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칼날’ 앞에 선 쿠팡…어찌하리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6. 5. 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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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결국 김범석 동일인 지정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쿠팡의 기업 총수(동일인)로 지정되자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김 의장이 총수 일가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등 한층 강화된 규제를 받게 돼 쿠팡은 곧장 반발하는 모습이다.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되며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서울의 한 쿠팡 물류센터(위)와 김범석 의장. (연합뉴스)
공정위 ‘쿠팡 총수 김범석’ 지정

김범석 일가 美 계열사 국내 공시 의무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을 지정하며 쿠팡의 동일인을 쿠팡 법인에서 김범석 의장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총수를 의미한다. 쿠팡의 동일인이 바뀐 것은 2021년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후 처음이다. 김범석 의장은 미국인이라 외국인이 대기업집단 총수로 규정된 것은 미국 국적인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 이후 두 번째다.

쿠팡이 동일인 지정 예외 요건에서 벗어난 것은 김 의장의 동생 김유석 씨의 경영 참여가 드러난 영향이 크다. 쿠팡 모회사인 쿠팡Inc의 미등기임원인 김유석 씨는 파견 형식으로 한국 내 회사에 근무해왔다. 그동안 공정위는 김유석 씨가 이사회 등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연봉이 등기임원(30억원)보다 낮은 5억원 수준이라 임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올해 현장 점검 결과 김유석 씨 직급이 쿠팡 내 최상위 수준인 부사장급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포함한 연간 보수와 대우 역시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등기임원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김유석 부사장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약 140억원가량 보수와 인센티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쿠팡에서 배송캠프 관리 부문을 총괄하는 김유석 부사장은 물류, 배송 정책 관련 회의를 수백 차례 이상 주재하고, 배송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대표를 불러 주간 업무 실적을 점검하기도 했다. 쿠팡 주요 사업의 구체적인 집행 방향을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거래법은 친·인척의 경영 참여 등 특수관계인에 따른 사익편취 우려가 없는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한다. 김 부사장의 경영 참여로 사익편취 우려가 없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법인 동일인’ 예외 요건이 충족되지 않게 됐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공정위는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와 정책 적용의 최종 책임자인 동일인을 일치시켜 권한과 책임의 괴리를 해소했다”고 밝혔다.

동일인이 김범석 의장으로 바뀌며 쿠팡이 적용받는 규제는 한층 강화된다. 앞으로 김 의장과 배우자,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이 지분 20% 이상을 소유한 해외 계열사 현황이 공시 대상에 포함된다. 국내 계열회사 주식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한 해외 계열사의 주식 소유 현황도 공개해야 한다.

사익편취 금지 규제도 적용된다.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이 총수 일가 지분 20% 이상인 계열사와 해당 회사가 50% 넘게 주식을 보유한 자회사에 유리하게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동일인이 사람인 기업집단에만 적용돼 그동안 쿠팡이 위법 행위를 했는지 따져볼 수 없었다. 앞으로는 쿠팡 내부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지원 행위가 적발될 경우 지원 금액의 최소 100%, 최대 300%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법인이나 총수 개인에 대한 고발도 가능하다.

법적 규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김 의장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압박도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된 만큼 앞으로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 같은 대형 이슈가 발생했을 때 국회 출석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며 “그만큼 기업 총수로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쿠팡 즉각 반발

행정소송 비롯 법적 대응 예고

쿠팡 측은 공정위 결정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쿠팡은 “쿠팡Inc는 한국 쿠팡 법인을 100% 소유하고, 한국 쿠팡도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100% 소유한 투명한 지배구조”라며 “김범석 의장과 친족은 한국 계열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사익편취 우려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쿠팡Inc는 미국 상장사로서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요구하는 특수관계자 공시 의무를 준수하는 등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으며, 한국 쿠팡 법인은 변함없이 동일인 지정의 예외 조건을 충족해왔다”고 덧붙였다. 쿠팡에 대한 동일인 변경이 ‘이중 규제’라는 주장이다. 쿠팡은 공정위에 이의 제기를 진행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행정소송을 비롯한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선 이번 결정이 한미 통상 갈등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쿠팡 측은 동일인 지정 움직임에 대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정부 역시 김 의장에 대한 법적 안전보장을 안보 현안 논의와 묶어 한국 측을 압박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쿠팡은 정부에 ‘미 백악관 보고’를 거론하며 쿠팡과 김 의장에 대한 조사, 수사 종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공정위는 “정당한 법 집행 부분에 대해 미국에서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정위가 친족의 경영 참여 사실을 현장 조사로 확인한 데다 동일인 제도는 모든 기업에 같은 잣대로 적용되는 규제인 만큼, 한미 통상 문제를 이유로 예외를 둘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논란이 거셌던 쿠팡 동일인 지정 문제가 정리된 만큼 공정위가 조사 중인 주요 사건 처리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일례로 쿠팡의 ‘끼워 팔기’ 의혹이 손꼽힌다. 쿠팡은 유료 멤버십인 ‘와우멤버십’ 이용자에게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 동영상 서비스 쿠팡플레이 등을 끼워 팔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상반기 중 전원회의에서 제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시장을 온라인 쇼핑 전체로 볼지, 아니면 빠른 배송이 가능한 이커머스 시장으로 좁혀 볼지에 따라 쿠팡 점유율과 지배적 지위 인정 여부가 달라질 전망이다. 만약 쿠팡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상태에서 이를 남용한 것으로 판단되면, 일반 불공정거래보다 제재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

공정위는 쿠팡의 ‘인기상품 가로채기’ 의혹도 위법 행위가 포착될 경우 심판대에 올릴 계획이다. 입점 업체가 인기 상품을 PB상품으로 출시하거나 직매입으로 전환하도록 강요해 가로채기했다는 의혹이다. 이정희 교수는 “공정위가 앞으로 쿠팡 개별 사건에 대해서도 보다 엄격하게 들여다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공정위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쿠팡은 최근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중이다. 쿠팡Inc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연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2억4200만달러(약 3545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쿠팡이 영업적자를 낸 것은 2024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1분기 쿠팡 영업손실을 4000만달러 규모로 예상했지만, 적자 규모는 무려 6배에 달했다.

쿠팡 실적이 악화된 것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따른 보상이 영향을 미쳤다. 쿠팡은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보상으로 올해 1월 회원 1인당 5만원 상당 구매 이용권을 지급했다. 이에 따른 총 비용은 1조685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사업 부문 중에서는 대만 로켓배송과 파페치, 쿠팡이츠 등이 포함된 성장사업 부문 적자가 치솟았다. 성장사업 부문 조정 에비타(상각 전 영업이익) 손실은 3억2900만달러(약 4820억원)로 전년 대비 96% 높아져 수익성을 끌어내렸다. 이래저래 쿠팡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9호(2026.05.13~05.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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