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병원은 소방서와 같은 곳인데 자꾸 폐업"
의-정 갈등 속 의료 대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지만, 진정한 의료 개혁에 대한 논의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근거 없는 '2000명 증원'을 둘러싼 논쟁과 의료 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의료는 모두의 권리이자 복지다. 지역의료, 공공의료, 일차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앞으로 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물어본다. <기자말>
[하정은 기자]
지난 11일 지역 의료에 관해 김영수 창원경상대병원 공공보건사업실 실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영수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예방의학 전공의 과정을 거친 후 경상남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창원경상국립대병원 공공보건사업실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경남에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공공보건사업실장 등 공공의료 분야에서 쭉 활동하셨군요. 각각 어떤 일을 하나요?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은 보건의료 현안 대응 등을 연구하고 공공보건의료를 지원하는 조직이고, 공공보건사업실은 국립대학교 병원 내 국가의 공공의료 협력 체계 사업을 추진하는 곳입니다.
"지역 중소 병원 자꾸 폐업하는 상황"
- 지역 의료의 정의는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포괄적으로 시행되는 의료"라고 합니다. 지역의 의료 발전을 위해 힘써왔던 선생님께서는 지역 의료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보는 지역 의료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건강 문제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의료입니다. 제가 맨날 비교하는 게 경찰, 소방 등이에요. 소방서와 경찰서처럼 지역 의료도 지역의 병원, 의원 혹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가 지역 주민들을 지켜주고 있는 거죠. 지금은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요.
지역 의료는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사회 안전망이라고 봅니다. 환자의 생명을 지킨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지역 소멸로부터도 지킨다는 말이에요. 사회 안전망의 큰 부분인 의료가 무너지면 환자 건강뿐 아니라 지역 붕괴도 가속화됩니다.
- 지역 의료 강화 방안을 연구하셨다고 했는데, 현재 지역 의료 체계 상황이 어떤가요?
현재 경남은 18개 시군 중 14개 군이 의료 취약지, 즉 소아 분만 응급 의료 등이 취약한 지역이에요. 지역의 중소 병원이 자꾸 폐업하는 상황입니다. 입원실 및 응급의료를 갖추려면 매일 24시간 의료 기관을 운영해야 하는데, 의사와 간호사를 구하는 것이 지역은 어렵습니다. 의원은 오히려 운영이 잘 됩니다. 하지만 입원실, 응급실을 갖춘 병원이 없어져 버리면 그 지역은 상당히 암울해집니다. 의원은 밤과 주말에 운영 안 하지만 사람이 아픈 건 수시로 아프잖아요. 그러면 인근 도시로 원정을 가야 합니다.
- 상급종합병원 등 경남의 의료기관은 어떤가요?
마찬가지로 취약한 상황입니다. 이전에 조사했을 때 경남 A 대학병원은 전국에서 응급환자 중증으로 분류되는 환자들을 많이 보는 응급실인데도 정규로 일하는 교수님 3명에 나머지는 촉탁의입니다. 그 당시 수도권 비슷한 규모의 B 병원은 정규 스텝이 8명 정도 되었고, 의료대란 전 전공의들도 연차별로 꽉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같은 대학병원이라도 상황이 같지 않습니다.
24시간 운영해야 하는 뇌졸중, 간담췌 중재시술 분야, 신생아 중환자실 같은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경남의 종합병원 교수님들 한두 명으로 365일 당직을 서다가, 이분들이 번아웃 되면 결국 수도권으로 가십니다.
▲ 충북대학교병원 |
ⓒ 충북대병원 |
의료 취약지 군 지역에서도 본인이 경제력이 있거나 자식들의 도움을 받으면 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차 타고 인근 대도시 및 수도권 대형 병원에 다닙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아요. 대부분 아주 고령에 혼자 사시는 분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면 119를 타거나 보건진료소 소장님이나 이장님 차를 타고 이동하기에 가까운 지역 병원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종 치료 기관까지는 아니더라도, 군 내에 만성 근골격 질환 일부, 간단한 수술 정도는 가능한 의료 기관이 있어 이러한 질환을 해결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지역이 너무 소멸하고 있으니 국가는 70개의 진료권당 하나라도 병원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 혹자는 의료 수요 부족의 문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도 왜 병원이 필요할까요?
극단적인 예지만, 한국에도 낙도 혹은 시골에 분교가 있을 때 학생이 2명이어도 교사가 파견되거든요. 그거랑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수요 공급을 맞출 수 없는 지역은 이제 국가가 돈을 써야 합니다. 안전망의 큰 축인 건강 보건의료가 없어지면 붕괴가 더 가속해 그냥 지역이 없어지는 거죠.
지역 소멸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포기하지 않고 또 우리가 강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또 살고 싶은 데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크잖아요.
- 어떻게 보면 거주권이라는 문제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네요.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 권리 중 하나로 사회 안전망이 구축된 곳에서 살 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말했던 대로 군, 지역마다 주민들이 안심하고 갈 만한 병원이 필요합니다. 도립·국립 병원이 생기는 게 제일 좋은 방안이지만, 그러기 전에 지역 민간 병원들의 운영난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필요가 있어요. 요즘에는 지자체에서, 군 자체에서 병원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지방선거 때도 병원 설립, 종합병원 유치, 24시간 응급실 운영 이런 것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군수들이 많아졌습니다. 여러 군데서 병원이 폐업하는 것을 보고 그 불편한 점을 알기 때문에 지자체의 지원이 조금 는 것 같아요.
"지역 의사제 효과 좋아"
- 현 정부가 '계약형 지역 필수 의사제', 의과대학생 때 대학과 지자체가 계약해 장학금과 일자리를 지원받고 대신 지역에서 복무하도록 하는 정책을 내걸고 있습니다. 이에 반대해 지역 의사제, 즉 의대 정원 중 일부를 아예 지역 의사로 할당해 장학금을 주고, 공적으로 기르고, 졸업 후 10년 정도는 해당 지역에서 일하게 하는 제도가 필요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매우 검증된 모델입니다. 의사들이 도시에 몰리고 시골 지역에는 없는 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의대 정원 지역할당제(지역인재전형), 장학금, 의무 복무를 다 하는 것이 일부만 하는 것보다 가장 효과가 좋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일본은 2008년도부터 지역 의사제를 시작했는데 현재 80% 넘는 대학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오키나와 류큐대 의과대학에서 지역 의사들이 100명 넘게 배출됐는데 유급 등 특별한 이유 외에는 장학금을 토해내고 중단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 김영수 창원경상대병원 공공보건사업실 실장 |
ⓒ 김영수 |
더 나아가 수련 병원에서 지방의료원 또는 병원으로 통합 수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충분한 수련 여건이 될 수 있도록 지역 거점 수련 병원들을 많이 지원해줘야 합니다. 대학병원에서 하나의 세부 분과만 수련했다면, 지역병원에서 순환 근무를 하며 여러 환자를 볼 수 있습니다.
종합병원, 대학병원에서 의료취약 지역병원으로 안과, 이비인후과 등의 마이너과 의사 파견도 도움 됩니다. 한국에서 당뇨 합병증인 망막질환을 보려면 안과가 있어야 하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안과를 볼 수 있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공중보건의 제도 또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 근무 의사로 지역 상황에 맞게 제대로 수련받은, 또는 일차의료 수련을 제대로 받은 전문의가 가야 합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의료인들이 지역에서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진정한 의료개혁은 의대 증원 하나만으로는 안 되니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겠습니다.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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