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브랜드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찾아서
기아 브랜드는 현대 브랜드와 함께 현대자동차그룹의 양대 완성차 브랜드이다. 다른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 역시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브랜드의 기술적 정체성을 명확히 나타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동차는 하드웨어로 구성돼 있지만, 거기에 브랜드가 붙는 순간부터 일종의 영혼이 생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건 지나친 비약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동차 기업들은 브랜드와 역사를 강조하면서 똑같은 하드웨어를 쓰더라도 소비자에게는 보다 차별화된 성격을 나타내 보이려고 한다.
작년 2021년 초에 기아 브랜드는 1994년부터 사용해 오던 타원형 브랜드 심벌을 디지털적 이미지의 것으로 바꾸면서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화를 선언했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움직임이기도 하지만, 현대자동차 그룹 내에서 현대 브랜드와의 명확한 차별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현대와 기아의 차들은 같은 연구소에서 설계되지만, 기아 브랜드의 디자인 연구소와 영업 조직 등은 현대 브랜드의 그것과는 별개로 운영된다. 그것은 소비자들이 느끼는 브랜드의 차별성이 가장 잘 드러나야 하는 부분을 맡은 조직이 바로 차량의 디자인을 비롯해서 차량 판매 등의 영업 및 서비스 부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차량의 구조 설계는 같은 연구인력이 수행하지만, 소비자와의 접점을 형성하는 부문이 독립돼 있는 것은 그만큼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사실상 대부분의 멀티 브랜드 자동차 기업의 운영 역시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른바 브랜드의 특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오랜 시간의 활동이 축적되고,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각인돼서 어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들은 각자의 역사와 전통을 오히려 더욱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첨단의 디지털 모빌리티 시대로 가고 있는 21세기임에도 이렇게 오히려 각 브랜드나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는 아이러니가 나타나는 건 그만큼 차량의 하드웨어적인 부분의 차별성보다 소프트웨어적 차별성이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 브랜드와 기아 브랜드로 구성된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기아 브랜드의 차별성은 무엇일까? 본래는 독립된 별개의 회사였던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는 1998년에 합병돼 오늘에 이르고 있기에 ‘현대’와 ‘기아’는 서로 다른 기원과 역사를 가진다.
기아자동차에서 1989년에 발간한 ‘기아 45年史’ 책자에서는 1944년에 서울 영등포에 설립된 ‘경성정공’이 기아자동차 역사의 시초라고 기술돼 있다. 이후에 1953년 한국전쟁(625사변)의 종전과 함께 ‘아시아를 넘어서서 일어나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의 의미로 ‘기아산업(起亞産業)’ 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기계를 상징하면서도 ‘기아’와 발음이 비슷한 톱니바퀴(gear)의 형상을 넣은 심벌을 만들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1967년에 설립됐다.
이후 기아산업은 1960년대에 일본의 동양공업(1970년대 말에 마쓰다-Mazda-로 개칭)과 기술제휴하면서 기아마스타(KIAMASTER) 라는 브랜드로 T600과 T2000 이라는 소형과 중형 삼륜 트럭, 소형 승용차 등을 생산하면서 ‘기아’의 한글 자음 ㄱ과 ㅇ을 조합한 모양이면서 3륜 차량의 앞 바퀴와 비슷한 형태의 심벌을 1964년부터 1986년까지 사용한다.
이 시기 중에서 1981년부터 1986년까지는 정부의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기아산업은 브리사(Brisa) 등의 승용차 생산을 중단하고 1톤 트럭 봉고(Bongo), 농촌형 트럭 세레스(Ceres), 2.5톤 트럭 타이탄(Titan), 4.5톤 트럭 복서(Boxer), 승합차 봉고 코치와 베스타(Besta) 등을 생산한다. 그리고 1987년부터 승용차 생산이 재개되면서 프라이드, 콩코드, 캐비탈, 세피아, 스포티지 등의 다양한 차량이 개발되고 생산된다.
기아가 생산했던 차량 중 3륜 트럭 T600과 T2000, 소형승용차 브리사, K303, 1톤 봉고 화물차와 승합차, 중형 트럭 타이탄, 복서, 그리고 승합차 베스타 등은 모두 마쓰다의 차량을 바탕으로 개발해 생산한 것이었다.
그 시기에는 독자개발을 할 만큼의 기술적 자신감이 없었고, 차량 수요도 크지 않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들 차량은 디자인을 우리 감각에 맞게 수정했으며, 대부분의 부품을 점진적으로 국산화 시켜 나갔다.
실질적으로 기아의 디자이너들이 기아의 차량이라는 인식으로 디자인한 첫 모델은 1986년부터 시판된 승합 차량 베스타(Besta) 였다. 물론 베스타 역시 마쓰다의 승합차 브로니(Browny)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차체 앞뒤 디자인을 완전히 바꾸고, 거의 수직에 가까웠던 브로니의 D-필러 각도도 경사지도록 바꾸는 등 차체 전체를 새로운 금형으로 개발했다.
이후 프라이드 승용차를 개발하면서 국내 시판용 프라이드는 포드 브랜드의 수출 모델과 다른 디자인을 적용한다. 물론 이때는 아직 기아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적용한다는 인식은 없었지만,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3분할 구성이 나타났고, 1989년에 나온 콩코드 세단 기반의 준중형 승용차 캐피탈에서도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을 3분할 구성으로 나눈 디자인이 나왔다.
필자는 1988년에 기아에 입사해 1년간의 신입사원 교육과정 중에서 6개월동안은 소하리 공장(현재의 광명 오토랜드)에서 차체 용접, 엔진 조립, 차량 내/외장 조립 등의 생산현장 실습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차량 생산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단지 그림으로 접근하는 자동차 디자인이 아닌, 차량의 구조와 생산기술 등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필요한 입체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신입 디자이너로서 필자는 프라이드와 캐피탈 승용차에서 공통적인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을 보면서 선배 디자이너들의 의중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한편으로 3륜차를 생산한 역사를 반영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소하리 공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어느 날 문득 3찬 구성 스테인리스 식판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식판의 반찬 구획의 형태가 프라이드 5도어 모델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불현듯 프라이드와 캐피탈에서 공통적인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의 궁금증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1991년형 캐피탈 DOHC 모델의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은 정말로 그 식판의 반찬 구획의 모양과 거의 똑같은 형태로 나오기까지 했다.
물론 필자는 그 당시에 선배 디자이너들에게 그릴과 식판의 연관성을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미루어 짐작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식판 한 장으로 디자인을 설명한다는 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일지 모른다. 그러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물의 형상은 디자이너들에게 무의식으로 작용하는 건 물론이고,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 감각을 공유하는 게 사실이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기아의 구성원은 매일매일 그 식판으로 식사를 했다. 그 형태를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3분할 식판은 1990년대 후반까지 기아 소하리 공장 식당에서 쓰였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떤 형태의 식판이 쓰이고 있을까?
물론 필자가 식판 하나로 너무 성급한 일반화를 한 건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형태의 3분할 그릴은 2006년에 기아 브랜드가 ‘디자인 기아’를 선언하면서 제시한 이른바 ‘호랑이 코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다듬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결과론적 이야기일 수 있지만, 3분할 라디에이터 그릴과 호랑이 코 라디에이터 그릴이라는 관점에서 역사 속 기아의 차들을 보면, 1960년대의 3륜차에서 3분할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브리사 승용차의 라디에이터 그릴, 봉고 승합차의 전면, 프라이드와 캐피탈 승용차, 독자 모델로 개발된 1993년의 스포티지의 앞 모습 등에서 공통적으로 3분할 형태를 볼 수 있다.
같은 울타리 안에서 같은 목표와 가치관을 가졌던 그때의 기아 구성원들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3분할 디자인의 이미지를 심상(心象)으로 공유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의 호랑이 코 그릴로 최신형 모델에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