 학교 교육이 여성의 '히스테리'를 유발한다며 '안정 요법'을 강요하거나 불필요한 약물을 강제하며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악용되었다. 의학적 태만과 부정의가 이러했으니 여성의 몸과 질병에 대한 의학계 내 만연한 게으른 연구는 수많은 오진이라는 치명적 결과를 만들어왔다. 다보스포럼의 보고서가 밝히듯, 여성이 제대로 된 진단을 받는데 남성보다 4년이나 지체되게 한 것이다.

저자는 여성의 몸에 대한 전반적이면서도 세세한 고찰을 통해 여성 질병이 오진되어온 의학적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톺아본다. 피부, 뼈, 근육, 혈액, 호흡계, 소화기계, 비뇨기계, 면역계, 신경계, 내분비계, 생식계까지 망라해 다루면서, 여성의 몸과 질병에 대해 축적된 연구나 지식이 부재하다 보니 오진이나 지체된 진단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밝힌다. 그는 심장 질환을 오진이 누적됨으로써 진단이 지체된 대표적인 경우로 지적한다.

심장 관련 질환이 여성에게 생기지 않는다는 황당한 편견은 불안증이나 히스테리로 오진되어 심장 관련 치료나 약물 처방을 받지 못하게 해 결국, "너무 많은 여성이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여성의 관상동맥 질환은 작은 혈관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혈관 조영술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정상 남성을 기준으로 하는 심전도는 여성의 월경주기와 상관있는 부정맥을 잡아내지 못함으로써 임신 중이나 월경 전 사망 위험을 높인다. 여성 3분의 1이 심장 질환이 있고, 5명 중 1명이 심장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는데도, 여성의 심장 질환 진단과 치료는 여전히 여성 환자를 배제하고 있다.

심장처럼 오진되는 또 다른 대표적 질환은 호흡기 질병이다. 여성의 호흡기 질병은 오래도록 의학적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여성 스스로 관리할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1980년대 이후 여성의 호흡기 관련 질병 발병률이 84%나 급증했고, 여성의 폐암사는 유방암이나 자궁, 난소암을 앞지르고 있다. 여성 10명 중 1명이 천식을 앓고 있으며 여성의 천식 사망률이 남성보다 높다. 이러한 증후는 노동 환경을 살펴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청소 노동 시 빈번히 사용되는 화학 약품이나 조리 노동 시 발생하는 조리흄 등은 여성의 폐 관련 질환을 급증시킨다. 지난해 학교 급식 노동자의 '폐암 산재 사망'이 처음으로 인정되었는데, 이를 인정받기 위해 오랜 시간 싸워야 했다.

여성의 비뇨기 질환은 어떨까. 여성이 비뇨기과 진료를 받는다는 경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비가시화된 의료적 영역이다보니 치료나 예방이 어렵다. 여성은 출산을 겪으며 요실금에 노출될 가능성이 현저한데도(여성의 25%가 요실금을 겪고 있다) 의학적 논의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디어 등을 통해 광고되는 요실금 속옷이나 기저귀는 이것만 착용하면 마치 요실금에서 해방될 것처럼 전시하지만, 이는 치료가 아니라 매우 불편한 생활을 감수한 채 참고 살라는 강요에 다름 아니다. 이는 여성의 요실금이 자본의 대상이 될지언정 의료의 대상으로는 다루어지지 않는 젠더 차별의 반증인 셈이다.

의료 젠더 차별은 코로나를 겪으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여성의 월경이 불규칙하거나 월경의 양이 급증했다는 증상이 호소되자, 코로나 역병을 틈탄 '음모론자'나 '거짓말'이라는 백래시가 일제히 일었다. 완경한 나나 내 지인 중 상당수도 백신 접종 후 갑작스러운 출혈을 겪었는데, 이는 2022년 넘어서야 접종의 후유증인 '돌발 출혈'로 인정되었다. 면역계 질환이 남성을 기준 삼아와 여성이 그저 나머지나 변수에 지나지 않게 다루어져 드러난 차별의 결과인 것이다. 2019년 HIV 임상 시험에서 여성은 의도적으로 제외되었고, 여성의 자가면역질환은 남성보다 80%나 높지만, 의료계는 아직도 호르몬 탓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러한 차별에 대해 면역학이 여성을 희생양 삼아왔다고 비판한다.

히포크라테스가 "자궁은 모든 질병의 근원이다"라고 오판한 뒤로부터 수천 년 간 여성은 의학적 대상에서 끊임없이 소외되고 차별받아 왔다. 모든 질병은 심인성으로 진단되기 일쑤였고 그렇게 오진되어 아픈 채 살아가다가 죽어갔다. 스탠포드 의대 부인과 의사팀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오진으로, 몇백 년에 걸쳐 이 질환(자궁내막증) 때문에 살해당하고 정신병자 수용소에 갇혔을 뿐 아니라 끊임없는 육체적, 사회적, 심리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고 밝혔다. 오진과 지체된 진단의 역사는 여성의 몸과 목소리를 철저히 소거시킨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후손인 의료계 가부장이 저지른 무능과 게으름과 여성 혐오로 점철되어 있다.

저자가 광범위한 여성 질병 오진의 역사를 다룬 이유는 아파서 미안해하고 아픈 것을 부끄러워하는 그녀가 만난 많은 여성 환자 때문이었다. 저자가 만난 여성 환자들은 극심한 투병 중에도 아파서 흘리는 땀, 눈물, 체액을 더럽거나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여성의 질병 자체를 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의료적 이데올로기가 아픈 그녀들을 너무나 강력하게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료 젠더 부정의에 맞서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품은 가장 큰 희망은 여성들이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는 치료를 스스로 요구할 수 있는 도구를 그녀들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불완전한 체제라도 그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면 힘이 생긴다."

아는 것은 중요하다. 알고 잘 아플 권리를 위해 일독을 권한다. 얼마 전 오진으로 타계한 지인의 죽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폐암이었으나 오진으로 골든타임을 놓쳐 황망히 떠났다. 한국 의학계가 남성 몸을 기준으로 상정된 의료 체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차 의학(젠더 의학)' 연구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던데, 분발해 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게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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