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1st] 역대 최고 피로, 세계적으로 힘든 태극전사들… 축구협회의 열린 접근과 관리 필요하다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소속 프로팀에서 경기를 많이 소화한다 해도, 부상만 아니라면 국가대표팀이 거리낌 없이 소집하는 것이 과거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축구협회와 홍명보 감독이 먼저 대표 선수들의 휴식을 적극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
프로 선수들의 파업이 거론될 정도로 경기 피로가 화제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 대표팀의 주전 유럽파들은 전세계를 통틀어도 힘든 편이다. 빅 클럽 주전 수준의 경기부담에 대표 소집시 시차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0일(한국시간) 요르단 원정에 이어 15일 이라크를 상대하는 홈 경기까지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3, 4차전 경기를 앞두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발표한 소집 명단은 핵심 유럽파 선수들이 고루 소집됐다. 부상 중인 손흥민의 선발이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건강한 선수들은 피로가 또 문제다.
▲ 로드리와 비슷한 경기 소화하는 유럽대항전 참가 한국인, 어느때보다 많다
이번 소집을 비롯, 2024-2025시즌 내내 이어질 특징은 국가대표 합류 직전과 직후에도 주중 경기를 계속 치르는 유럽파가 어느 때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가 5명이다. 바이에른뮌헨의 김민재, 파리생제르맹(PSG)의 이강인, 츠르베나즈베즈다의 설영우, 셀틱의 양현준, 페예노르트의 황인범이다. 또한 UEFA 유로파리그는 토트넘홋스퍼의 손흥민, 미트윌란의 이한범과 조규성이 참가한다. 위 8명 중 10월 A매치에 소집된 대한민국 대표 선수는 김민재, 이한범, 설영우, 황인범, 손흥민, 이강인 6명이다.
여기에 유럽대항전과 별개로 주중 경기가 배정돼 있던 유럽파가 3명 더 있다. 배준호(스토크시티)와 엄지성(스완지시티)이 뛰는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백승호(버밍엄시티)가 뛰는 잉글랜드 리그원(3부)이 모두 주중 경기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주중 경기가 잡혀 있던 국가대표 9명 중 풀타임 혹은 경기 대부분을 소화한 선수가 7명이나 된다. 2일 새벽 백승호, 이강인, 설영우가 풀타임을 소화했다. 3일 새벽에는 황인범, 배준호가 풀타임을 뛰었고 엄지성이 72분, 김민재가 86분간 활약했다. 소속팀 주전이 아니어서 결장한 선수는 이한범 한 명뿐이고, 손흥민은 가벼운 부상으로 최근 경기를 걸렀다.
위 7명은 각 소속팀 주전이기 때문에 주말 경기에서도 대부분 선발 출장할 전망이다. 다들 주말과 주중 경기를 가리지 않고 3~4일 간격으로 선발 출장하고 있는 소속팀 주축 선수들이다. 그나마 자국 리그에서 압도적인 선두 질주를 하고 있는 즈베즈다가 UCL에 앞선 자국 경기에서 설영우에게 휴식을 준 게 다행이다. 즉 요르단전을 앞두고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합류하는 것이다.
▲ 태극전사들의 시차 부담, 전세계 최고
이번 시즌 엘리트 선수들이 소화하는 경기가 부쩍 늘어나 맨체스터시티의 스페인 대표 로드리가 "파업 가능성"을 거론할 정도가 됐다. 이 문제는 유럽대항전을 병행하는 빅 클럽 선수들에게 특히 심각하다. 그런데 최근 한국 선수들의 유럽 내 위상이 부쩍 높아지면서 이 혹사 문제에 해당되는 한국 선수가 급증했다. 현재 대표팀 주축 유럽파 전원이 해당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도로 경기 부담에 시달리는 유럽파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보는 것이다. 과거에는 유럽대항전을 병행하는 강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박지성이 속해 있더라도 붙박이 주전은 아니었다. 또는 소속팀 붙박이 주전으로 맹활약했던 기성용, 이청용 등 소속팀이 유럽대항전에 불참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들은 주중 경기의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한국 선수들이 겪는 남다른 고충은 이동거리다. 한국 유럽파 선수들은 A매치를 위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먼 비행을 감수한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동서로 긴 대륙이다. 한국은 하필 모든 월드컵 예선 상대팀이 서아시아에 있다. 홈과 원정 A매치 사이에 시차 6~7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은 월드컵 예선에 참가한 전세계 팀 중 가장 큰 시차에 시달린다.
남반구로 넘어가는 남미 선수들의 비행 거리가 더 긴 반면, 한국 선수들은 더 심한 시차에 시달리기 때문에 종합적인 피로에서 뒤지지 않는다. 이번 A매치에서 토토넘의 아르헨티나 대표 크리스티안 로메로와 손흥민을 비교해 보면, 로메로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를 거치며 약 23,400km를 이동하고 손흥민은 약 20,500km를 이동해 로메로의 이동거리가 조금 더 길다. 시차 측면에서는 손흥민이 8시간 차이라 더 부담이 크고, 로메로는 조금 덜한 4시간 차이다.
게다가 이번 시즌 유럽대항전을 빅 클럽들은 경기 부담이 더 늘었다. 유럽대항전이 개편되면서 기존 조별리그보다 현행 리그 페이즈가 팀당 2~4경기 늘어났다. 이에 따라 A매치 일정에서 돌아온 직후에 주중 유럽대항전이 편성되는 경우가 잦다. 그럴 때면 소속 리그에서 '주중 유럽대항전을 앞두고 최대한 쉬어라'라는 배려로 주말 경기를 일요일이나 월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편성하곤 한다. 그 뜻은 배려지만, 한국 선수들에게는 가장 힘든 경기다. 한국에서 긴 비행을 하고 돌아간 뒤 시차가 풀리기도 전에 토요일 경기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A매치 직후에도 현지시간 토요일에 토트넘, 바이에른, 페예노르트, 즈베즈다 등의 경기가 모두 진행된다. 한국 선수들의 회복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손흥민이 토트넘의 로테이션 멤버일 때는 A매치 직후에 흔히 결장했기 때문에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건강할 때의 손흥민을 비롯해 많은 선수가 토요일 경기부터 선발로 뛴다.
▲ 김민재와 손흥민이 이미 겪은 피로누적 부상, 관리는 필수
이번 시즌 초반부터 휴식 부족에 시달렸던 빅 클럽 선수들이 연달아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자, 일정 때문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로드리에 이어 유벤투스의 브라질 대표 센터백 글레이송 브레메르도 특정 선수와 부딪친 게 아닌데 디딤발의 무릎에 큰 부상을 입었다.
한국은 피로로 인한 부상 문제를 이미 겪고 있는 팀이다. 지난 2023-2024시즌과 그 사이 열린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김민재가 피로누적으로 인한 근육부상을 입었고, 이후 컨디션이 크게 저하되면서 소속팀 주전경쟁까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최근에는 손흥민이 상대 선수와 별 접촉 없이 쓰러져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다. 둘 다 피로에 의한 부상이었다. 부러진 뼈는 붙으면 더 튼튼해진다지만, 피로로 인한 잔부상은 복귀에 얼마 안 걸리는 반면 장기적인 경기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까다롭다.
한국은 이미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공수의 핵심 손흥민과 김민재가 모두 부상을 안고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던 경험이 있다. 손흥민은 안면을 가격당해 피로와 무관한 부상이었지만 김민재의 경우 빅 리그에 진출해 높은 경기강도를 소화하다 피로가 쌓이고 탈이 난 경우였다.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 선수들이 더 힘들다. 일단 일본은 아시아 예선 상대 중 북한, 중국이 있어 한국보다 시차 문제가 적다. 또한 일본 대표팀에 유럽파가 더 많지만 이들 중 소속팀에서 컵대회 병행으로 피로가 쌓이는 선수는 적다. 엔도 와타루(리버풀)처럼 유럽대항전 참가팀 소속이지만 붙박이 주전이 아니거나, 이타쿠라 고(보루시아묀헨글라드바흐)처럼 주전이지만 소속팀이 유럽대항전에 불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유럽대항전 참가팀과 일본 대표팀에서 모두 주전인 선수는 미나미노 다쿠미(AS모나코) 등 대략 3명 정도로 한국보다 오히려 적다.
월드컵 3차 예선은 만만히 볼 단계가 아니지만, 선수의 부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총력을 기울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단계 역시 아니다. 핵심이더라도 피로가 쌓인 유럽파 선수들에게 돌아가며 휴식을 주는 정도의 조치는 적극 고려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
그동안 모든 국내 A매치에 대표 선수들이 빠짐없이 소집된 건 단순한 경기력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대한축구협회와 선수들의 입장이 맞물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선수들은 A매치 휴식기가 곧 소속팀 휴가기간인 셈이다. 그 기간 동안 국가대표로서 명예를 누리는 동시에 한국에 돌아와 가족을 만나고 볼일도 보는 걸 선호하는 선수들이 많다. 축구협회 입장에서는 주요 선수들이 있어야 국가대표 경기의 흥행이 보장된다. 애초에 출장 가능성이 희박했던 선수가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었다.
선수를 아예 안 뽑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수 피로를 줄이고 부상을 예방하는 대표팀 운영은 충분히 가능하다. 주전 선수들을 번갈아 조금씩 빼면서 테스트 선수의 비중을 늘릴 수 있다. 그러면서 국내 A매치는 K리거를 더 테스트하고, 원정 A매치는 유럽파들을 더 테스트하는 등 시차문제에서 자유로운 선수를 중용한다면 경기력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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